놀이터에서 배우는 사회 - Social Schooling
아이가 7살 되던 해, 둘째를 낳아야 하나 고민이 되던 즈음, 저는 남편에게 선언을 했습니다.
혼자서 일주일 만이라도 여행을 다녀와서 둘째를 갖고, 육아에 다시 전념하겠노라고...
그러지 않고서는 다시 아이를 낳고, 세상과 단절된 그 시간을 온전하게 제정신으로 버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독립 선언을 하듯 일주일간의 휴가를 남편에게 선물 받았고, 세부적인 여행 계획과 부모님께 아이를 부탁하는 일만 남아 있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오롯이 혼자 떨어져 일주일의 시간을 누릴 상상을 하니 너무나 설렜습니다. 행선지는 어디든 다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왕이면 하는 마음으로 행선지를 정하다보니 항상 마음속에 품고있었던 북유럽이 떠올랐습니다. 저렴한 항공권에 맞춰 일정들을 계획하고 여행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북유럽 여행지들을 살피고 준비를 하고 있노라니 마음이 자꾸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으로 박물관이며 도서관이며 놀이터 풍경들을 접할 때마다 자꾸 아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어렵사리 먹었던 마음을 바꾸고 '7살 난 아들과 함께하는 한 달짜리 여행'으로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혼자일 때야 고려해야 하는 것들이 적었지만, 아이와의 여행에서는 숙소도 더 안정적인 곳이어야 했고, 헐렁한 일정이더라도 대략적인 사전 정보들이 있어야 했기에 혼자 가는 여행보다 준비할 것들이 많아졌습니다.
어린 아들과 단둘이서 길게 떠나는 여행에 남편도 걱정, 부모님들도 한 걱정하셨지만 정작 떠나는 저와 준규는 너무 신나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쥐어짜가며 배낭여행했던 것에 비하면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고 비상사태에서도 끄떡없을 신용카드 덕분인지 그리 불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도 여행을 하는 내내 어떤 문제가 닥쳐도 도와줄 수 있는 남편이 한국에서 항시 대기 중이었고, 세월이 바뀌어서 어딜 가도 인터넷이 되니 기차역에서 줄 서서 표를 끊거나 Information desk에서 손짓 발짓 섞어가며 묻지 않아도 되니 언어의 장벽,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 배낭여행에 비하면 너무나 편하고 순조로운 환경이었습니다.
첫 행선지는 덴마크 코펜하겐 København Denmark이었습니다. 한옥에서 에어비앤비를 1년간 운영하며 페이팔에 고스란히 모아 두었던 달러로 다양한 숙소들 중 아이와 함께 지내기 좋은 곳을 선택했습니다. 시내를 트램 한 코스 정도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저층 아파트(스튜디오)를 예약했습니다. 단지 내 놀이터들이 있어서 아이를 데려가기에 호텔보다 훨씬 좋을 것 같아서 선택하게 되었지요.
숙소에 도착하는 길에 이미 숙소 바로 앞, 단지 내 모래 놀이터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곳곳에 모래놀이를 하다 놓고 간 삽이며, 트럭들이 보이고, 타다 놓고 간 자전거들까지 있었습니다. 그냥 당장 살라고 해도 1년은 살 수 있을 것 같은 '내 집' 같았습니다. 에어비앤비로 손님을 받기는 했지만, 내가 막상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숙소를 선택해 가보니 현지인의 삶 속에 풍덩 들어간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이라기보다는 거주가 편리한 공유 숙소를 얻다 보니 여행의 방식도 달라짐을 느꼈습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아이는 아파트 문을 열고 나가 숙소 창밖으로 보이는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도 하고 그네도 탔습니다. 덴마크까지 가서 첫날부터 숙소 앞 놀이터에서만 놀 수는 없어 아이를 꼬드겨서 숙소 밖으로 겨우 나왔습니다.
그런데...
숙소가 호텔이 아니란 것을 간과했던 거죠. 근처에 단지 내 놀이터와는 비교도 안될 엄청난 규모의 놀이터가 숙소 바로 옆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여행 첫날의 대부분을 놀이터에서 보내며 잠시동안, 아이와의 여행을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행복한 표정의 아이를 보며 한 발짝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 달간 펼쳐질 여행에서 매일 아침을 놀이터로 출근해야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ㅋㅋㅋ
숙소 근처 큰 놀이터는 넓은 공터가 가운데에 마련되어 있고, 그 공터를 중심으로 짚와이어, 회전놀이 판, 정글짐, 원통 돌리기 형태의 집, 농구대 등이 있었습니다. 일단 놀이기구들 형태가 한국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들로 가득했습니다. 심지어 가장자리로는 자전거도 놓여 있고, 오두막처럼 생긴 곳들이 여러 채 있어 그 실내에는 보드게임, 축구놀이들을 할 수 있는 장소들까지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놀이터에는 짚와이어 있는 놀이터 찾기도 힘들었고, 있더라도 관광지나 놀이공원 같은 곳에서 유료로나 이용 가능한 놀이기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짚 와이어가 동네 놀이터에 있다니!! 아이 눈은 반짝이다 못해 흥분상태로 바뀌었습니다. 이 놀이터에서 일찍 자리를 뜨겠다는 욕심일랑 일찌감치 접는 편이 낫겠다며 놀이터 벤치에 앉아 멍 때리며 노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아이 표정이 너~~~~ 무 행복해 보였습니다. 시내 구경이 웬 말이며, 박물관이 무슨 소용 있겠나 싶었습니다.
'일단은 놀아라~' 하는 마음으로 양보를 할 수밖에 없는 놀이터였습니다. 사실 이런 것 때문에 혼자만의 여행을 포기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하며 스스로를 위안했습니다.
노는 애들이 별로 없어서 놀이기구를 실컷 타고나면 가자 하겠지... 하며 기다리는데 야속하게도 어디선가 아이들 부대가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ㅠㅠ
아마도 유치원 같은 데서 단체로 체육수업? 내지는 야외수업을 나온 것 같았습니다.
준규의 눈이 또다시 반짝였습니다. 스멀스멀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 수업 중인 무리 한편에 서서 구경도 하고, 함께 놀 만할 기회를 기다리듯 아이들 옆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해외 스포츠 캠프에 참관수업하는 상황 같았습니다. 기다림 끝에 기회를 포착한 아들은 수업 중인 아이들을 제외하고 자유놀이 중인 아이들과 함께 집처럼 생긴 통 돌리기 놀이기구 안에 슬며시 함께 들어가더군요. 그렇게 통 안에서 그곳 아이들과 원통 굴리기 놀이로 하나 되어 놀기 시작하는 아이. 함께 여럿이서 밟아 통을 한쪽으로 돌리기도 하고, 양쪽 편을 나누어 통을 돌리며 힘겨루기도 하고 친구들 속도가 너무 빨라 넘어질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많아져서 더 이상 통을 굴릴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아이들이 하나둘 그 안에 앉아서 소곤소곤 이야기하며 놀기도 합니다.
놀던 아이들이 새로운 아이들로 몇 차례 바뀌기도 하며, 옹기종기 그 안에 모여 대결과 협동으로 하나되며 저희들끼리 신이 나 보였습니다. 저 당시만 해도 여행 첫날이라 귀한 시간을 놀이터에서 하루 종일 허비하고 있는 것 같아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스포츠 캠프 돈 줘서 보낼 거 뭐 있나 싶은 시간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다만 저렇게 여유 있게 놀려면 일주일 여행하면서는 당연히 시간이 촉박하고 아까울 수밖에 없으니 한 달 정도 머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상 이리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준규는 저날 놀이터에서 무리의 아이들이 다 떠나간 후에도 짚와이어를 질리도록 타고, 놀이터 곳곳을 다 수색하며 놀고 난 오후가 되어서야 배가 고파 놀이터를 빠져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뿐 아니라, 저 놀이기구 통속 하나에서 얻을 수 있는 사회적인 경험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1. 반 정도 밀폐된 공간에서 타인에 대한 탐색을 하고
2. 낯선 이와 한 공간에서 같이 있어보는 법을, 놀면서 배우는가 하면
3. 통을 굴리는 속도로 인해 운동감각도 배우지만, 친구들과 속도를 맞춰가는 법도 배우고
4. 때로는 양 팀으로 나누어 경쟁하듯 힘겨루기를 하며 경쟁도 경험하고
5. 언제 그랬냐는 듯 대동 단결해서 한 팀으로 통을 돌리며 협력을 배우기도 합니다.
6. 그러다 약속이나 한 듯 사람이 많아지면 개인보다는 다수가 들어와 앉아있는 상황을 받아들여 평화롭게 쉬는 시간을 갖으며 때를 기다리는 법도 배웁니다.
저 통 돌리기 놀이 하나로도 작은 사회를 배우는 우리 귀여운 아이들. 놀이터 안에서 배워가는 사회는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경험이 되겠지요.
저 당시만 해도 놀이터 이름을 몰랐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Christianshavns Vold Bemandede Legeplads이다.
Christianshavns ->동네 이름이고
Vold는 폭력? 이상해서 더 찾아보니 '격렬한'이란 뜻도 있네요.
Bemandede -> 사람이 있는
Legeplads -> Playground 놀이터라는 뜻이다.
덴마크어라 맞는 번역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격렬한 아이들이 있는 놀이터'내지는 '아이들이 격렬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 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름부터도 아이들에게 '조심해라~'가 아닌
'신나게 놀아라~~' 하고 만들어 놓은 놀이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소 정보
Christianshavns St. (Metro) 역 근처
Christianshavns Vold Bemandede Legepl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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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스쿨링 Social Schooling <준규네 홈스쿨>
제한된 교실 안에서가 아니라, 마을을 기반으로 다양한 이들과 교류하며 배우고,
학교를 넘어 좁게는 마을, 지역, 그리고 넓게는 서울 더 나아가 해외나 인터넷까지~ 큰 바운더리 안에서 아이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배우고 이 사회를 배워나간다고 생각하는 개념을 <준규네 홈스쿨>에서 소셜 스쿨링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