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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규네 홈스쿨 Aug 31. 2020

엄마, 학교는 왜 다녀요?

준규네 홈스쿨링 이야기3


모든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남들과 다른 것을 좋아하던 준규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봄,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심하게 다치신 적이 있었다. 일찍 퇴원하신 아버지와 달리 엄마는 병원 중환자실에 한 달을 계셨고, 그 와중에 학교 소풍이 있어서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셨다. 소풍날 아침, 무뚝뚝하고 무서웠던 외할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싸주셨다. 엄마 김밥보다 세 배나 굵어 보이는 크기로……. 

   소풍 가는 내내, 평소와는 다르게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커다란 김밥을 떠올리니 점심시간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점심시간에 배가 고프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도시락을 꺼내지 않았다. 아니 꺼내지 못했다. 친구들 것과는 다른 크기의 투박한 김밥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사실 김밥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엄마의 부재로 인해 작아져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여전히 그 기억이 생생한 것을 보면, 그날의 마음이 두고두고 불편했던 모양이다. 나도 여느 초등학생들처럼 다른 아이들과 달라 보이는 것, 친구들보다 못한 것에 대해 보이지 않는 열등감이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소풍 도시락 김밥의 지름이 정해져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준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소풍을 가게 되어, 아이에게 도시락을 어떻게 싸줄까 물었다. 준규는 자기가 김밥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샌드위치를 싸달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김밥을 싸오지 않겠냐며 마음을 바꿔보려는 의도로 여러 차례 물었지만 아이는 단호했고, 결국 샌드위치를 싸주었다. 

   그날 오후 소풍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도시락은 맛있었냐고 물었더니 아이의 대답이 참 신선했다. 너무 신난 목소리로 아이가 말했다 “엄마, 글쎄 아이들이 모두 다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 왔더라고요. 제 도시락만 샌드위치였어요.” 내심 놀라서 아이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땠어?” 아이가 의외의 대답을 했다. “그래서 참 좋았어요. 저만 샌드위치라서.” 

   나는 그날, 내 어릴 적 외할머니의 김밥이 생각났다. 크기가 친구들것과 같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김밥을 꺼내지도 못했는데, 준규는 자기 것이 달라서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 애들은 다 저런가? 하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평균적 인간이 되기 위해 소극적으로 변한 아이 


   그런데 준규가 2학년, 3학년이 되면서는 조금씩 달라졌다. 친구들이 하는 것으로, 친구들과 비슷한 것으로 맞추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또한 그럴 때라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는 특히나 남들과 다른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클 때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기 두려워서가 아닐까 하는 걱정스런 마음도 들었다.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토드 로즈의 책 《평균의 종말》(21세기북스, 2018)에 소개된 이야기다. 1940년 말, 미국 공군 조종기의 원인 모를 추락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여 전투기 조종석 설계 검토를 실시하게 된다. 전투기 조종석은 1926년경 남성 조종사 수백 명의 신체 치수를 잰 뒤 이 자료를 기준으로 조종석 규격을 표준화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공군의 신체 치수 재측정 업무를 맡았던 길버트 S. 대니얼스 중위는 20세기 초반 집중되었던 이른바 ‘전형화’, ‘평균화’가 얼마나 의미 있는 수치인가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대니얼스는 조사된 데이터들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고, 결국 조종사 4,063명 가운데 10개 전 항목에서 평균치에 정확히 해당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표준화된 조종석은 결국 그 누구에게도 맞지 않게 설계된 것이었다. 

   1952년에 대니얼스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평균적 인간’의 관점을 취하는 사고 경향에 곧잘 빠지는데 이는 조심해야 할 함정이다. 평균적인 공군 조종사를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이유는 이 집단만의 어떤 독특한 특징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특징, 즉 신체 치수의 극도의 다양성 때문이다.” 

   결국 공군은 평균을 기준으로 삼던 관행을 버리고 개인 맞춤형을 새로운 지침 원칙으로 삼으면서 설계 철학에서 비약적 진전을 이뤘다. 

   신체 치수조차도 개개인은 저마다 다른 개별성을 가지고 있다. 신체 치수가 그러한데 하물며 인간의 뇌로부터 비롯되는 생각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 없고, 개개인의 취향도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학교는 여덟 살이면 무조건 1학년 수업을 일관된 수준으로 선생님이 주는 만큼 들어야 한다. 기초 교육, 의무 교육 이라는 미명 아래 그 평균에 맞춰진 교육에 힘들어하거나 지루해하면 학습 부진아 또는 인내심이 부족한 아이인 것처럼 본다. 심지어 문제아 취급을 받기도 한다. 

   어쩌면 학교라는 사회에서 만드는 평균적 사람으로 아이들이 길들여 지면서, 평균이라는 알 수 없는 목적에 사로잡혀 때론 낙오자로, 때론 우월감을 갖고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처음 시작은 김밥 하나, 옷 입는 취향 같은 하찮은 것이겠지만 나중에는 왕따라는 무서운 집단 따돌림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심도 든다.




그저 성향이 달랐을 뿐, 틀린 게 아니다 


   준규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인지가 조금 빠른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평소 준규의 말투나 행동이 친구들에게는 잘난 척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 이런 점을 준규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잘난 척하는 게 아닌데 친구들이 그렇게 느낄까봐 준규는 언젠가부터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친구들 앞에서는 원하는 바를 모두 표현하지 않았다. 

   준규는 어느 집단에서도 튀는 아이였다. 존재감 없이 조용히 앉아 있기보다는 화려한 언변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길 좋아했다. 목소리도 작지 않다. 그 덕분에 여자 친구들로부터는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다는 말을 들을 때가 많았지만, 남자 친구들로부터는 왠지 잘난 척하는 느낌의 아이로 받아들여질 때가 있는 듯했다. 

   준규의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준규가 자기만의 색깔이 있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사랑이 넘치는 아이라고 했지만,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준규가 선생님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 다루기 어려운 아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준규는 선생님 말씀에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왜 따라야 하는지를 되물었을 것이다. 준규는 늘 ‘왜?’를 알고 싶어 했다.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왜 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으면 고분고분히 지시를 따르는 법이 없었다. 준규의 이런 행동이 선생님에게는 건방져 보였을 수도 있 다. 이후 준규는 스스로 말하길 자기는 선생님에게 그저 성가신 존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문제아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해도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결국, 같은 아이지만 누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받아 들여질 수 있다. 내 아이가 완벽해서, 잘나서 혹은 부족해서, 못나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성향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다른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 없듯이 우리 아이도 모든 사람에게 예쁨을 받을 수 없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 아이가 어떤 친구들, 어떤 담임 선생님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던 것은 내 아이의 잘못도 아니고, 그 친구들, 그 선생님의 문제도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그저 그들과 성향이 달랐을 뿐이다.




엄마, 학교는 왜 다녀요? ―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1학년 1학기를 마쳐갈 무렵, 등굣길에 나서느라 마루에서 신발을 신던 아이가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엄마, 학교는 왜 다녀야 해 요?” 질문을 하던 아이의 그 간절하고도 진지한 눈빛을 떠올리면 아직도 미안하고 울컥해진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워낙 에너지가 넘치는 남자아이다 보니,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실컷 놀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묻던 그날 이후 내 마음은 바빠졌다. 

   그 질문을 받았던 아침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친구들과 놀려고 가는 거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가 의무 교육이야. 준규가 왜 다 니는지 6년 동안 이유를 찾아보면 어떨까?” 등의 대답이 나의 한계였다. 그날 이후 그 이유를 찾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좋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아이는 그 질문을 다시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이의 질문에 대한 답 또는 대안이 될 만한 것들을 조용히 찾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 스스로도 그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안학교, 홈스쿨링, 유학 등 다른 교육 환경에 대한 고려가 시작되었다. 아이에게는 내색하지 못했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여지가 있을 경우 아이 스스로도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알아보았다. 

   혹시나 아이가 하나라서 너무 아이에게 몰두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겁이 나던 때도 있었다. 이도 저도 아닌 이런 상황으로 6년을 보내는 것은 아닌가 걱정되기도 했다. 남들은 잘만 다니는 학교를, 내 욕심으로 더 좋은 교육을 해주겠다고 과욕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의심도 해보았다.

   그럴수록 나는 나를 개발하기 위한 수업들을 들으며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나를 위한 곳으로 내 시선을 돌려가며 시간이 흐르도록 내버려둔 것 같다. 내가 너무 유난스러운 엄마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혹은 내 아이는 다르다는 생각의 이면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특별하다는 우월감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의심했다. 

   지금도 그 시간을 생각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온전히 나의 인생도 아니었기에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지만, 아이에게 결정하라고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마땅히 상의할 만한 곳도 없었다. 아이 아빠는 그저 나를 좋은 엄마라며 응원할 뿐이지, 고민을 같이하는 충분한 대화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 또한 그런 경험이 없을뿐더러, 육아에 있어서는 본인보다 내가 한 수 위라며 늘 한 발 뒤에서 응원하며 지켜볼 뿐이었기 때문이다.


진서원 <준규네 홈스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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