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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규네 홈스쿨 Sep 07. 2020

결단! 한달간 학교를 쉬어보자

준규네 홈스쿨링 이야기 4


준규의 홈스쿨링 미리보기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를 묻는 아이의 질문을 받고 1년쯤 지났을 무렵이다. 아이의 짜증은 점점 늘어갔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본인도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이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지는 듯 보여 하루는 아이와 진지한 대화를 시도했다. 

   집 근처 정독도서관 야외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준규야, 학교 다니는 게 어떠니?”라고. 준규는 수업 시간도 너무 지루하고, 선생님도 싫고, 친구들과도 그저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학교는 무조건 다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준규에게 조심스럽게, 지난 1년 동안 대안이 될 만한 교육 환경들에 대해 알아보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준규에게 말했다. 

“준규가 혼란스러워할까봐 말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엄마가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아. 네가 원한다 면 홈스쿨링을 할 수 있으니 생각 해볼래? 갑자기 결정하는 게 어렵고 두려우면 한 달 정도를 쉬어보 는 방법도 있어.” 

   그랬더니, 아이가 요즘은 조금 참을 만하다고 일단은 다녀보겠다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그런데 그 대화를 나눈 후 신기하게도 아이는 180도 달라졌다. 그동안 학교생활 때문에 피곤해서 그러겠거니 하며 넘겼던 짜증이 확 줄어 있는 모습에 우선 놀랐다. 달라진 아이를 보며, 본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엄마가 공감하고 있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아이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했다. 

   그렇게 학교를 잘 다니는가 싶더니, 어느 날 “엄마, 지난번에 말씀하신 것처럼 학교를 잠깐 쉬는 것 말인데요…….”라며 아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나는 학교 담임 선생님과 상의해보고 그렇게 해보자고 했다. 그 후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한 달 정도, 학교를 쉬었다. 준규가 2학년이던 해, 10월이었다.


   한 달 내내 친구들 만나는 자리도 일부러 만들지 않았고, 주말에 여행 가는 일정 또한 되도록 만들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커피 로스팅을 배우러 다니고 있었는데, 더 자주 나 혼자 바깥 외출을 했다. 텔레비전도 없는 집이니, 혼자서 하루 종일 뭘 하고 노는지 지켜보며 가만히 내버려 뒀다. 아직 어려 집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섭거나 불편할 수도 있었을 텐 데, 아이는 무서운 책이나 영화를 보지 않으면 괜찮다고 했다. 

   학교를 가지 않는 한 달 동안 준규는 일어나서부터 실컷 책을 보거나 종이접기, 레고 만들기, 모험 소설 쓰기, 산책하기 등으로 하루를 아낌없 이 써나갔다. 매일 밤 신나게 모험하는 꿈을 꾼다며, 아침에 눈뜨면 신나는 꿈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은근히 학교 가고 싶은 마음이 들길 바라며 “친구들 보고 싶지 않니? 학교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라고 물어 봤지만 아이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이의 외로움은 분노로 변해가고 있었다 


    꿈같던 10월 한 달을 보내고, 처음 약속대로 다시 학교에 가게 되었다. 더 쉬게 하고 싶은 마음과 학교를 다시 가게 되어 반가워했으면 하는 마음이 교차했다. 처음 일주일은 친구들과의 소식을 전하며 신나 보였다. 그런데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아이는 이내 시들해졌다. 아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학교에 다시 가니까 친구들도 반갑고 좋았는데, 일주일 지나니까 그렇지도 않네요.” 그렇게 그 학기를 힘겹게 마치며, 나는 여전히 남들과 같은 배에서 내리지 못하겠다는 욕심의 끈을 놓지 못했다.

    학교를 쉬는 동안 아이가 정말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을 봤으면서도 학교라는 곳을 포기하지 못했다. 말로는 아이에게 너의 의견을 말해보라 했지만, 어쩌면 아이가 흥미 있어 하는 교육청 영재 교육원 수업을 빌미로 아이에게 학교를 더 다녀보기를 권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학기가 더 지났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서로 누군가의 입에서 결정의 단어가 튀어나오길 기대하며 시간을 기다렸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문제는 아이가 결정할 만큼의 무게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당시 아이한테 결정권을 슬쩍 넘기고 최선을 다한 부모인 양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학기를 더 다니던 아이는 거의 시한폭탄 같은 상태로 3학년 2학기 개 학을 앞두고 있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부터 아이의 히스테리가 극에 달하더 니 일시적인 틱증상(나중에 그것이 틱 증상 이라는 것을 알았다.)까지 보이고 있었다. 

   이미 그때는 분노로 무장되어, 속내를 잘 털어놓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겨우 아이를 달래 들여다본 아이의 마 음속에는 수업 시간에 대한 불만족뿐만 아니라,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친구들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도 담임 선생님과는 괜찮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준규는 어이없다는 듯 본인의 일기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방학 동안 준규 혼자 이모가 있는 노르웨이에 다녀온 이야기로 가득한 일기장에는 선생님의 답글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준규 혼자 노르웨이를 보낸다는 것이 부모님한테도 큰 결심이 필요 하셨을 텐데, 준규가 방학 동안 이모와 함께 좋은 경험을 많이 했겠구나. 2학기 때는 좀 더 멋진 모습 기대할게.” 

   지극히 정상적인 선생님의 답글에 의아해하며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준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 이것 좀 보세요. 2학기 때 더 멋진 모습 기대한다고 선생님이 써놓으신 걸 보는 순간 저는 정말 화가 났어요. 왜냐하면 지난 학기 내내 우리 선생님은 저를 믿어주지도 않았고, 제게 기대라는 걸 하지 않았거든요. 부모님들이 일기장을 보실 걸 알고 이렇게 써놓으신 거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고요!” 

   나는 더 이상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준규는 담임 선생님에게조차도 기댈 수 없는 상태였고, 그 외로움은 이미 분노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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