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규네 홈스쿨링 이야기 15
아이는 외부 개입 없이 자기 스스로 공부하고 일정을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가끔씩 내게 선생님을 구해주면 안 되냐고 묻기도 하고, 강제로 정해진 시간에 공부하도록 시켜 달라고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정도는 준규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다시 확신시켜주면서, 더 어려운 공부를 하게 되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칸 아카데미(Khan Academy)를 통해 준규 스스로 공부하고 있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이지만 이해되지 않을 때는 한국어 번역 기능을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부 과목은 한국어 사이트도 있어서 그걸 이용하기도 한다. 칸 아카데미는 준규가 4학년 후반부쯤 되는 시기에 접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5th grade의 수학과 Computer Science 과목을 선택해서 들어 보았다. Computer Science는 아이가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해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지만 수학은 8th grade까지 학습을 이어갔 다. 이미 공부했던 초등학교 과정 복습과 영어 공부를 동시에 할 수 있 어서 유익한 방법이었다.
홈스쿨링을 하며 준규가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은 선의의 경쟁자나 동료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학습 사이트를 접하고 난 후, 아카데미 내에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먼 나라에서 공부하고 있는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앞서간 다른 학습자들의 흔적을 보며 스스로 달성하고 싶은 목표도 생겨서 매우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한동안 학습을 할 때마다 자라는 아바타 기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명예의 전당(고수 수준의 학습량)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을 매우 궁금해하고, 차곡차곡 쌓이는 본인의 학습량을 확인하며 게임에서 레벨 올리듯 만족스러워한다.
준규는 매일 칸 아카데미 사이트를 이용해 그날의 계획된 학습량을 공부했다.
본인만의 속도와 본인만의 방식으로 나아간다. 너무 쉬우면 건너뛰기도 하고, 강좌를 보지 않고 문제 풀이만으로도 체크할 수 있을 때는 그냥 복습 개념으로 공부하기도 한다. 그렇게 스스로의 교실에 앉아 공부를 하다가 도움이 필요하면 날 부른다.
며칠 전,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요즘에는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이유가 뭐야?”라고 물었다. 아이가 웃으며 “예전에는 소수를 뭐에 쓸 거고,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들로 가득했는 데 요즘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라고 했다. 언젠가 배운 개념들을 써먹을 곳이 많을 것 같다면서, 공부하다 보니 생활에 필요한 부분들도 예상 밖으로 많다고 했다.
때로는 본인만의 인지 속도로 내달리기도 하고, 천천히 쉬어가기도 한다.
나는 엄마로서 아이가 지치지 않고 달리기를 계속 할 수 있도록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게 계동학교(우리 가족은 홈스쿨링하 는 현재 상황을 그렇게 부른다.)는 학생을 천천히 살피며 커리큘럼의 완급 조절을 해가고 있다.
가끔은 나도 엄마인지라, 아이의 인지 능력을 보고 욕심이 날 때가 있다.
그럴 땐 조금만 더 성실히,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 수업 시간만큼만 공부하면 어떨까 하고 기대감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엄마의 허황되고 끝없는 욕심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늘 나 스스로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아이 인생에 대해 부모가 욕심을 품는 것,
그것만큼 위험하고 자제해야 하는 것이 없다.
홈스쿨링을 하면서 아이와의 물리적, 정신적 거리가 더 가까워졌기 때문에 더 유념해야 한다.
아이 스스로 사회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거리를 두고 지켜봐주는 것, 그것이 어쩌면 부모 입장에서도 익히고 배워야 하는 가장 큰 부분일 것이다. 아이 또한 그 시간들을 통해 부모로부터 조금씩 분리되어 건강하고 안정감 있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학습에 대한 개념이 서서히 바뀌고 있고, 개개인의 다양성을 반영한 자신만의 콘텐츠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MOOC(온라인 공개 강좌 플랫폼으로, 대학과 전문 교육기관의 강의를 온라인 에 무료로 공개해 전 세계 누구나 집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등을 활용해 온라인 학습이 얼마든지 가능해졌고, 다양한 학습 도구들을 통해 본인 만의 관심사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평생학습의 개념이 만연한 이 시대에, 어려서부터 본인만의 속도로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의 이 환경이야말로 현 시대 상황을 반영한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즐거운 공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