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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연봉500만원 경단녀

오늘도 완벽한 경단녀 탈출을 꿈꾼다

by 준규네 홈스쿨


아이가 학교 대신 초등 과정을 홈스쿨링 하며 남들 보기에 나는, 열혈 엄마 중에서도 갑이었다. 아이 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아이에게 목을 매고 내 인생을 갈아 넣는 부모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심지어 내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 마저도 자식 교육에 너무 유난스러운 것 아니냐며 조심스레 걱정의 메시지들을 건네기도 했다.


어쩌면 일부 맞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랬기에 더더욱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내 인생을 아이 인생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
아이 인생에서 내가 먼저 속도를 내지 않는 것,
내 기준으로 아이의 틀을 제한하지 않는 것.



이러한 생각들을 가슴에 항상 품으며 나를 찾고자 노력했다. 홈스쿨링 하는 동안, 커피를 배우러 공방에 더 자주 다녔고, 아이 책을 빌리는 게 아니라 내 책을 더 찾아 읽었다. 온종일 아이에게 시선이 가고, 걱정되는 마음을 누르고자 온라인으로 인문학 강의, 철학 강의, 교육 강의 등을 관심 가는 대로 들으며 내 시간표를 세워나가야 했다. 매일같이 늦잠을 자는 아이를 보며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며 여유 있게 보는 날도 있었지만 때론 내가 먼저 일어나 책을 읽고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어야 했다. 시어머니보다 더 무섭게, 자식은 나의 하루를 그대로 들여다보며 배웠고 자라고 있었다.


아이 나이가 12살이 넘어가자, 내가 애초 계획했던 '아이 초등 6학년 즈음에 내 일을 시작하자'는 계획이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는 것 같아 불안했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하나를 더 고민하며, 내가 아이를 낳고 10년 넘게 육아에 과하게 몰입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적당히가 없었고, 문제가 생기면 늘 책을 찾아 읽으며 웬만한 교육서들은 다 읽은 수준이었다. 대학에서 배운 공부를 어떻게든 활용해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지금 내가 잘하는 것을 해보자는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이 세상의 많은 엄마들에게 고하고 싶었다. 우리가 아이를 키우며 최선을 다하고, 인내를 배우며 그만큼 어른으로 많이 성장한다는 것을... 그 시간들을 경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엄마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세상에서 내가 아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엄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왜곡시키지 않고, 편협하지 않게 전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평생에 걸쳐 배운다. 그 시간들은 사회생활 그 무엇으로도 배울 수 없는 아픔이며 성숙의 시간이다.


그 시간들을 녹여 직업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이 섰다. 그리고 그 용기는 내가 아이 키운 경험과 홈스쿨링 한 이야기를 위주로 <준규네 홈스쿨>이라는 책을 쓸 수 있게 만들었다. 내가 매일 원고를 쓰는 동안 홈스쿨링 하며 놀던 아이가 어깨너머로 보더니, 자기도 책을 써야겠다며 판타지 소설을 쓰고 있었다. 자식이란 그런 존재다. 어미가 하는 모습을 따라 하고, 그러기에 나의 하루를 늘 긴장하게 만드는 존재.


책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과 응원을 받으며 평생 누려보지 못한 행복함과 성취감을 느꼈다. 이후 출간 강연과 제주 대안센터, 여성가족재단, 다양한 부모 독서모임에서 강연을 하며 횟수를 늘려나갔다. 내가 세웠던 계획대로 아이 초등학교 6학년 되던 해의 일이었다. 롯데마트 문화센터라며 강연 요청이 들어왔고, 광주 첨단점을 방문해 부모교육 강연을 했다. 이후 전국 단위로 강연 섭외가 들어오며 이대로 나의 제2의 인생이 자리를 잡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했고,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온갖 행사들이 취소가 되었다. 강연이라고 다를 이유가 없었다. 줄줄이 잡혀있던 강연들은 모두 취소가 되었고, 간간이 홈스쿨링과 관련한 원고 청탁이 들어오는 수준이었다. 준규네 홈스쿨이라는 주제로 블로그를 운영하며 어머님들의 고충에 경험을 나누고 글을 썼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직업이라 부르기에는 여전히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허울만 그럴듯했다.


또다시 심장은 쭈그러들었고, 의기소침해졌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아이 키우는 일과 집안 대소사 및 집안일들로 속절없이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경단녀를 드디어 탈출하나 싶어 날개 달고 날으려던 순간 그냥 주저앉은 기분이었다.


삶이란 내 뜻대로 절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좌절하고 의기소침해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난 아줌마다. 그리고 엄마다. 주저앉을 수 없었다.


다시 독서모임을 찾았다. 강연을 하며 아이들 학습과 성적에 목매는 엄마들을 보며 아이들 놀이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가에 대해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책, 특히 뇌과학 책을 읽고 공부를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나가며 함께 할 수 있는 이들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추스르며 1대 1 온라인 코칭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내 아이 하나 키운 경험으로 편협한 시각을 가지는 것 또한 위험하다 생각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집이 학교로 바뀌어버린 시대에 아이들과의 트러블로 고심하고 있는 부모들, 내가 지냈던 시간처럼 학교를 관두고 집에서 홈스쿨링 하는 자녀들과 그 부모들에게 나의 선 경험들을 나누고, 코칭을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하게 되었다.


한 팀 두 팀, 코칭 의뢰가 들어오며 띄엄띄엄 일을 하고 있다.

여전히 나는 연봉 500만 원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지만, 언젠가 이 연봉이 5000이 되고, 그보다 많아지는 날을 기대한다.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나의 엄마로서의 경험과 시간들을 직업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 세상 엄마들에게, 여자들에게 줄 수 있는 희망이지 않을까?


여전히 난 경제적 도움이 크게 되지 못하는 나를 되돌아보며 남편에게 조금만 기다리라 말한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의심하며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얼마 전 우연히 들은 스마트 스토어 부업은 뭔가... 하며 유튜브를 기웃거린다. 앞으로도 나의 도전이자 삶의 발버둥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난, 언젠가 나의 이 시간들이 만나 의미 있는 나를 만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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