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시작하자 친구들과의 교류가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 홈스쿨링을 하는 개개의 그룹들은 소규모이거나, 서로 알음알음 알아서 함께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아, 적합한 그룹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홈스쿨링 센터라고 간판이 내걸린 곳이라도 있으면 찾아가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터넷 등을 통해 아이 아빠가 홈스쿨링을 지원해 주는 단체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대안교육을 지원해주는 정보들을 구할 수 있는 ‘민들레’ 같은 단체를 찾아가 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중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이었고 초등학생을 위한 정보나 커뮤니티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들이 마련되고는 있지만 충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트윈세대★를 위한 대안 프로그램들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 대체로 8~12세 사이의 아이들로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의 중간 세대를 트윈세대라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남편이 찾은 곳이 하자센터에서 진행되는 청개구리 작업장이었다. 하자센터는 영등포 지역을 기반으로 지역 주민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인데, 그동안 서울 지역 곳곳을 다니며 팝업 놀이터 행사로 진행되던 청개구리 작업장이 2017년도부터 하자센터를 기반으로 상시 프로그램으로 운영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개구리 작업장은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며 놀고, 즐겁게 공간을 가꿔보고자 하는 어린이 모임이다.
목공팀의 지원을 받아 목공 작업 중인 아이들
11~13세 어린이 10명 내외를 매년 인터넷(www.haja.net)을 통해 모집하는데, 별도의 자격 요건이나 제한은 없으며 뚝딱뚝딱 무언가 만들며 놀기를 좋아하는 친구들, 또래들과 어울려 놀며 마을의 구성원으로 활동할 어린이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매주 1회씩 친구들과 1년에 걸쳐 자신들만의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진행하는 것으로, 청개구리 작업장에 참여하려면 종로에서 영등포를 오가야 하니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공부보다 친구들과의 교류를 더 걱정했던 터라 그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너무 다행이고 반가웠다.
기적처럼 만나는 보물 같은 곳들
매주 금요일마다, 청개구리 작업장을 오가며 아이들이 1년 동안 기획하고 실행한 것은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1년에 걸쳐 뭘 만들지 프로젝트 기획 단계부터 실행, 운영 및 관리까지 모두 아이들 몫이었다. 하자센터를 둘러보는 첫날의 일정을 시작으로 아지트의 위치와 공간의 크기를 의논하고, 하자센터의 목공방에서 목공팀의 도움을 받아가며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들만의 아지트를 천천히 만들어나갔다.
다 만든 후에도 운영에 관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회의를 개최하여 의견을 모으고, 운영 규칙을 세우는 등 청개구리 작업장 내 어른이(어른+어린이)로 불리는 스태프인 하루, 뭉, 하리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은 제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워나갔다. 의견 대립 때문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협동하며 개개인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려고 애썼다.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어가며 의견을 모아가는 활동들은 어디에서도 하기 힘든 값진 경험이었다. 얼마 전 그곳만의 열린 놀이 및 교육 방식이 EBS TV <지식채널 e>에 방송되기도 했다. 청개구리 작업장에서는 2019년 3년 차 신입 멤버들을 맞아 또 신나고 즐거운 작당모의가 이어지고 있다. 준규는 여전히 아이들을 위한 행사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그곳으로 달려간다.
학교를 다닐 때는 보이지 않았고,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소중한 공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준규를 한 뼘씩 자랄 수 있게 해주는 보물 같은 곳들을 기적같이 하나씩 발견하게 된다. 학교 교육에 절망했던 적도 있고, 반감과 무기력함이 공존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교육을 해보고자 하는 의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애쓰고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다.
어린이들의 상상력 실험실, Frog Lab
얼마 전 하자센터에 Frog Lab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탄생했다. 청개구리 작업장은 초등 고학년의 고정 멤버로 1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반면, Frog Lab은
재활용을 이용한 실험실
영유아부터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예약제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 재활용품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공간 안에서 아이들은 그들만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이 어린이 전용 실험실에서 아이들 각자 호기심에 이끌리는 대로 두 시간 동안 만든 발명품들을 들고 나왔다. 준규는 이날, 재료와 공구 지원이 가능한 이 천국 같은 공간에서 톱질까지 해가며 재료들을 자르고 이어서 만든 본인만의 총을 들고 나왔다.
Frog Lab
보기에는 그저 재활용품 장난감 같지만 총의 작동 원리를 다루어야 하니, 이 안에 물리가 있고, 기계 메커니즘이 있다. 스스로 만들고자 하는 동기 아래 유튜브를 찾아보며 총의 작동 원리를 영상을 통해 배우고, 그것을 스스로 구현해보는 활동 그 자체가 사실 과학 공부이기도 하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구사가 힘들 수도 있지만, 박스를 자르고, 나무젓가락을 이어 붙여서 만들기 시작하던 것에 로봇 부품들이 더해져 재미있는 장난감이자 로봇이 탄생하는 것이다.
요즘은 메이커 스페이스들도 많이 생기는 추세이고, 이곳 Frog Lab처럼 아이들이 재미있는 작당을 할 수 있는 곳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앞으로도 동네마다 이런 곳들이 더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 또한 학교에서, 그리고 수업 현장에서도 이런 다양하고 기발한 시도들이 적극적으로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학교가 지루하고 가기 싫은 곳이 아니라 아침에 눈뜨면 뛰어가고 싶은 즐거운 곳이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호기심이 날개를 달 수 있고, 그 날개를 달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
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의미에서 작은 공간이지만 이런 시도들을 씩씩하게 해나가고 있는 이곳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