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규네 홈스쿨링 이야기 19
홈스쿨링의 장점 중 하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심심할 틈이 많이 생긴다. 그 시간들이 쌓이면 아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고 싶어 하는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단,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이 없는 환경에서 더 효과적이다.
준규는 어려서부터 돈에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의 월급을 늘 궁금해하고, 어떤 직업이 돈을 많이 버는지,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는지 늘 물었다. 아이 앞에서 ‘돈 돈’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주위 어른들에게 한 달에 수입이 얼마냐고 물으면 당황스럽다. 그런 질문은 너무 사적인 질문이라 실례가 된다고 해도 아이는 늘 궁금해했다.
숫자나 돈에 관심이 많은가 싶어 어렸을 때는 수학 동화(3~4세), 경제 동화(6세) 등을 보여주었다. 여덟 살 이후에는 보도 섀퍼의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을파소, 2014), 니콜라우스 피퍼의 《펠릭스는 돈을 사랑
해》(비룡소, 2000)와 같이 아이들 눈높이에서 볼 수 있는 책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이는 그 책들을 매우 좋아했다. 아이에게 네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다 보면 돈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라고 늘 이야기해주지만 참 어렵다.
사실 돈에 대해 생각해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을 직접 벌며 느끼는 것이다. 여섯 살 무렵, 아이가 돈을 벌어보겠다고 집 앞 계동길에 돗자리를 폈던 적이 있다. 아이가 뽑기 장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다지 좋은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어서 말리다가, 그래 직접 한번 해보고 느껴라 싶어서 조건부 허락을 했다.
준규는 박스 뒷면에 칸을 그리고, 숫자를 적어 넣으며 돈 벌 생각에 신이 나 있었다. 당시에 아이가 만든 종이 접기들이 상자 가득 넘쳐나서 제안을 하나 했다. 생애 처음 뽑기로 순식간에 천 원을 잃었던 준규 경험을 상기시키며, 꽝 선물로 준규가 접은 종이접기를 주라는 조건이었다. 뽑기라는 것이 정당하게 돈 버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선물을 하나씩 주어야 한다고 이유를 붙였다.
그날 아이는 비협조적인 부모 탓에 계동길에 돗자리를 펴고 홀로 앉아서 손님을 기다려야 했다. 20분 만에 다행히 한 명의 꼬마 손님으로부터 400원을 벌었고, 이제 장사를 그만하겠다며 준규가 돌아왔다. 꼬마 손님이 한 번 뽑기를 하더니, 꽝 선물을 받고 세 번이나 더 했다고 한다. 그리고 뽑기보다 상품으로 준비된 종이접기 로봇에 관심이 더 많았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접을 수 있는지, 더 살 수는 없는지를 물었다고 했다.
아이에게 장사를 허락한 뒤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아이가 느꼈던 감정이다. 아이가 말하길,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상태로 혼자 길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데, 기분이 이상했다고 했다. 손님이 안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는 다르게, 뭔가 자신이 초라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돈 벌기 참 어렵네요.”
무조건 못하게 했더라면 아이는 화를 내거나 나를 들들 볶아 결국엔 어떻게든 하고 말았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돈을 벌기 위한 그 준비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활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길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 당당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아이가 직접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 예상외로 배울 것이 많았던 경험이 되었다.
뽑기 장사 이후 아이는 돈을 벌겠다고 나서는 일 없이 잠잠했다. 그런데 홈스쿨링을 한 지 1년쯤 지난 열한 살 때 준규가 ‘달시장’ 참가 신청을 해달라고 했다. 달시장은 준규가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청개구리 작업장이 소속된 하자센터에서 열리는 행사로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 기업, 예술가, 지역 주민들의 지역 내 상품 판매와 홍보를 위해 열리는 축제였다.
미성년자이고 학생증 하나 없다 보니 아이는 이럴 때 보호자가 필요했다. 준규는 휴대폰도 없고, 이메일 주소도 늘 까먹는 아이다. 참가 신청, 사전 모임, 행사 당일 판매부스 배정 절차 등 어른이 해주어야 하는 절차들은 모두 내 몫이었다. 그래도 무기력하게 있던 아이가 자발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하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나는 기꺼이 도왔다.
아이가 팔고자 했던 것은 자신이 접었던 다양한 종이접기 작품이었다. 당시 아이는 ‘페이퍼 빌드’라는 종이접기 유튜버의 로봇 만들기에 깊이 빠져 있었다. 보통 로봇 하나당 A4 종이 100장 이상이 들어가는 것으로 제작 기간은 일주일 이상이었다. ‘사토시 카미야’라는 일본 작가의 종이접기도 한참 좋아했는데, 그 종이접기도 최소 4시간 이상 접어야 완성할 수 있었다.
아이는 어린이 대상으로 종이접기 작품을 팔고 싶은데, 너무 고가이면 안 된다고 했다. 또한 오랜 시간에 걸쳐 접은 큰 건담 로봇은 금액을 매기기도 힘들뿐더러 팔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결국 그 작품들은 전시용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달시장’ 일주일을 앞두고 꼬마 손님들 눈높이에 맞춘 종이접기 작품들을 다시 준비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게임에서 한참 유행하던 ‘겐지 검’, ‘표창’ 그리고 갖가지 동물들을 판매용으로 준비했다. 행사 당일 날 현장에 도착하자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판매자들이 있었고, 준규가 배정받은 자리는 맨 구석이었다. 준규는 달시장 행사 전날, 손님이 하나도 오지 않는 꿈을 꾸었다며 안 팔릴까 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나도 용기를 낸 아이의 시도가 부디 좋은 경험과 기억으로 남길 간절히 바랐다.
그때 어디선가 1~2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세 명이 우리 테이블에 있던 종이 로봇들을 보더니 이내 달려와서는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꼬마 손님 1: 형, 이 건담 로봇 파는 거예요? 얼마예요?
준규: 응, 그건 너무 비싸서 너희가 살 수 없을 거야. 형이 접는 데 일주일 넘게 걸렸거든.
꼬마 손님 2: 이걸 형이 접었다고요? 어떻게요?
준규: 형이 종이접기를 8년째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면 너희도 만들 수 있어. 내가 봤던 종이접기 책 보여줄까? 대신, 너희들이 살 수 있는 종이접기 작품도 여기 있어.
준규가 달시장에서 팔 거라며 집에서 이상한 검을 접고 있기에, 속으로 별로라고 생각했었다. 평소에 접던 후지모토 무네지의 ‘오리 로보★’ 로봇이 훨씬 더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상할까 봐 차마 말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검을 보자마자 탄성을 지르며 사기 시작했다. 친구가 산 겐지 검을 보고 따라온 아이들도 많았다. 그렇게 테이블 앞이 꼬마 손님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어른들도 정말로 준규가 접은 게 맞냐며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었다. 같이 사진을 찍자는 요청부터 유튜브나 블로그가 왜 없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오리로 보는 종이접기를 뜻하는 오리가미와 로봇을 합성한 단어로 종이접기 로봇을 뜻한다.
허락된 판매 시간은 총 4시간이었는데, 초반 1시간 반 만에 준비해 간 작품들이 모두 팔려버렸다. 판매 문의가 자꾸 들어오자 준규가 현장 제작을 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면서 검 하나 만드는 데 30분 정도 걸린다며 예약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아이는 입으로는 손님들을 응대하고, 손으로는 쉬지 않고 예약된 것들을 접었다. 나는 가격판 옆에 예약 현황을 메모해주고, 계산을 도와주며 잡일을 도왔다. 퇴근 후 도착한 아이 아빠까지 합세해 준규가 알려준 기본 유닛 접기를 해야만 했다.
그날 준규의 수익금은 5만 3천 원이었다. 500원에서 2천 원짜리 종이접기를 팔아서 5만 원이면 꽤나 큰돈이었다. 우리 부부는 준규의 성공적인 경험을 칭찬하고 함께 기뻐했다. 준규는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해 줘서 기뻤다면서, 달시장에 참여하길 잘했다고 했다. 그런데 금액 면에서는 만족스럽지는 못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레모네이드를 팔았던 청개구리 작업장 친구들은 12만 원 정도의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본인이 접고 익히며 터득한 것에 대한 대가 치고는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기분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피카소의 그림 값에 대한 이야기며 예술품 값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준규 너의 종이 접기가 지금은 비록 2천 원이지만, 2천만 원이 되는 날이 올 거라며 격려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