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규네 홈스쿨링 이야기 20
아이가 종이접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며 여러 가지 제안을 했던 적이 있다. 한옥에서 작은 전시회를 열어보자, 마을 서재에서 종이접기 수업을 해보자, 종이접기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보자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준규의 대답은 늘 ‘NO’였다. 본인보다 잘 접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그런 반응이 늘 속상했다.
그런데 달시장 판매를 계기로 준규의 마음이 움직였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준규는 ‘미르의 종이접기’라는 채널을 개설하여 지금도 구독자를 한 명씩 늘려가고 있다.
처음에는 아이 스스로 책을 보며 서툴게 시작했다. 휴대폰도 없는 미성년자 아이가 유튜브 계정을 만드는 것부터 복잡하다 보니 아빠의 계정을 사용해 채널을 만들고 내 휴대폰을 빌려 동영상 촬영을 했다.
초반에는 본인이 궁금하고 좋아서 따라 접어본 작품들 위주로 업로드했다. 두세 번 반복해서 접어보고 어느 정도 숙련이 되어야 촬영에 들어갔다. 한 작품을 접는 데 몇 시간씩 걸리는 것들도 능숙하게 접기 위해 여러 번 반복하는 아이를 보며 천천히 따라 접는 것을 올리는 것도 괜찮지 않으냐고 권했다. 하지만 아이는 완벽하게 습득되었을 때만 영상을 올려야 한다고 고집했다. 아이가 너무 완벽한 모습만을 보이려고 하는 것 같아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콘텐츠 하나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준규의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내가 동영상 편집을 도와주었지만 이제는 아이가 하기 때문에 나의 역할은 영상 촬영을 하는 동안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해준다거나 근거 없는 악성 댓글을 모니터링하며 아이가 상처 받지 않게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아이가 처음 유튜브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이 악성 댓글이나 근거 없는 비방용 댓글이었다.
아이는 정성스럽게 접어서 업로드한 영상에 엄지손가락이 아래로 내려간 버튼이 눌러져 있으면 처음에는 황당해하기도 하고, 얼굴 없는 누군가의 이유 없는 야유 같아서 속상해했다. 옆에서 보는 나조차도 그런 버튼이 눌려 있거나, ‘별로 잘 접지도 못하면서.’ 하는 투의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면 화가 났다. 준규에게 “상대방이 잘하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것도 용기 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행동 같아. 이렇게 남이 올린 콘텐츠에 안 좋은 댓글을 달거나 버튼을 생각 없이 누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일 거야. 이런 식으로라도 누군가에게 관심받고 싶어서 왜곡된 방법을 택하는 게 아닐까 싶네.”라며 온라인상에서 지켜야 하는 인터넷 윤리에 관해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나의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설명을 통해, 이제 아이는 댓글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 같다. 악성 댓글에 신경 쓰기보다는 관심사를 공유하며 응원해주는 더 많은 이들이 있어 힘이 나서 계속할 수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 북촌 한옥마을지원센터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작은 강좌들을 신청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 준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웃 주민이 꼬마 선생님으로 종이접기 강좌를 열어보라며 알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준규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종이접기 교실을 열면 돈도 벌고 재미도 있을 것 같다며 선뜻 동의했다.
행정적인 절차들이 해결되고, 6주에 걸쳐 매주 금요일 90분씩 종이접기 교실을 운영하게 되었다. 보조 교사로 참여하게 된 나에게도 아이들을 도와줘야 한다며 접는 법을 알려주고,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접은 것들을 다시 한번 따라 할 수 있도록 동영상을 찍어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를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도 보였다.
종이접기 수업은 평소 말하기 좋아하는 아이의 성향이 더해져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재치 있는 입담으로 재미있게 수업을 이끌어가는 모습에 놀랍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어른이라면 지나칠 수도 있는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물어가며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에 준규의 또 다른 면을 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원하는 색종이 색깔에서부터 하트 팔찌의 착용 방향까지 세세히 물어가며 아이들 눈높이에서 맞춤형 수업을 해나가고 있었다. 수업 전에 적잖이 걱정했던 나는, 아이가 책임감 있게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보며 괜한 걱정을 했다고 생각했다.
준규는 평소 로봇, 곤충 등 남자아이들의 성향이 강한 종이 접기만 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수강자 대부분이 여자 친구들인 점을 감안해 수업 주제를 정하고 맞춰주는 모습을 보며 준규에게 너무 좋은 경험이 되고 있는 것 같아 흐뭇했다.
첫 수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다소 흥분된 어조로 내게 말했다. “엄마, 이 수업하길 잘한 것 같아요. 막상 수업을 해보니 선생님이 되어서 친구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긴장되기도 하지만 동생들이랑 노는 것 같아서 저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반송재에서의 종이접기 교실로 자신감을 얻은 준규가, 이번에는 자신만의 종이접기 책을 만들어보겠다며 도전 중이다. 올 겨울 출간될 종이접기 책을 위해 준규는 친구들에게 어떤 종이접기를 알려줘야 본인처럼 종이접기를 즐길 수 있을까를 매일같이 고민하고, 스토리를 생각해내며 책 하나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자기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니 부모인 나는 아이가 중간에 지치지 않도록 그저 묵묵히 준규의 길을 응원하고 있다. 이렇게 준규는 조금은 다르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만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도전들을 하며 건강하게 커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