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이후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몇 년 전 실리콘 밸리의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인수 제안을 받을 만큼 성장이 기대되는 ‘럭스로보’라는 벤처기업의 오상훈 대표였다. 럭스로보는 가로세로 3cm의 MODI라는, 작지만 상상력만큼은 무궁무진하게 키울 수 있는 모듈과 코딩 프로그램을 개발한 회사다. 그런데 이런 회사의 대표가 직접 전화를 주다니 나는 매우 놀랐다. 나만큼이나 전화를 준 대표도 긴장했는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28세 청년 기업가가 된 대표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만 해도 로봇을 배울 곳이 그리 많지 않았다고 했다. 본인은 그 당시 운 좋게 어느 로봇 연구소 박사님으로부터 로봇을 배울 수 있었는데, 그 박사님이 “너도 커서 네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도움을 주면 된다.”고 하며 아무 대가없이 무료로 가르쳐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준규에게 앞으로 로봇과 관련된 것들은 본인이 다 가르쳐주겠다며 선순환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누군가의 나눔이 씨앗이 되어 이제는 준규에게까지 선한 영향이 미치고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준규 또한 나중에 그런 나눔의 주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설레기까지 했다.
럭스로보와의 만남은 이 아이를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너무나 소중한 손길이었다. 오상훈 대표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준규에게 직접 로봇에 대한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고 있다. 또한 준규에게 필요한 교육용 키트, 3D프린터, 다양한 프로그램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고 있다.
심지어 준규에게 수학과 영어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로봇과는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등을 알려주며 공부에 대한 동기 부여를 해주고, 홈스쿨링을 하는 준규의 진로까지 함께 고민해주고 있다. 럭스로보는 어떤 이들에게는 꿈을 실현하는 회사이지만, 준규에게는 이제 학교나 다름없는 곳이 되었다.
얼마 전 럭스로보에서 개최한 행사에 아두이노 CEO 마시모 벤지(아두이노를 개발한 CEO)가 한국을 방문하여 참석한 적이 있다. 오상훈 대표는 준규를 VIP로 초대하여 마시모 벤지와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까지 마련해주었다. 평소 의사표현에 거침이 없고 대범한 준규였지만, 귀한 자리임을 직감했는지 미리 준비해간 질문을 하는 내내 반쯤 얼어 있었다. 평소 우리 집에 묵는 외국 친구들에게는 틀리든 말든 거침없이 영어로 이야기하던 준규는 영어에 자신 없다며 통역자에게 소심하게 질문을 부탁하기도 했다.
마시모 벤지에게 몇 살 때 로봇을 배우기 시작했는지, 어떻게 로봇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아두이노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등을 물었다. 회장은 본인이 사용했던 로봇 키트들이 어려워서 쉬운 게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렇게 아두이노를 만들게 되었다고 답해주었다. 그리고 준규에게도 너의 명함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떻겠냐며 자신의 명함을 주었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만남을 가진 준규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본인도 나중에 마시모 벤지처럼 편리한 로봇시스템을 만들어서 회장이 되고 멋진 명함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오상훈 대표는 정말 감사하게도 준규의 인생에서 평생 기억될 순간들을 선물해주기도 하고, 준규가 꿈을 펼쳐가는 데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자신이 만든 로봇들을 세상에 알리다
럭스로보를 만난 후, 준규는 MODI라는 로봇 키트를 이용해 다양한 로봇들을 만들 수 있었다. 예전에는 새로운 로봇을 만들 때마다 기존의 작품들을 부숴야 해서 늘 아쉬워했다. 하지만 회사의 지원 아래, 본인이 만들고 싶은 것들이 생겼을 때 부수지 않고도 마음껏 로봇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로봇들을 2019년 1월, 럭스로보 사내 행사에서 발표하고 시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준규는 생애 처음 자신의 로봇을 소개하고 시연해보는 자리를 가졌다. 두렵고 떨리지만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살면서 인생의 멘토가 될 만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나는 오상훈 대표를 처음 만나고 오던 날 울컥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나 혼자 준규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몰라 마음 졸이던 시간들이 떠올랐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이런 소중한 기회를 만들어준 것에 대해 한없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여전히 준규는 20대의 패기 넘치고 긍정적인 형(준규는 오상훈 대표를 형이라고 부른다.)을 롤 모델로 어떻게 미래의 로봇공학자로 서야 할지, 하나하나 배우며 자신만의 꿈을 천천히 키워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