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규네 홈스쿨링 이야기 24
평일 저녁 반포의 어느 카페에서 지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옆 테이블에 앉는 것 같은 인기척이 들리더니 이내 따발총을 쏘듯 엄마의 일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안 보는 척하며 옆을 슬쩍 보니 초등학교 4~5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엄마였다. 5분여간 숨 쉴 틈 없이 쏟아내는 엄마의 메시지는 이러했다.
“넌 머리는 좋아, 그런데 집중을 안 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최선을 다해봐. 엄마는 네가 노력하는지 안 하는지 금방 알아.”
"노력을 더해. 성실하게. 알았지?”
“지금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아무것도 안 돼. 알아들었지?”
“4학년 때처럼 해서는 안 돼!”
가만히 듣다 보니 가슴속에 뭔가 욱하며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런 데 나도 언젠가 아이에게 버전만 조금 다를 뿐이지, 저런 말을 하지 않았 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홈스쿨링을 시작하고 1년쯤 지나 내 불안감 이 차올라, 아이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듯 저런 말들을 했던 것 같다. 아이가 뭘 원하는지, 아이 스스로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를 나이에 말이다.
사랑과 엄마라는 이름으로 쏟아내는 저 폭언들을 들으며 마음 한편이 짠해졌다.
이렇게 제 3자가 되어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너무나 잘 보였다.
그 엄마는 쉴 틈 없이 말을 쏟아내고는, 이제 네 생각을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가 한두 마디 할라치면 그 말머리를 잡아서 다시 한번 따발총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엄마의 쓰디쓴 말과 함께 삼키며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는 이 학원에서 지금 배우는 수학이 너무 어려워요. 못하겠어요.”
그래도 아이가 그 사이를 비집고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을 보며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이내 엄마는 처음에 했던 말들을 조사만 바꿔서 다시 읊으며,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을 가장한 엄마의 욕심같이 들렸다.
그렇게 한참의 일방적인 대화가 오가고, 설득당한 아들은 체념한 듯 왼쪽 팔을 베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수학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갑갑했다.
옆으로 다가가 한마디 건네고 싶었다. 그 엄마에게 이렇게 묻고 싶었다.
“어머님은 아드님이 이 수학학원을 왜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어머님은 하루에 집중해서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수학 공부는 누가 잘하고 싶은 건가요?”
“어머님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나요? “
"아드님은 행복한 하루를 살고 있을까요?”
“아드님이 어떤 삶을 살길 바라시나요?”
엄마라는 미명 아래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언이나 폭력들이 참 많다.
그런 흔하지만, 무시무시한 실수들을 간접 경험을 통해 겪게 되면 참 감사하다.
또 한 번 호흡을 고르며 ‘저런 실수 하지 말아야지.’라고 되 뇌이게 되니 말이다.
준규가 며칠 전부터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에 나오는 총 중 에땁이라고 불리는 AWM을 만들고 싶다며 나무젓가락이며 박스, 고무줄 등 온갖 재료를 죄다 모아놓고 유튜브를 뒤져대더니 기어코 총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글루건 심을 짤막하게 잘라 만든 총알을 넣으면 발사되기도 한다. 이미 이렇게 만든 총이 네 자루나 더 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역시 아이가 똑똑해서 노는 것도 다르네.’ 하고 볼 수도 있지만 이를 옆에 서 현실로 겪어야 하는 부모 입장은 다르다.
거의 한 달째 아이는 눈만 뜨면 총을 만든다며 박스를 오리고 유튜브를 뒤졌다. 그러다 보니 방은 순식간에 엉망이 됐고, 자기 방에 더 이상 어지럽힐 공간이 없으면 야금야금 장소를 확장해가며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이 닦는 것은 잊어버리기 일쑤고, 신었던 양말은 방구석구석에서 숨바꼭질을 했다. 하루에 해야 할 일들도 하기 싫다고 짜증 내는 일이 다반사고, 만들다 만 박스 자투리들과 재료 부스러기들 이 나뒹구는 것은 예사였다. 새로운 우선순위가 등장하자 생활의 모든 것들이 2순위로 밀려났다.
이럴 땐 부모로서 늘 시험에 들고 만다.
아이의 몰입을 존중할 것인가, 최소한의 자기 주변 정리를 가르쳐 야 하는가의 문제로 말이다.
몰입
아이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 만의 시간을 보내며 행복해한다. 나도 아이가 그런 시간을 충분히 누리길 원하고 존중하려 노력하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맹점은, 누군가 자기만의 시간 속에 몰입하고 있을 때 그 시간의 ‘밖’에 존재하는 주변 사람들은 힘들다는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야 오롯이 몰입이라고 보며 기다리는 것이 쉬웠다. 심지어 남들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넘어가 주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일주일 전 누군가 진심 어린 애정을 담아 말했다.
자식을 키우며 아이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가겠노라고 무던히도 노력 하지만, 결국은 이런 한마디에 무너지기도 한다. 그런 날은 아이의 방을 보며 너는 네 방 하나 정리 못하면 어쩔 거냐로 시작해서 모진 말로 아이를 마구 할퀴고 다시 후회하기도 한다.
아이가 정리정돈도 잘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며 공부도 열심히 한다면, 부모 보기에야 편하고 안심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어른들이 세워놓은 기준으로 어른들 편하고 이상적인 방식으로 아 이들이 행동하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 인내심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미 경험해보았다는 것이다. 수없이 나뒹구는 종이접기를 견디니 멋진 종이접기 작품들이 탄생하고, 종이접기 수업을 운영하고, 종이 접기로 책을 준비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방에 들어서면 밟히는 나사, 걸레질을 할 때마다 방구석구석에서 보물찾기 하듯 나오는 부품들, 수많은 조각과 연장으로 어지럽혀진 혼돈 그 자체의 방에서 나는 멋진 로봇들이 탄생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 모든 것이 결코 짠! 하고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무던히 애쓰고 무던히 어지럽힌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여기까지 온 것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나는 오늘도 견뎌보기로 마음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