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게 된 이야기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청소년 우울증을 앓았다. 추운 겨울날 일부러 창문을 열고 잠을 청했는데 감기에 걸려서라도 학교에 가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불안함이 느껴지고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었고 죽고 싶었다. 여드름으로 뒤덮인 붉은 얼굴 때문에 자기혐오는 더 심해졌고 내 곁에 있는 서너 명의 소수의 친구들과만 어울릴 뿐이었다. 나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눈을 쳐다보는 게 힘들었다. 한 미술선생님은 나를 '여드름'이라고 불렀다. 그건 마치 장난으로 개구리에게 돌을 던졌는데 개구리가 죽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학교도 그만두지 않고 죽지 않고 버텨왔는지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마음 하나 잡기 어려웠기 때문에 공부도 뒷전이었다. 낮은 성적에 맞춰 대충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난 계속 우울감에 시달렸다. 그야말로 우울이 나였고 내가 우울이었다. 학교 수강신청을 친한 친구가 대신해줄 정도로 자립심이 부족했고 의욕이 없어 성적도 늘 바닥이었다. 교환학생에 가서도, 첫 직장에서도, 유럽여행에 가서도, 마지막 직장에서도 난 늘 우울하고 부정적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으로 살아본 적은 없기에 그냥 원래 삶은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럼에도 내 곁에 머물러주었던 가족들과 그때의 친구들에게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든다.
처음으로 우울장애 진단을 받은 건 31세 때였다. 나는 내 발로 정신과에 찾아가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고등학교 땐 여드름 때문에 우울했고 대학교 땐 친구들보다 내가 못생겨서 우울했는데 성형하고 외모가 나아져도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되어도 난 또 다른 이유를 찾아 우울한 것이었다.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지만 정신과 약을 먹는 대신 심리상담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임시방편으로 약을 먹어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것보단 내가 힘든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싶었다.
나는 아주 감사하게도 나에게 딱 맞는 좋은 상담선생님을 만났고 상담을 하며 명상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7년 동안 명상을 하며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내가 예뻐져야,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업을 가져야, 좋은 성격을 가져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내가 못나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 집 똥개는 품종견도 아니고 특별히 똑똑한 것도 아닌데 그냥 우리 집 똥개니까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 나도 특별히 예쁘지도 않고 잘나지도 않았지만 그냥 나라서 귀엽고 예쁜 것이다. 우리 집 똥개 꼬순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듯 나는 그냥 나라서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우울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며 나는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은 하나도 우울하지 않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다. 나는 우울함, 기쁨, 화남, 즐거움, 슬픔 등 모든 희로애락을 생생히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다만 우울함이 찾아오는 날에 나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알고 우울한 나를 꼬옥 안아줄 수 있는 힘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