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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Jan 28. 2020

초심을 기억하라

음력 설을 맞아서 다시금 새겨보는 나의 다짐

서양에서는 잘 이해 못할 우리 고유의 명절, '음력 설'!


음력 1월 1일이 양력 기준으로는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우리의 새해 다짐도 왔다갔다 하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다시 작년 말을 회고해보자. 12월에 열심히 스X벅X의 다이어리를 받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마시고, 그 다이어리에 새해 다짐을 빼곡하게 적는다. 그리고 스스로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내년을 기대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그.러.나,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의 분위기에 휩쓸려서 일단 내년되면 파이팅하자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새해를 맞이해 본다. 새해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에는 더 좋은 일만 가득하고 열심히 또 다짐해 본다..

그.러.나, 새해 첫 출근을 해보니 아니 이건 1월이 아니라 작년과 이어지는 13월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좀 쉬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초부터 야근거리가 늘어가고, 고민거리가 쌓이기 시작한다. 열심히 받아놓은 다이어리는 며칠째 주인을 찾고 있지만, 그 주인은 뵐 낯이 없다....


정말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구정이 다가온다. 야호!

그저 어떻게 하면 푹 쉴 궁리만 열심히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이건 낙천적인건지, 건망증인건지.. 

올해만은 달라야지라고 속으로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취업 이후(아니 그게 벌써 10년 전...) 다시 그 모드로는 전환이 되질 않는 것 같다.


명절이 끝나가는 지점에서, 2020년이 되어 그런지 괜히 10년 전을 떠올리게 되었다. 복학을 하고 어리바리 1년을 보내고 나니 졸업반이었고, 교생도 나가야 하고 졸업을 앞두고도 학점을 꽉꽉 채워 들었어야 했고, 칼졸업과 동시에 사회에 나갈 생각이었던 내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지금보다 10킬로는 덜 나가는 가벼운 몸에, 버텨주던 체력에..(이건 정말 더 이상 돌아오지 않겠지 아흑), 제대 버프를 최대한 오래 끌고 가려는 나의 처절한 노력이 버텨주었던 그 때.


그리고 다시 지금의 나를 돌아보니, 사회생활에 찌들은 퀭한 얼굴에 무기력한 표정, 물렁물렁한 살집까지 그야말로 '아재'였다. 겉모습이 늙어가는 것이야 자연스러운 건데, 내 마음과 정신이 많이 늙은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둘 순 없지'


저녁에 괜스레 차를 끌고 나섰다. 첫번째 행선지는 북악팔각정.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에 답답한 마음이 들거나, 뭔가 의지를 다질 때 한번씩 가서 풍경을 보고 괜한 기대감을 장착하고 돌아오던 곳. 연휴의 끝자락이고 비도 오기 시작하니, 가서 산공기나 쐬고 와야지 싶은 마음으로 열심히 사직공원을 지나 부암동을 지나 길을 올랐다. 아니 근데, 주차장이 만석에 기다리는 차의 행렬이 한참 밑까지. '아 오히려 의지가 꺾일 것만 같다'라는 생각에 재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일단 지나쳤다. 어차피 야간 드라이브니까 그냥 고갯길을 지나며 보이는 저 멀리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충분하겠거니 생각한다. 다시 차를 몰아 내 대학생활을 보냈던 학교 쪽으로 가 본다. 학생 때는 차가 어딨었나. 돈이 없어 세 끼니도 라면으로 떼워내던 상황이었다. 이동이 필요할 땐, 당연히 자취방 근처 마을버스와 지하철이 내 발이었다. 복학 이후에 나와 살던 그 동네는 여전히 큰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네 슈퍼마켓과 식당들, 그 사이에 새로이 자리잡은 못 보던 식당들도 보인다. 정말 많이 오갔고, 이런저런 기억들이 많이 배어있는 동네다. 어디 차라도 대놓고 한 번 걸어볼까 싶었지만, 그 좁은 골목에 차는 어찌나 많은지 민폐가 될 순 없어서 그냥 포기하고 또 한 바퀴 돌아본다.


처음 방을 구한 곳은 옥탑방이었다. 로망이 있어서이기보단, 가성비를 생각해서 혼자 사는 원룸치고 넓은 공간에 그 당시 시세로는 무리하지 않은 방값. 이열치열과 이한치한이 뭔지를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던 그 곳. 여전히 누군가는 살고 있는 듯 했고, 그 친구도 이 추위에 고생 많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지냈던 곳이라 그런지 괜한 정이 드는 그런 곳이었다.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을 가끔 초대해서 옥상에서 한 잔 나누기도 했었고.


다시 차를 몰아서 조금 더 들어가면, 사회 초년생을 보냈던 건물도 나온다. 산 밑에 있었던 집인데, 아직도 기억나는 건 여름휴가를 간답시고 문을 다 닫고 갔더니 습기가 가득차서 옷이며 가방이며 여기저기 곰팡이가 펴서 한참을 고생했던 일이었다. 그 일은 재계약을 하지 않고 아예 학교를 떠나게 되는 계기 중 하나였다. (동네를 옮긴 건 물론 회사가 그 당시 너무 멀어서...)


근처에 토익을 보러갔던 중학교도 여전하고, 종종 들렀던 한X 도시락과 세탁소도 여전하다. 그리고 밤중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도 보이고. '밤낮 없이 열심히 지냈더랬지' 추억하며 근처를 더 배회했다. 아침 일찍 나가서 밤에 도서관 닫을 때까지 자리 붙이고 무식하게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집중력도 가히 최고였던 그 시기, 그것마저 없었다면 내가 지금 직장에나 제대로 다니고 있었을지. (어디 갔느냐 나의 집중력...)


종종 지나가던 곳은 재개발로 건물들이 모두 없어지고 공사판이 된 곳도 있었고, 군대 가기 전에 살던 기숙사도 지나쳤고, 그럴 때마다 있었던 일과 사람들이 살포시 떠오르곤 했다. 고생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던 학교생활이었다.


그 이후로 10년이 지났는데, 학생 때도 분명 10년 뒤 무엇을 하고 살까에 대해 간간히 얘기했었다. 그 때 했던 얘기는 지금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했었을까, 아 물론 그랬을 수도 있다. 뭔가에 쪼들리지 않고 먹고 싶은 거 사먹고 가고 싶은 갈 수 있을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을 때도 많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 때 생계적인 부분을 얘기하면서도 놓치지 않았던 생각은 분명 있었다.

'좋은 어른이 되는 것.' (여기엔 좋은 남편, 좋은 아빠 등등 다 포함) 

무슨 공자의 정명론 같은 소리같지만, 지나고보니 '~답게 사는 것' 이거 참 어렵다는 거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 때 사회에 내 밥벌이만 할 수 있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다짐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스스로에게 주문걸던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을까. 갑자기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이제 진짜 새해니까(소피스트의 습관을 시전한다!), 다시 그 때의 마음가짐(물론 다 똑같이 가져갈 순 없지만)을 떠올려서 정말 조금이라도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그리고 그 때 스스로도 놀랐던 집중력을 다시 상기해 보자고 다짐해 본다. Try to focus on every single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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