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nRy Jan 27. 2020

원하는 바는 명확하게 전달하자!

중고로운 평화나라에서 얻은 사소한 통찰

곧 이사를 앞두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3년 반이 넘는 시간을 지내다 보니 익숙해지기도 했고 막상 또 어디론가 움직여야 하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지만, '내 집' 없는 사람으로선 사실 선택지가 없으니까. ('그 와중에 내 집만 평생 살아야 하는 건 지겹잖아'라고 정신승리 중이다.) 어쨌든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다음 집에 가지고 갈 세간 살림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공간에 어울리지 않거나 괜스레 바꾸고 싶은 물건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를 핑계 삼아 무한 검색을 시작하며 지름신을 불러들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언제쯤 이 소비 본능을 잠재울 수 있을지.)


집안을 쭉 둘러보고 나서 방출해도 될 명단을 작성한 결과, 

신혼 때부터 줄곧 쓰고 있던 책상아일랜드 서랍장이 교체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미안하다 얘들아)

이제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기도 해서 한 책상에서 아빠와 딸이 함께 공부(라고 쓰고 '아무거나'라고 읽자)하는 모습을 그리며 조금 더 폭이 넓고 심플한 디자인을 하나 영입하기로 마음먹었고, 아일랜드 서랍장 또한 이사가는 집의 분위기나 공간대비 맞지 않아 새로운 서랍장(오크색의 짙은 녀석으로다가)을 구할 생각이다. (TMI)


가구들은 대형생활폐기물에 해당하므로, 내 것을 내 돈 주고 버려야 하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사실상 외관이나 기능에 문제가 없는 물건들을 그냥 폐기하는 것이 영 마음에 쓰였기 때문에 오랜만에 중X나라에 접속을 했다. 그리고 무료 나눔 게시판에 들어가 글작성을 시작했다.


1. 책상 나눔 


제목은 'ㅇㅇㅇㅇ(브랜드) 책상 나눔 하고자 합니다'라고 적었다. 내용은 별생각 없이 '쓸 일이 없어서 보내고자 하고 외관에 문제없고 깔끔합니다. 크기는 어느 정도고요(이건 기본 예의라고 생각하니까), 관심 있으면 연락 주세요. 동네는 ㅇㅇ입니다.' 정도로만 적어서 바로 포스팅!


휴일의 끝자락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평화나라에는 항상 많은 분들이 활동 중이신 건지, 전화와 문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뭔가 내가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는 생각은 잠깐, 이후부터 커뮤니케이션이 정신없이 오고 가기 시작한다.


나눔을 받겠다는 첫 연락에 반가워서, 

'네 첫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했더니만 '주말에 가져갈 수 있을까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순간 아차 싶었다. 이미 조회수는 100을 훌쩍 넘겼고, 줄을 서겠다, 불발 나면 연락을 달라 이런저런 연락이 온다. 나의 목적은 책상을 이 집에서 떠나보내는 것으로만 생각했지 그 디테일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글을 수정하면 좋으련만 이미 많은 분들이 읽은 상황에서 글을 고치는 것도 옹색하여, 

내가 원하는 조건을 달아 회신했다. 


(a) 가장 먼저 오는 분께 드리겠다.

(b) 앞사람이 불발 나면 연락드리겠다.


뭔가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당장 못 오시는 분들은 바로 대기라인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한 분이 당장 오시겠다고 하셔서 매우 반갑게 '언제 오시나요? ^^' 라고 말씀드리니 어디라고 말씀은 안 하시고, 1시간 이상은 걸린다고 하신다. 그리고는 민폐일 것 같다며 스스로 포기를 하셨다. 이미 다 퇴짜를 놓은 상황이라 난감하다. 다시 문자를 살펴본다. 그중 가까운 곳에 사는 분이 있다. 결국 책상은 이 분이 바로 오셔서 가져가셨다.



2. 수납장 나눔


앞 사례를 교훈 삼아 이번엔 조금 더 자세하고도 간결하게 설명을 달았다. 

'크기는 ㅇㅇ이고요, 먼저 오실 수 있는 분께 우선 드리겠습니다. 직접 가지고 가셔야 합니다. 동네는 ㅇㅇ입니다.' 


물건의 상태는 사진이 증명하니까 굳이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역시 또 연락이 오기 시작한다. 내일 오전에 오시겠다고 한다. 나는 출근이니 응대가 안되니 어렵다고 답했다. 당장은 어려운데, 자기가 약속은 꼭 지키겠다고 하신다. 물론 신용사회니까 믿어봐야지 싶지만, 이러다가 허탕 친 적이 많아서 그건 어렵다고 했다. 


이번에도 바로 오시겠다는 분이 있다. 1시간 거리지만 바로 오시겠다며! 아 이렇게 바로 두 번째 물건도 정리가 되나 싶었다, 출발 전 이 질문을 주시기 전까지는.


'혹시 몇 층인가요? 엘리베이터 있나요'


아, 이건 생각을 못했다. 빌라에 4층, 요새 건물이 아니라 엘리베이터는 없다. 결국 본인이 들고 움직이기 어려울 것 같다며 또 포기. 그 사이에 또 많은 분들에게 거절을 날렸는데, 구질구질하게 또 다른 분들에게 연락을 돌려본다. 이번에는 우리 집의 위치와 층수,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점도. 그러고 나니 또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결국 어떤 분께서 이 모든 상황을 인지하고 가져가시겠다고 하여 상황 종결. 휴.


깨달음.


중고물품을 돈을 받고 파는 과정에서는 가격 흥정하기 때문에 서로 가격의 접점이 오지 않으면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 나눔은 조금 다르다. 대가 없이 주고받는 상황이다. 더 쉬울 것 같은데, 서로 주고받는 게 없으니 상호 접점을 만들어내야 하는 포인트가 많아 더 어려운 것이다. 나는 그저 물건을 빨리 넘겨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지,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서 이 물건을 나눔 받고 싶어 하는지,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본인이 가지고 갈 조건사항에는 뭐가 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냥 단순하게 '가져가고 싶은 사람이 알아서 연락 오겠지' 정도 수준이었다. 연락은 많이 왔지만, 결국 여러 가지 이유로 공짜 나눔임에도 포기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그들 역시도 준다고 하니까 내 상황(일정 등)에 맞춰서 받아가야지 정도 생각을 하셨던 것이다. 서로의 생각, Needs에 대해서 별 고민이나 배려가 없었다는 뜻이다.


어쨌든 나눔을 해서 내 물건을 정리하려던 커뮤니케이션은 내가 먼저 시작을 한 것이니까, 처음부터 상황 설명이나 조건에 대해서 잘 정리해서 올려놨어야 맞다. 분명 불필요한 연락도 줄었을 것이고(그분들도 본인들의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으셨을 거고), 정말 당장 필요하고 가져갈 수 있는 분들이 연락을 주셨지 않았을까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되었다. 


대가성 없는 거래에서도 이럴진대, 우리가 일을 하면서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도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모호하게 이루어지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일을 내리는 상사의 입장이나, 그 일을 해서 보고하는 부하의 입장이나(물론 나는 주로 부하의 입장에 서 있다) 분명 그 목적은 같거나 유사할진대 그 안을 파고 들어가면 다른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답답해하는 상사와 명확한 지시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부하 사이 '환장의 콜라보'는 끊임이 없다. 한 발짝만 더 전달받을 사람을 고려해서 커뮤니케이션한다면 서로 어긋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 텐데.

그렇게 깨달은 단순한 명제, 


'원하는 바는 명확하게 전달하자!'


새해도 됐고(1월 1일은 새해 아니냐...), 다시 심기일전하는 마당에 사소한 깨달음을 얻고 나니, 

다시 일터로 나아갈 땐 내 뜻을 더 명쾌하게 전달하는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리고 다음부터 평화나라에 글을 올릴 땐 오늘 깨달은 바를 적극 활용하여, 

제대로 올려보도록 할 것이다. (어디 또 나눔 할 아이템이 없나...?)

작가의 이전글 82년생 김지영, 그리고 우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