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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Nov 11. 2019

82년생 김지영, 그리고 우리

힘든 세상 속에서 서로 다독여주자

    책을 사 봐야지 해놓고 이미 쌓아 둔 책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보니, 조남주 작가의 소설은 아직 읽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를 보러 다녀왔다.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많았고, 워낙 화제를 끌고 있는 작품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남자 혼자 온 관객은 많이 보이진 않았던 것 같다.


    어느 덧 나도 사회에서는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30대라서, 본 영화의 배경이나 상황은 충분히 이해되었다. 비록 '김지영'의 입장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공유'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자하고 상영관에 들어갔다. (물론  공유의 입장'만' 생각해본 거..다.. 형님 잘 생기셨어요..)


    이 나라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힘듦과 어려움의 주인공의 Flashback으로 조명될 때마다, 

     '아 정말 저 땐 저런 생각이 지배적이었지.' 싶은 내용들도 있었고, 내가 어려서 몰랐던 사회적 분위기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세대보다도 사실은 더 힘들었을 과거 세대들을 비춰주는 내용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대물림되는 사회분위기나 제도, 차별적 언행을 접할 때마다 우리 사회가 아직은 더 발전을 해야할 것 같은 감상을 받았다.


    극 중 공유는 좋은 남편이라고 느꼈다. 난 이 시기 즈음에 어떤 남편이었던가 혼자 회상해보기도 하고, 만약 비슷한 상황이라면 난 어떻게 했을까 대입해보기도 하고. 어떠한 계기(스포라서) 때문에 공유가 태도를 바꾼 것처럼 설정되어 있는데, 분명 그도 그 전엔 다른 남편들과 비슷한 행동양식이나 생각을 보여주었을까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물론, 그 역시도 '도와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지 않았을 것이고, 여성분들 입장에선 돕는 게 아니라 '같이하는 것'에 더 공감을 하실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도 아이가 나오고 아내가 휴직을 내고 아이를 혼자 돌봤던 시기가 있었다. 하필 그 때 회사사정은 녹록치 않았고,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야근과 주말출근에 내 몸도 정신도 피폐해졌었다. 나는 나대로 끝도 없는 일과 씨름하고, 그리고 아내는 그녀대로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갓난 아이와 하루의 쳇바퀴를 굴리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로서 내 몫을 하겠다고 좋은 남편도 되겠다고 수 없이 다짐했지만, 월급쟁이가 회사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고 치워도 끝나지 않는 일 속에서 와이프에게 이해를 구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절.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아내가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깊어져, 괜히 주인공의 대사에 얹어 눈물을 훔쳤다.


    자꾸 이 영화를 두고, 남자가 어떻고 여자가 어떻고 서로 편을 가르고 싸우는 전개로 몰아가는 것 같은데, 평범하게 아이를 낳고 직장생활을 하는 가정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그들이 놓인 상황은 모두 어느 정도 이해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자꾸 그들의 상황과 내 상황을 비교하면서 보고 있었으니까. 


    조금 더 개인적으로 보면, 극중에선 공유가 외벌이를 하고, 아파트에 살며, 나름 일찍 퇴근하면서 아이의 목욕을 봐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나올 때, 그마저도 부러운 것은 왜였는지. 물론 소설이, 영화가 어떤 상황을 매우 극적으로 가져가는 가상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클라이막스는 있겠지만 말이다. 지금 우리 상황은 외벌이로는 돈을 모으기엔 어렵고, 심지어는 떨어져 살고 있으며, 주말에나 아이를 만나는 상황이라 그랬는지 모르겠다. 요점은 이건 아니고, 어쨌든 다들 각자 처한 사정이 쉽지 않은 건 매 한가지라는 거였다.


    이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바꿔나갈 수 있을지 서로 연대하고 고민하기 보다, 별점 테러라느니 페미니즘이, 남혐이라느니 서로 헐뜯고 싸우기가 바쁜 작금의 상황은 영화보다 더 고구마같은 상황이다. 영화든 현실이든 이건 남자/여자 어느 한 쪽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말조차도 조심스럽지만..) 영화를 보고서 참으로 답답하고 마음이 무겁지만, 이 영화 한 편으로 세상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지도 않을 것이고, 계속 답답한 현실은 이어질 것 같아 그것이 더 힘들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던 부분은, 우리네 어머니들 이야기였다. 지금도 분명 힘들지만, 더 이전에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게 되니 역시 또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우리 세대보다도 우리 어른 세대들도 한 번쯤 같이 보고 고민해 보면 좋은 영화가 아닐는지, 그리고 집에 계신 어머니와 장모님 생각을 하니 참으로 죄송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 감정이 같이 몰려왔다.


    한 사회가 여러 갈등을 갖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어느샌가부터 그 갈등의 골이 매우 깊고, 비난이 원색적이며, 점차 분절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는 사회가 좀 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함이 없이 열린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세대간의 갈등이나 남녀간의 갈등이 두드러지고 있고, 그 가운데 이 영화(소설)이 화제작으로 서 있다. 적어도 내가 본 '82년생 김지영'은 갈등을 조장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소설/영화는 아니라고 본다. 가상의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의 어떤 현실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서로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또는 소설을 읽고,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으로는 현실의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 주인공은 그래도 나름의 길을 찾아가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현실의 수 많은 엄마, 아빠들은 계속 그 현실 속에서 걱정하고 고민하고 탈출구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 영화를 보고서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던 건, 현실이 바로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어떠한 무기력감과 딸아이의 아버지로서 우리 다음 세대에도 지금과 같으면 어떡하나 싶은 설익은 고민까지 한꺼번에 밀려와서인지도 모르겠다. 당장 있을 유치원 추첨에 마음 쓰이며, 보낼 곳이 없으면 어떻게 할지, 아이 돌보는 건, 일은 어떻게 해야 하나를 생각하기도 갑갑하고 벅차다.


    현실 사회 갈등의 문제를 허물기 위해서 서로에 대한 과녁 겨누기를 멈추고,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달라지는데도 왜 현실의 모습은 큰 변화가 없는 것인가. 매번 OECD국가 중 출산율이 낮다 떠들어대면서도, 이렇게 아이 하나 낳고 키우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그저 피상적인 대책들과 그 안에서 분투하는 부모들.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만든 사회를 계속 잘 이어가라고 할 자격은 될는지 모르겠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고, 이 화제작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더 생각하고 토론하고 합의를 이뤄갈 수 있는 건전한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해 갔으면 좋겠다. 그럼, 이 영화도 과거의 유물처럼 회자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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