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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May 17. 2020

기약 없는 기다림 (feat. 휴대폰)

이게 뭐라고 참(이런 경험들 있으신가요)

요즘, 매우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다. 사전예약이라 주문했던 새 휴대폰이 올 생각을 하질 않는다. 사전은 이미 '사후'가 되었고, 같은 제품을 이미 받은 사람들의 리뷰가 유튜브와 각종 블로그에 넘쳐흐른다.


살아가는 게 선택의 연속이라지. 이 휴대폰을 살 때, 내가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했다. 어느 유명한 쇼핑몰을 통해서 새벽에 받을 수도 있었고, 오프라인 매장으로 달려가 'Take My MONEY!' 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쇼핑몰 주문도 했었고. 하지만,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다 취소하고 현재 사용하는 통신사의 온라인몰을 통해 주문을 완료했다.


주문했을 당시의 기분? 아마 간절히 무언가 갖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설렘', 딱 그거였다. 어린아이가 생일을 달력에 새겨놓고 하루하루 기다리는 것처럼 나도 하루가 지날 때마다 다가올 디데이에 대한 설렘이었다.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아직도 받질 못해서다. 받았다면 이미 새 물건에 빠져 이 키보드 근처에는 오지도 않았을 텐데. 약속된 날짜보다 이미 열흘도 더 지났다. 처음엔 어처구니가 없다가, 화도 났다가 지금은 조금 내려놓긴 했지만 도무지 기분이 회복되지는 않는다.


사전예약이란 출시 전에 미리 예약을 받아 여러 가지 혜택을 주고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뤄지는 성격의 판매방식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해당 물건을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손에 쥐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전 같았으면 오프라인 매장 앞에 텐트를 치고 기다렸을 것이지만, 요새는 온라인 사전예약이 워낙 일반화되어있어서인지 어느샌가 '첫 개통 고객' 관련 기사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휴대폰=스마트폰이 보급됐고, 더 이상 특별한 물건처럼 느껴지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중요한 건 사전예약을 했지만, 전혀 소식이 없다. 늦으면 늦는다고 알려주는 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고객센터에 연락을 해보았다. 그저 죄송하다고만 한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죄송하다는 말이 아니었다. 도대체 왜 이런 식의 예약을 받았고, 그걸 어떻게 해결할 건지 계획이 있는지 듣고 싶었다. 물량이 부족하다는데, 물량 부족이 예상될 것을 알면서 왜 사전예약을 받았을까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번호이동이었다면 이들이 이렇게 대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물어봐도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죄송합니다. 물량 확보하는 대로 예약 순서대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언제 얼마나 입고될지 확답드리기가 어려운 점 양해 바랍니다."


기운이 쫙 빠진다. 언제 얼마나 들어올지도 모르면서 예약은 있는 대로 받았다니. 내 순번이 어느 정도인지 도대체 어디까지 출고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하지 않는다. 그저 답답할 노릇이다. 확보된 물량까지만 받고 마감을 했다면 서로 간의 불편한 커뮤니케이션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을 텐데. (관계자가 지나가다 보신다면, 정말 진지하게 고려해 주십시오.)


여태껏 어떤 물건을 예약까지 걸어가며 사 본 일이 없던 나의 무지였을까. 그들의 트릭에 놀아난 것일까. 문제는 이제 와서 취소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이다. 더 일찍 구하기도 쉽지 않고, 어떤 혜택도 받기 어려워졌고, 그저 '존버'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전예약'에 대한 혜택은 먼저 예약을 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그들에게 제 때 물건을 주지 못했다면, 고객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라 보는데 아무런 책임을 질 생각이 없다. 다시 보니 사전예약 페이지에도 매우 애매하게 적어두었다. (늦을 수도 있다고)


그래, 결국 내가 작은 글씨까지 읽지 못한 탓인가 싶다가도 화가 줄지 않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미 케이스와 주변기기와 이것저것 다 구비를 했지만, 가장 중심인 그 물건은 아직 나에게 상상 속의 유니콘이다. 기다림의 기약이 없다. 슬프다.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이렇게 글을 남긴다.


그리고는 다짐한다. 다시는 내가 이렇게 물건을 사지 않으리라고. 사람은 역시 겪어야 느낀다. 느껴야 정신이 든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 물건을 들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겪을 일도 없었다. 스스로 자책해본다. 찝찝한 마음을 품은 채 이렇게 주말을 마무리해야 하나보다. 다음 주엔 과연 이 화가 사그라들까. (내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오지 않은 그 물건에 대한)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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