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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Dec 09. 2019

영화 <헤로니모> : 요 쏘이 꼬레아노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의 디아스포라 이야기



    2018년 KBS의 <1박2일> 시즌 3 (지금은 불미스러운 일로 폐지된 지 꽤 되었지만)에서 쿠바를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를 방영했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곳으로 유명해져 여행지로 사람들이 점차 많이 찾고 있는 곳이며, 우리에게는 공산국가, 아마야구의 최강자,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라는 키워드를 통해 알려져 있고, 조금 더 아는 분들이라면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에 나오는 멋진 재즈 베테랑을 떠올리기도 한다. 여튼 쿠바 에피소드를 관심있게 지켜보면서 예능에서 다뤄주어 고마운 한편, 쿠바의 한인 역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가 있으면 꼭 보겠노라고 혼자 생각했었는데, 그런 영화가 등장했다!


    바로 쿠바에서 입지전적인 한국인, 헤로니모 임 김(Jeronimo Lim Kim)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헤로니모>다. 감독은 원래 뉴욕 변호사를 하던 인물로, 우연한 계기로 이 일에 뛰어들게 된 재미교포(Korean-American) 전후석(Joseph Juhn)이다. 영화를 제작하는 시간은 약 3년이 걸렸다고 하니, 1박2일보다 일찍 시작했지만 선수를 빼앗긴(?)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교포(Overseas Korean)의 수는 약 800만에 이른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인구가 5천만이고, 만약 북한의 인구를 더한다고 해도 약 8천만 수준이 안될 것으로 짐작되는데, 800만 명의 사람들이 전세계에 한국인의 핏줄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물론 그 중 약 600만 명은 미국, 중국,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다.) 반만년의 역사를 지니고 한반도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한민족이라고 부르고 있는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이 숫자. 우리는 언제부터 이민의 역사가 시작되었을까.


    한참 화제였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보신 분들이라면, 주인공의 출신과 신분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정말 드라마였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긴 하지만, 실제였다면 서양으로 진출한 이민 1세대라 불러야 하지 않을지. 저 물 건너가는 이민은 조선사회에서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을테니까.

    이 영화에서는 그래서인지 디아스포라(Diaspora)*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디아스포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민족이나 국가가 있는가? 아마도 이스라엘을 대답할 것 같다. 유다 왕국의 멸망에 따른 바빌론 유수나 로마시대 전쟁에서 패하여 속령이 된 이후 터전을 잃고 흩어져 살던 유태인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


* 디아스포라(그리스어: διασπορά)는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 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특정 민족이 자의적이든지 타의적이든지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한자어로는 파종(播種) 또는 이산(離散)이라고 한다. <출처 : 위키백과>


    그 역사가 우리 민족에도 실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교민의 숫자가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그 중에서도 이역만리 떨어진 낯선 나라 쿠바의 한국인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조선 말기, 대한제국의 명운이 풍전등화이던 시절, 살기 위해 떠난 민초들은 그들이 가보지도 않은 이역만리 땅으로 이민을 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하와이였고, 그 이후에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 더 멀리 쿠바까지. 그 먼 곳에서 애니깽을 수확하며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이민 1세대들이 있었다. 쿠바로 간 인물 중 임천택이라는 분이 있었고, 그의 후손이 바로 영화의 주인공 헤로니모 임 김이다. 임천택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도 등장하는 분으로, 그 어려운 이민 생활 속에서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쌀 한 숟가락씩을 모아 독립운동자금에 보탰다고 전해진다. 


    헤로니모는 쿠바 한인 사회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성장한다. 쿠바대학교에 한국인 출신으로는 최초로 진학을 하였으며, 동문수학하던 인물 중엔 그 유명한 쿠바의 혁명 영웅 피델 카스트로도 있었다. 그들과 함께 쿠바의 혁명 전선에서 함께 투쟁한 이가 헤로니모였던 것이다. 독재를 몰아낸 이후, 쿠바 사회에서 헤로니모는 다양한 직무를 수행하며 쿠바 혁명정부의 일원으로서 성장했고, 훈장도 여러 차례 수여받을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다양한 국가를 다니며, 가족의 회고로는 정보원 역할도 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분명 주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맞이하였으나 진영 간 다툼으로 다시 나라는 둘로 갈라졌고 쿠바는 많은 이들이 주지하다시피 북한/소련 등과 가까이 지내는 우방국가가 되었다. 이는 남한과의 왕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쿠바의 한인 사회는 그렇게 우리에게서 먼 얘기가 되었던 것이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기획된 세계한민족축전에 초대된 헤로니모와 그 가족들, 냉전의 역사가 끝나 드디어 고국 땅을(정확히는 남한 땅을) 밟아보고 난 뒤의 헤로니모는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한 것 같다. 잊고 있었던 그들의 뿌리를 찾는 일을 추진하였다. 쿠바에 정착한 최초 한인들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여동생 마리타를 도와 ‘쿠바의 한인들(Coreanos en Cuba)’이라는 역사책을 발간하는 것. 쿠바 내에 한국의 문화와 역사,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운영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 쿠바 내 한인회 설립’하는 것 등이었다. 그 이야기는 동생과 함께 일을 도왔던 미국의 선교사들을 통해 전달되었다. 쿠바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인들의 명부를 만들고 학교를 세우고, 한글과 한민족의 문화를 전파하던 그의 일대기를 보며, 뭉클함과 존경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손들도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며, 선조들의 뜻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필름에 담기기도 하였다.


    우리가 '1박2일'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한인 후손들이 우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은 헤로니모와 같은 사람의 노력이 없었다면 보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장면이었음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여전히 쿠바라는 곳은 우리에게는 낯설고 시간이 멈춘듯한 나라로만 여겨지겠지만, 삶을 찾아 떠난 우리 선조들의 후손이 우리의 뿌리를 잊지 않으면서 그 곳에서 나름의 삶을 꽃피우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않아야하겠다.


    구한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민족이 힘든 시기마다 각자의 생을 위해 자의든 타의든 멀리 떠나간 우리 한민족은 이제 우리에게는 동포라는 이름으로 인연의 끈을 가져가고 있다. 우리가 나라를 되찾는 과정도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었으나, 타지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끈질기게 삶을 이어온 그들도 참으로 고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영화의 시작이 감독의 우연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처럼 시작하지만, 분명 그에게는 호기심과 휴머니즘이 있었을 것이다. 그와 함께하 이들이 만들어 낸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보여졌으면 좋겠다. 한때나마 역사를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청소년들에게도 아주 좋은 시청각 교육자료로서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꼭 보여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그런 영화였다.


    우리에게 또 하나 안타까운 디아스포라는 고려인(까렌스키) 이야기일 것이다. 누군가 다른 분들께서 이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든 영화를 제작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니, 언젠가 꼭 쿠바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서 가능하다면 꼭 그 후손 분들도 만나보고 싶고,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에스파뇰을 배워 'Coreanos en Cuba' 책도 읽을 줄 아는 나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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