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언제나 그렇듯, 내 뜻과는 다르게 흐른다
그런 날이 있다. 뭔가 의도치 않게 일이 잘 풀리거나 운 좋게 콩고물(?)이 떨어진다거나.
그게 바로 오늘이었을 거다.
직장인의 입장에선 일감이 좀 날 덜 괴롭힌다든지, 아니면 막혔던 게 술술 풀리면 그게 좋은건데,
오늘은 그것보단 뭔가 운이 좋다고 해야하나.
'우웅~'
진동이 울린다. '아침부터 무슨 문자야 또'하고 휴대폰을 보니, 웬 ㅅㅌㅂㅅ 기프티콘?
오호라, 전에 무슨 이벤트 응모했던 게 당첨이 되어 기분 좋게 하나 받게 되었다. 그리고선 한 30분이 지났을까, 또다시 휴대폰의 진동음이 내 주의를 환기시킨다. 아니 이번에도 기프티콘이 온 게 아닌가. 평소 로또 5천원도 맞을까 말까 하는 나에게 연달아 아메리카노 2잔이라니, 감격에 겨워 혼자 잠시 뿌듯해 했다.
아 오늘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뭐 대체적으로 그렇게 흐르는 것 같았다. 큰 작업을 할 뻔 했던 일도 살포시 뒤로 미뤄졌으니 말이다. 일 하는 사람들에게 당장의 골칫거리가 샥하고 없어지는 것만큼 마음 편한 게 어딨을까.
점심시간엔 고급용어로 꼽사리를 껴서 한강공원에서 라면 하나를 야무지게 먹고, 산책했다. 어제 비가 온 탓인지 날씨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이렇게만 하루가 흘러준다면 참 좋겠다.'
그나마 오후는 무난하게 흘렀다. 선방했다고 생각하고, 저녁일정을 보냈다. 어쩐 일인지 일의 피곤도 덜한 것 같고, 졸음도 덜 오는 느낌이 요 며칠새 꾸준히 챙겨먹은 영양제 때문인가 생각하게 했다. 어젯밤 분명 잠을 많이 못 잤는데도 불구하고.
오늘같은 기운이라면 이번주 로또를 사 봐도 좋지 않을까하며 또 혼자서 쓰잘데 없는 행복회로를 돌리며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중, 그럼 그렇지. 내가 가야할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한참을 와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집 근처에서 야식거리를 사들고 들어갈 생각과 로또 행복회로는 날 집과 더 먼 곳으로 인도하고 있었다니. 시간은 흘렀고, 이대로 반대방향으로 다시 타고 돌아가자니 집에 가는 시간은 늦을 것 같고.
결국, 택시를 잡는다. 차가 막히지 않아 생각보단 빠르게 집에 도착했지만, 택시비는 아침의 기프티콘 2장의 값을 내게 요구했고, 사가려던 야식집은 영업종료 시간이 되어 문을 닫았다. 야심찬 하루 마무리는 한 순간에 다 무너져버렸던 것이다.
아, 누굴 탓할 것인가. 어쩐지 오늘은 운수가 좋더라니. 일희(一喜)하였더니, 바로 일비(一悲)를 가져다주는 나의 애꿎은 삶이란. 김첨지 영감님에 댈 것은 아니었지만, 다 좋다 말았던 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