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디 May 15. 2023

엄마, 아빠는 자식농사 잘 지었어?

선물은 하는 것 만큼이나 받는 것도 어렵다. 생일이나 기념일에 선물로 무얼 받고 싶냐는 질문은 오늘 저녁에 뭘 해먹을 지에 대한 고민 만큼이나 답을 찾기가 힘들다. 일년에 고작 한 두번 있는 기회이니 필요한 것을 신중하게 골라야 하고, 거기에다가 선물로 받기에 적당한 가격인지와 원하는 선물이 내 이미지에 미칠 영향(혹시 속물스러워 보이지는 않을지)까지 생각하다 보면 선물이 더이상 선물이 아닌 부담스러운 숙제가 되어버리곤 한다.



3일 차이로 붙어있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비롯해서 5월은 선물을 할 일도 많고 받을 일도 많은 달이다. 이제 놀이공원에 끌려다니며 시달리던 어린이날은 아이들의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끝이 났고, 종이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던 어버이날 이벤트도 아이들이 자라면서 점점 달라져 가고 있다.



이번 어버이날은 큰애가 취업을 하고 월급다운 월급을 받고나서 처음 맞이하는 어버이날이었다. 그동안은 아이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1,2만원 안팎의 작은 선물을 골랐었다. 선물이야 안 받아도 상관없지만 아이 입장에서도 어버이날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테고, 또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걸 본다고 해서 부모의 마음은 채워질 지 몰라도 부모의 배까지 채워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굳이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받아왔다.



요즘처럼 청년취업이 하늘에 별따기인 때에 스스로 밥벌이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효도를 다하고 있는데, 아이는 며칠전부터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지를 물었다.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으니 어버이날을 폼나게 챙겨주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역시나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딱히 필요한 것이 없어 그냥 저녁을 사달라고 했다.



동네 근처에 맛집을 검색해서 몇군데 괜찮은 식당들을 골랐다는데 죄다 너무 비쌌다. 매일 직장에서 상사 눈치보랴, 동료들 기분 맞추랴 애쓰며 번 돈을 한끼 밥값으로 쓰게 하는 것이 편치않아 선뜻 정하지를 못하고 시간을 끌자 아이는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문득 우리 부모님이 떠올랐다. 일년에 서너번밖에 되지 않는데도 용돈을 드릴 때마다 한사코 마다하시고 실랑이를 벌이다가는 결국 짜증 섞인 말투로 바뀌어야 마지못해 받으시는 모습이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뻐하시는 모습을 기대하며 준비한 선물을 번번히 사양하시는 부모님이 서운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얹어 기분좋게 받아주시면 내 마음도 편하련만 왜 그러실까 싶었는데 이제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돈을 벌기위해 고생했을 자식이 안쓰러워 덥썩 받을 수가 없고, 더불어 자식을 돌보던 부모에서 어느새 자식에게 의지하는 부모가 되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헛헛해지는 것이다.


아이가 선물해 준 어버이날 만찬



"엄마, 아빠는 자식농사를 잘 지었어?"


"그럼 아주 잘 지었지."



저녁을 먹으며 아이는 무심한 듯 물어왔다. 아이의 남 얘기하듯 하는 유체이탈 화법에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너무 성급하지도, 그렇다고 오래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이는 번듯한 직장인이 되어 돈을 벌고 부모님께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는 자신이 무척 뿌듯한 모양이었다. 졸업후 2개월간의 백수생활과 1년 남짓한 인턴생활 동안에 알게 모르게 마음고생을 하며 이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려온 것 같았다.



아마도 학교에 다니는 동안 쭈뼛거리며 성적표를 내놓을 때마다, 잘나가는 엄마 친구 딸래미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아이는 자랑스러운 자식으로 인정받는 이 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아이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술 한잔까지 곁들여 기분좋게 식사를 했고, 음식 사진을 찍어 SNS로 언니와 동생에게 자랑도 하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엄마인 양 호들갑을 떨었다.



실제로 그날 저녁은 참 행복했다. 하지만 내가 행복한 이유는 아이가 취업을 해서도, 어버이날에 근사한 저녁을 대접받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고, 잘 자라준 아이를 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보낸 나의 25년 인생이 그래도 헛되지는 않았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부모에게 자식은 그 존재만으로도 기쁨이고 행복인 것을 자식들은 모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회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줄 세우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부모들 조차도 그 사실을 잊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남의 자식과 비교하며 잠시나마 내 자식을 부끄러워 했던 순간이 없지 않았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세상에서 누군가를 아무 조건없이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부모! 아무 것도 아닌 나에게 '부모'의 인생을 선물해 준 아이들에게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