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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Aug 27. 2023

3주만의 합방

선수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는 큰애가 3주간의 합숙훈련을 마치고 집에 왔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저녁시간이 시끌벅적했다. 선수촌에서 김연경을 보았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그 유명한 선수촌의 급식 메뉴와 하루 운동 스케줄까지, 쉴 새없이 묻고 답하고 3주치의 밀린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다. 허전하던 집안이 이제야 꽉 채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항상 조용하게 혼자만의 휴식을 바라면서도 이럴때면 역시 가족은 함께 모여있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어떤게 진짜 내 마음인지 모르겠다.



밤이 되어 아이들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고, 갈 곳을 잃은 남편이 내방(안방)으로 들어왔다. 작년에 큰아이가 독립을 해서 나갔을때부터 남편은 잠자리를 큰애의 방으로 옮겼다. 잉꼬부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다고 서로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데 나이가 들면서 남편은 혼자서 방을 쓰고 싶어했다.



시작은 침대 때문이었다. 십년 가까이 썼던 침대가 한쪽이 살짝 기울어지고 푹신함도 줄어들어 자고나면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또 자면서 많이 움직이고 이불을 둘둘 말고 자야하는 남편에게는 퀸사이즈 침대를 나와 함께 쓰는 게 좁고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젊을 때야 침대위에서 꽁냥꽁냥 하느라 좁은 것도 모르고 지냈지만, 기운이 다 빠진 지금은 움직일 때마다 옆에서 걸리적 거리는 것도 불편하고 술을 마신 날에는 코 고는 것도 신경쓰여 혼자서 편하게 자고 싶어했다. 게다가 남편은 몸에 열이 많아 여름철에는 침대에서 자는 걸 특히 힘들어했다.



아이들이 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어 남는 방이 없으니 여름에는 이불을 들고 거실로 나가더니만 큰애의 방이 비워지면서는 자연스럽게 그 방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자기가 원하는 온도로 냉방과 난방을 하고, 마음껏 움직이며 편하게 잠을 잤다.



처음에는 그런 남편이 야속했다. 코 고는 소리가 시끄럽고, 술 마신 날은 냄새도 나고, 자다가 갑자기 나한테 다리를 올려놔 잠을 깨우는 것이 짜증나면서도, 나는 "당신없이는 못살아"하는 남편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제 발로 나가는 남편이 서운했다. 혼자만의 공간을 티나게 좋아하는 남편이 괘씸했다. 한편으로는 각 방을 쓰는 우리 부부가 이대로 괜찮은걸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 닫혀진 남편의 방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때떄로 외롭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 hayleymurrayphoto, 출처 Unsplash



그런데 이제는 나도 킹사이즈(이사오면서 큰걸로 바꿨다)의 침대를 혼자서 독차지하는 맛을 알아버렸다. 갱년기에 접어들어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진 내가 조용한 방에서 내 컨디션에 맞춰 방의 온도와 밝기를 조절하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으니 훨씬 숙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함께 누운 침대는 역시나 좁고 불편했다. 에어컨 때문에 작은 실랑이도 벌어졌다. 큰애가 집에 있는 일주일동안은 남편과 같은 방을 써야하는데, 생각만으로도 덥고 힘들다. 아이 방으로 잠을 자러 들어가는 남편의 뒤통수가 그때는 왜 그렇게 얄미웠는지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온다.



어쩌면 방을 따로 쓰고 싶어하는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건, 내가 이미 지나가버린 젊은 시절의 시간들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어 더이상 몸도 마음도 예전같을 수 없다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면서도 남편을 통해서 내가 늙어가고 있음을 확인받는 것 같아 억지를 부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나는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마음만은 이팔청춘'이라더니, 몸은 나이를 따라 정직하게 늙어가는데 마음은 젊은 시절 어디쯤에서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몸과 마음이 나란히 함께 가게 하는 것, 나의 안식년에 해결해야 할 또하나의 숙제인 것 같다.



그리고...

커다란 침대를 나에게 양보해주는 남편을 이제 그만 미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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