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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Aug 17. 2023

I FEEL PRETTY.


나는 뛰어나게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혐오감을 줄 정도로 못생기지도 않았다. 예쁘다는 말은 못 들어봤어도 인상이 좋다는 얘기는 종종 듣고 산다. 나쁘지 않은 인상에, 내 또래 평균보다 작지 않은 키, 지나가다가 다시 돌아볼 정도로 마르거나 뚱뚱하지도 않은 적당한 몸매까지 외모에서 크게 빠지는 부분은 없는데... 딱 한가지 머리숱이 문제다.



나는 선천적으로 머리숱이 적다. 게다가 머리카락이 가늘고 곱슬이 심하다. 정수리 부분의 머리숱이 특히 적은데,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더 많이 빠져 두피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이다. 나이들면 얼굴의 생김새보다 피부와 머리숱이 더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아무리 화장을 공들여 하고 옷을 예쁘게 차려입어도 부스스하고 듬성듬성 속살이 비치는 머리 때문에 훨씬 더 나이들어 보이고 태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머리카락은 나의 가장 큰 콤플렉스이며, 나의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원흉이다.



이제는 ‘예쁘다’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되었으니 나의 외모 콤플렉스가 머리카락 하나뿐이지, 사실 어릴 적에는 외모에 대해 더 많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기골이 장대하게 태어나서 한번도 마른 몸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는 특히 뚱뚱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무척 컸다.


© fuuj, 출처 Unsplash



특히나 예쁜 걸 좋아하는 엄마에게 4남매 중에서 가장 뚱뚱하고 식탐도 가장 많았던 둘째 딸은 자라는 내내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엄마의 따가운 눈총에도 예뻐지고 싶은 욕구보다 먹고 싶은 욕구가 훨씬 컸던 나는 40대까지 통통한-절대로 뚱뚱하지는 않은- 몸매를 유지하며 살았고, 젊은 시절에는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매우 낮아 스스로 여성적인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통통한 몸에 대한 콤플렉스는 내 딸에게로 이어졌다.



큰애는 어릴 때부터 나와 비슷했다. 체격도 크게 태어난데다가 먹는 것도 좋아해서 통통한 체형으로 자랐고, 지금도 남부럽지 않은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 선명하게 드러난 쇄골과 양옆으로 오목하게 패인 가느다란 발목이 로망이었던 내게 딸아이의 듬직한 체격은 늘 거슬렸다.



반면 둘째는 마른 체형으로 특별히 관리를 하지 않아도 살이 잘 찌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첫째가 더 뚱뚱하게 보여서 큰애를 볼 때마다 다이어트를 하라고 잔소리를 해왔다. 말은 건강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솔직히는 나의 콤플렉스가 반영된 것이고 내 눈에 보기 싫어서 하는 소리라는 걸 잘 안다.



어릴 적 엄마한테서 받았던 상처를 내 딸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는 것 같아 자책이 들지만, 외모가 중요한 우리 사회에서 혹시라도 외모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되고, 내 딸이 더 예뻐졌으면 하는 욕심에 잔소리를 멈출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엄마가 콤플렉스를 만들어주고 있고, 아이의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도 나는 왜 여전히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을까? 우연히 영화 한편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주인공은 누가 봐도 뚱뚱하고 별로 예쁘지 않은 여성이다. 어느날 우연한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 자신이 너무도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이게 되면서 모든 일에 자신감이 넘친다. 사람들도 처음에는 외모와 다르게 행동하는 주인공을 낯설어하지만, 그녀의 당당함에 점점 호감을 가지게 되고, 예쁘지 않은 외모에 가려졌던 그녀의 능력이 드러나게 된다. 결국 또한번 머리를 다친 후 자신없어 하던 본래 자기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마지막에는 결코 외모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며 모든 사람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가지며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주인공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같이 바뀌어감을 느꼈다. 처음에는 못생겼는데 예쁜 척하는 주인공이 우습다가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점점 자연스럽게 느껴지며 실제로 더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드라이를 마치고 헤어젤까지 바른 내 머리카락은 오늘 아침에도 영락없이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 정수리의 속살은 오늘따라 유난히 더 하얗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 ‘아이필프리티’를 보기 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달라졌다. 아니 달라져 보려고 한다.



비록 갱년기를 맞아 머리카락은 줄어들었지만, 54년을 딸로 아내로 엄마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나는 지금 정의롭고 겸손하고 배려심 깊은, 참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테니까 나는 지금도 충분히 예쁘다.



그리고...

더운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을 딸아이에게도 문자를 한통 보낸다.



 너무 멋지다! (엄마 닮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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