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는 남편에게 '굿모닝!'을 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인사하지 않으면 절대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는 남편은 역시나 나를 슬쩍 보고는 그냥 욕실로 들어갔다.
굿모닝을 입속에 가두어 버린 범인은 바로 그놈의 "알아서 할게".
내가 남편에게서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3종 세트가 있다.
"글쎄"
"몰라"
"알아서 할게"
그중에서도 "알아서 할게"는 최근에 등장해서 내 속을 제일 많이 뒤집어 놓는 말이다.
무심한 표정을 동반하는 "글쎼"나 "몰라"와는 달리, "알아서 할게"는 짜증스런 표정과 짝을 이루어 내 기분을 두배는 더 상하게 만든다. 그동안에도 아이들한테 들을면서 혈압 오르는 걸 간신히 참아오던 말인데, 이제는 남편에게까지 그 말을 듣고 있으려니 세상에서 알아서 한다는 사람이 제일 싫어질 지경이다.
지난번 시부모님 생신 때 미리 내려가는 남편이 추울까봐서 미리 두꺼운 겨울바지를 빨아놓고 입으라고 했더니 몹시 짜증섞인 말투로 "알아서 할게" 했다. 기분이 상해서 운동을 하고 오니 겨울바지는 건조대에 그대로 둔 채로 얇은 가을바지를 입고 나갔더랬다. 알아서 한다더니 강추위에 사흘만에 만난 남편은 입술이 새파래져 달달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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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신경쓰지 않으면 치과 정기검진을 놓치기 쉬워 겨울방학이 시작될 때면 아이들 치과검진 날짜부터 정해놓고는 했다. 이사를 오고나서 예전에 다니던 지인의 치과가 멀어졌고, 아이들도 제각각의 스케줄이 있어 서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집 근처 새로운 치과에 다니기 시작해서 나를 뺴고 남편과 아이들만 시간을 맞추면 됐다.
먼저 두아이가 모두 가능한 시간을 잡고 저녁에 돌아온 남편에게 그 날짜에 시간이 되는지를 물었다. 거의 한달 전부터 치과에 가야함을 주지시켰는데도 움직이지 않으니 내가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알아서 할게". 역시나 짜증섞인 말투가 덤으로 따라왔다.
왜 지? 뭘 알아서 한다는 거지? 그리고 잠시 후 남편은 아이들 방을 돌며 그날 몇시쯤 치과에 갈 수 있는지를 물었다. 결국 그 날 치과에 갈 것을. 이미 내가 아이들과 얘기를 해서 다 조율해놓은 것을. 남편이 무엇을 알아서 한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아님 "오케이" 한마디면 해피엔딩이 될 것을 "알아서 할게"로 앵그리엔딩을 만들어버리는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다. 마누라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데, 주는 떡도 기어이 땅에 떨어뜨려 흙을 묻히고 주워먹는 심보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그래서 아침에 남편이 출근 준비를 하는데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현관문을 나서는 남편에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기 싫었다. 어련히 알아서 잘 다녀올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