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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Mar 25. 2024

대접받는 연습이 필요해

남편은 대접받는 걸 무척 부담스러워 한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대접받아야 되는 날,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다. 내 생일에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 생일에도 대부분 밖에 나가 외식을 하거나 배달을 시켜 먹지만, 남편 생일은 왠지 집에서 생일상을 차려줘야 할 것 같아 직접 음식을 했다. 항상 아버지 밥을 가장 먼저 푸시고(아버지가 안 계실 때도 항상 먼저 밥을 퍼서 이불속에 묻어두셨다), 아버지 밥상에는 생선 하나라도 더 올리시는 친정엄마를 보고 자라서인지 '가장 모시기'가 뻐속 깊숙이 박혀있는 것 같다. 아니, 그보다는 항상 다른 사람이 감동하는 것을 보며 감동받는 내가 좋아서 벌이는 일이다.


저녁을 먹기 위해 점심무렵부터 음식준비를 시작했다. 메뉴는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LA갈비와 미역국, 두종류의 전, 골뱅이 무침, 문어숙회, 토마토 샐러드로 정했다. 며칠전부터 컨디션이 안좋아 매번 빼놓지 않던 잡채는 건너뛰기로 했다. 미역국 냄새에 전 부치는 기름냄새까지 집안에 명절같은 냄새가 퍼지자 거실에 있던 남편이 안절부절 못했다.


"그냥 밖에 나가서 아무거나 한 끼 먹으면 되지 뭘 그렇게 하느라고..."

"우리집 가장의 생신인데 어떻게 아무거나 먹어? 정성을 다해 차려드려야지!"

"아이고 부담스럽게..."

"내가 아침까지 몸이 안좋았는데 자기 생일을 준비하려니까 힘이 나네. 이런게 사랑의 힘이라는 건가?"

"......"


'오른손이 한 일을 온 몸이 알게 하라'를 평소 생활신조로 삼고 사는 나는 음식을 하는동안 온갖 생색을 다 냈다. 그럴수록 남편의 안절부절은 더욱 심해져 갔다. 내 생일에 선물로 뭘 받고 싶은지 며칠을 묻다가 딱히 답을 안주니 생일이 며칠 지난후에 말없이 내 통장으로 십만원을 넣어준 남편으로서는 아내의 정성이 몹시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었다.


"내가 뭐 할 거 없어? 야채라도 씻을까?"

"자기는 오늘 주인공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누려."


남편은 내가 베푸는 거의 대부분의 호의에 대해 거절을 한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거절당할 떄마다 내가 거부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민망하고 불쾌한 느낌은 신혼여행 후 첫 출근일부터 시작되었다. 그날은 남편이 나보다 휴가가 짧아 하루 먼저 출근했는데, 예전에 친정엄마가 하셨듯이 퇴근해서 돌아오는 남편의 양복 저고리를 받아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내 손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옷을 벗어 걸었다. 예상밖의 그의 반응에 순간 너무 뻘쭘하고 무안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이제까지 남편은 나에게 뭘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거의 없다. 내가 "~해줄까? 하면 그의 대답은 언제나 "아니"였다. 마치 습관처럼 거절부터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아주 가끔은 아니라고 말한 후에 바로 "그래. 해줘"하고 의사를 바꿀 떄도 있지만 그떄는 이미 내 기분이 망쳐진 후였다.


남편이 내 손길을 바라지 않는다고 불평하면 주변에서는 복에 겨운 투정이라고들 한다. 아내를 귀찮게 하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 남편이냐고 하지만, 바꾸어서 생각하면 남편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니 나도 남편에게 마음편히 기댈 수가 없다. 늘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게 나는 남같이 느껴져서 싫다.



하루종일 준비한 생일상에 네 식구가 둘러앉았다. 밖에 나가 아무거나 먹자던 남편도 내가 차린 생일상과 딸래미가 특별히 주문한 케잌에 아주 흡족해 하는 눈치였다. 평소 표현을 잘 못하는 남편도 연신 "맛있다", "너무 좋다"하며 잘 먹었다. 28년을 함께 살다보니 이제는 그 정도 표현이면 아주 좋다라는 뜻이고, 그가 하는 맛있다, 너무 좋다가 "고맙다", "사랑한다"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겠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을 줄 알고, 대접도 받아 본 사람이 받을 줄 알겠지. 여러모로 미운 구석이 많은 남편이지만 내 남편을 최고로 대접해주고 싶다. 나에게서 대접받는 것을 충분히 연습하다보면 밖에 나가서도 대접받는 것에 자연스러워질테니까. 내 남편이 내 눈에는 촌스러워 보여도 남의 눈에 촌스러워 보이는 건 참을 수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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