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아무리 늦게 잠자리에 들었어도 아침이면 늘 같은 시각에 눈이 떠진다. 항상 남편보다 먼저 일어나 식탁에 앉아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며 기사를 보고 있으면 남편은 그제서야 일어나서 거실로 나온다.
"굿모닝~"
"예"
'잘잤어?'는 나도 좀 낯간지러워 미쿡식으로 가볍게 인사를 건네는데 남편은 그 조차도 없다. 대신에,
"ㅇㅇ는 학교에 갔어?"
안방과 방문을 마주하고 있는 아이 방의 문이 열려있고 불은 꺼져있고 아이는 없으니 누가봐도 방의 주인이 부재중임을 알 수 있는데도 그의 아침인사는 한결같다.
"굿모닝 해봐!"
"......"
내게 가까이 다가와 가벼운 스킨십과 함께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해주기를 바라왔지만, 사실 낼모레면 환갑인 아저씨가 부시시한 머리에 눈꼽 낀 얼굴을 가까이 대는 건 이제 나도 노땡큐이니 "굿모닝" 한마디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가 절대로 먼저 인사하는 법은 없다. 내가 먼저 굿모닝 하지 않으면 집안은 고요해지고 거실 공기는 싸늘해진다. 왜 굿모닝 하지 않는지 묻지도 않는다. 마치 싸움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먼저 인사하지 않는 남편이 괘씸하지만, 냉랭해지는 분위기가 싫어 나는 늘 먼저 굿모닝한다.
그런데 가끔 나도 별다른 이유없이 굿모닝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아니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늘 내가 먼저 굿모닝 하는 게 새삼 약올라질 때, 어쩌다 저렇게 재미없는 사람을 만나서 내 인생까지 이렇게 무료하고 재미없어졌을까 억울하게 느껴질 때... 그럴 때면 내 마음이 굿모닝이 아니니 그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그의 인사는 밤에도 다르지 않다.
"나는 먼저 잡니다."
'잘자'라든가 '굿나잇'이라든가 간단하면서도 듣기 좋은 인삿말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마치 보고 하듯이 '나는 먼저 잡니다.'가 뭔지... 멋 없는 그의 인사에 나도 기분에 따라 "잘자"와 "네"로 번갈아 대답한다.
결혼전에도 그리 다정하고 살가운 남자가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조선시대 남자일 줄은 몰랐다. 조선시대 남자일거면 이왕이면 기품있는 왕이나 박력 넘치는 호위무사쯤은 되든가 할 일이지, 마누라에게 애정표현을 하면 마치 내시라도 되는 것처럼 말을 아낀다.
그러면서도 내가 저녁준비를 하고 있으면 식탁에 수저와 김치를 챙기고, 밥을 먹고나면 설겆이를 해준다. 재활용쓰레기가 쌓이면 시키지 않아도 분리수거를 한다.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는 아이의 책상을 정리하고, 화장실 청소를 할 때가 되면 물을 뿌려 바닥의 머리카락들을 씻어내린다.
"ㅇㅇ는 학교에 갔어?"나 "나는 먼저 잡니다."가 남편 방식의 인사법이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이 그 나름의 애정표현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채워지지가 않는다. 나에게 필요한 건 그런 행동보다 다정한 말 한마디인데, 그는 그게 그렇게 어려운 모양이다.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학습이 안되니 이제 그만 내가 포기해야 하나 싶다.
억울함이 불쑥 고개를 내밀며 또다시 나의 굿모닝이 들어가버렸다. 거실창으로 환한 아침 햇살이 들어오지만 남편과 함께 있는 거실의 공기는 차갑기만 하다. 절대로 먼저 굿모닝을 못하는 남편과 여전히 남편의 굿모닝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 어쩌면 천생연분(?)인지도 모르겠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데 매일 아침 나의 '굿모닝'에 남편도 언젠가 한번은 '굿모닝' 해주겠지... 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