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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Feb 23. 2024

내 다정함이 남편은 부담스럽다.

남편이 생애 첫 입원을 하는 날이다. '입원'이라고 하기도 민망하지만 병원에서 하룻밤을 자야하니 입원은 입원이다. 얼마전 건강검진에서 약간의 이상이 발견되어 따로 날을 잡아 시술을 받기로 한 것이다. 간단한 시술이긴 하지만 입원까지 해야 한다고 하니 신경이 쓰였다. 며칠전부터 식단을 조절해야 하고 전날에는 금식까지 해야해서 남편도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는 눈치였다. 나도 크게 염려되는 아닌데도 전날 잠을 설쳤다. 내가 뒤척이면 옆에서 자는 남편도 깰까봐 거실에 나와 앉아있다가는 새벽녘에야 들어가서 잤다.


병원에 같이 갈 생각으로 아침 일찍 일어났다. 남편은 전날 병원에 따라가겠다고 한 말을 농담으로 들었나 보다. 머리를 감고 나설 채비를 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당황스러워했다.


"당신은 뭐하러 가? 부담스럽게"


"뭐하러 가?"까지는 예상했지만, "부담스럽게"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말이어서 순간 나도 멈칫했다. 사실 내가 병원에 함께 가려고 한 이유는 남편의 생애 첫 입원에 대한 걱정 20%, 으쌰으쌰 30%, 이거봐라 50%였다. 입원에 대한 걱정과 남편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려는 으쌰으쌰보다 '이거봐라'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는 사연이 있다.


나는 첫째와 둘째를 모두 제왕절개로 낳아 수술하기 하루전에 입원해서 병원에 5박6일을 있었다. 어릴 때 검사를 받기 위해서 하루 입원해 본 적은 있었지만 입원다운 입원은 나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낯선 병원침대에 낯선 환자복, 게다가 배를 가르는 수술까지 앞두고 있으니 너무 걱정되고 무서웠다. 남편이 옆에서 같이 있어줬으면 싶었지만 간이침대에서 자는게 불편할 것 같아 집에 가라고 했더니 정말 가버렸다.


© mdominguezfoto, 출처 Unsplash



내가 입원했던 병실은 2인실이었다. 옆 침대의 산모도 나와 똑같이 다음날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그 산모의 곁에는 남편이 지키고 있었는데 연신 먹을거리를 사다 나르며 아내를 살뜰히 챙겼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집 생각이 나며 괜시리 울적해졌다. 나에게 방해가 될까봐 작은 소리로 소근거리는 옆 침대 부부의 모습이 내 기분을 더 가라앉혔다.


아기를 낳은 날에도 남편 대신에 친정엄마가 병실에서 주무셨다. 산후조리에는 남편보다는 엄마가 훨씬 도움이 되었지만, 빗말이라도 자기가 같이 있겠다고 하지 않는 남편이 야속했다. 둘째 때는 한번의 경험이 있으니 괜찮을 알았는데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첫째 때의 서운함을 얘기했던 같은데 남편은 또 입원만 시켜놓고 가버렸고 나는 저녁내내 찔끔거렸다.


그래서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입원을 하면 이렇게 해주는 것이라는 걸. 같이 걱정해주고 위로해주고 화이팅을 해주는 게 어떤 건지를. 이런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걸. 그런데 부담스럽단다. 원래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남'안에 나도 포함되는 것이 서운하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남편에게 기대하는 것도 그는 '불편'으로 느끼겠구나 싶은 마음에 또 한번 벽을 느낀다.


부부라면 마땅히 주고받아야 하는 '다정함'의 정도가 나와 남편은 너무 다르다는 다시한번 깨닫는다. 나는 표현이 중요한 사람이다. 상대가 나에게 아무리 애정을 가지고 있어도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지 않나. 아니 표현을 함으로써 그 애정이 더욱 돈독해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남편은 "그걸 꼭 말로 해야지 아나?"이다. 너는 너, 나는 나, 각자의 자리에서 무탈하면 그것으로 됐다 한다. 말로 듣지 않으면 짐작할 뿐이라는 걸 그는 모르는 것 같다. 짐작은 짐작일 뿐 결코 확신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지금쯤 시술이 시작됐을까, 부담스럽든 말든 병원에 따라갈 그랬나... 이번에는 병원이 아니라 집에 혼자 남겨져서 외롭다. 아무래도 나의 다정은 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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