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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May 04. 2024

대접받는 엄마

우리 아이들은 나를 어떤 엄마로 평가할까? 적어도 밥 하나만큼은 열심히 해먹이며 살아왔으니 보통의 엄마 정도로는 생각해주겠지? 푸근함, 편안함, 안기고 싶은 품 같은 항목에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그런건 사실 나도 내 엄마에게서 받아보질 못했다. 엄마 역시 한 끼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밥을 해주셨지만 한번도 엄마 품에 따뜻하게 안겨본 적은 없다.


친정엄마가 서울에 올라오시면 우리 세자매는 비상이 걸린다. 동생은 직장에 다녀서 시간이 되는대로 얼굴만 한번 보이는 정도지만, 언니와 나는 엄마가 머무르시는 동안 내내 신경을 써야한다. 주로 언니네 집에서 주무시기 때문에 식사며 잠자리며 언니가 거의 모든 걸 책임지고, 나는 낮시간동안 함께 놀아드리는 역할을 한다. 엄마는 말로는 괜찮다, 다 좋다 하시지만 입맛이나 취향이 까다로우셔서 무엇을 사드려야 할지 어디를 모시고 가야할지가 아주 큰 숙제이다. 또 자존심이 너무 강하셔서 아무리 자식이어도 조금이라도 서운하게 해드리면 상처를 받으신다. 그래서 말 한마디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지난번에 오셨을 때는 조카가 하루종일 모시고 다니면서 접대를 해드렸어서 이번에는 내 딸아이에게 시간을 내도록 했다. 오래 걷거나 차를 타는걸 힘들어하시니 가까운 야외에, 볼거리가 있고, 맛집도 근처에 있는 적당한 곳을 찾아내야 했다. 며칠동안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딱히 눈에 들어오는 곳이 없었다. 매일 집에만 계시는 엄마에게 경치가 좋은 곳에서 잠깐이라도 여행기분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지만 그런 곳은 모두 너무 멀었다. 적당한 곳을 찾느라 며칠동안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점점 스트레스로 변해갔다. 차라리 우리가 내려갈 것을 괜히 엄마를 올라오시게 했나 후회가 되었다.


엄마가 서울에 오시면 집에 혼자 남겨지신 아버지가 걱정이다. 같이 오시면 좋지만 엄마보다 더 까다로우신 아버지는 남의 집에서 주무시는 걸 싫어하시고, 무엇보다 엄마가 아버지와 동행하시는 걸 좋아하지 않으신다. 매일 까다로운 아버지 비위를 맞추느라 힘들어서 잠깐이라도 떨어져있고 싶으시단다. 까다로운 엄마 옆에 더 까다로운 아버지가 계시니 우리도 함께 오시는건 그리 반갑지 않다.



엄마를 모시고 갈 몇개의 후보지가 추려졌지만, 하루 세번 정확한 식시시간을 지키시는 엄마에게는 점심을 잘 먹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식당으로 먼저 모시고 갔다. 식당이 깔끔하고, 음식이 맛있고, 평소에 잘 안먹는 메뉴를 기준으로 엄선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신경이 온통 엄마의 반응을 살피느라 예민해졌다. 말로는 맛있다고 하셔도 젓가락질 하는 속도와 드시는 동안의 표정에서 정말로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를 금방 눈치채게 하시니, 진짜로 맛있게 드시는 걸 확인해야 비로소 한시름 놓게 된다. 다행히 점심은 성공적이었다. 엄마가 맛있게 드시는 걸 보고나니 음식 맛이 제대로 느껴졌다.


점심식사와 차를 마시고나니 시간이 많이 지났고, 근처 호수공원이라도 들르려고 했지만 마침 행사를 하고 있어서 단체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 그냥 집으로 차를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뒷자석에서 졸고있는 엄마와 언니를 보며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랑 이모는 참 착한 딸이야"

"잘 봤지? 너도 이 다음에 엄마가 늙으면 이렇게 모셔야 된다."


하루종일 엄마를 살피느라 전전긍긍하는 나와 언니를 보며 딸아이도 느끼는 게 있는 것 같았다. 농담을 섞어 딸에게 얘기했지만 사실 나는 내 딸이 진심으로 안그러길 바란다. 나는 늙어서도 아무데서나 잘 자고, 아무거나 잘 먹고, 아무 얘기나 다 들어줄 수 있는 엄마였으면 좋겠다. 죽을 때까지 나를 보호해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보호받고 싶은 상대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한때는 엄마의 까탈스러움 때문에 자식들에게 더 대접을 받으시는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가족들을 위해 희생만 하는 엄마보다는 자신의 몫을 분명히 챙기는 엄마가 더 낫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늙어가는 친정엄마를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서 고생하신 엄마가 안쓰럽고 진심으로 잘해드리고 싶지만, 이 나이에도 여전히 마냥 기댈 수 있는 따뜻한 엄마 품이 그립다.


우리 애들은 나에게 신경을 덜 썼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이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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