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보고 싶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예고편만 봐도 눈물이 나던데, 영화관에 가서 볼 자신이 없었다.
'인풋이 없으니, 아웃풋도 없다'는 남편의 팩트폭행에 호기롭게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하자마자 눈물바람이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인상 깊었던 장면에 대해 몇 자 적어본다.
· 집 기둥에 칠해져 있는 노란색 페인트
할머니, 할아버지가 거주하는 한옥 집 기둥과 테두리에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자세히 보면 흘러내린 자국도 있고, 덕지덕지 칠해진 부분도 있다. 아마도, 할아버지가 직접 칠하지 않으셨을까?
할머니가 노란색을 좋아하셨나 보다.
화단에는 노란 소국이 심어져 있고, 할아버지는 그 꽃을 따다 할머니에게 건넨다.
나도 노란색을 좋아하는데...
그 장면이 인상 깊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다.
예전, 남편과 지하 첫 작업실을 준비할 때였다. 설레고 벅찬 마음도 있었지만, 서울 변두리 창문하나 없는 지하에서 시작하는 게 내심 울적하기도 했다. 그때가 연말이라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에 며칠 다녀왔다. 그 사이 남편이 공방 안에 있는 작은 창고공간 문틀을 내가 좋아하는 샛노란색으로 칠해놓았다.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준 것이다.
10년이 다되어가는 일이지만, 아직도 남편 청바지에 묻은 노란색 페인트가 아른거린다.
할아버지도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 "괜찮다. 이쁘다. 좋다." 말해주는 남편
할아버지는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할머니 병원을 함께 간다. 본인의 거동도 힘들면서 무릎이 아픈 아내를 걱정한다. 두 분은 손을 잡고 다녔다. 시장에 갈 때도, 할머니가 진달래 꽃을 꺾기 위해 길이 없는 도로 옆 산을 올라갈 때도 묵묵히 곁을 지킨다. 어떠한 생색도, 불만도 없이 기꺼이 행한다.
'기꺼이' 행한다는 건, 진심이 담기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무더운 여름날, 함께 낮잠을 잘 때도 두 손은 포개져있다. 사소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들. 이렇게나 대단한 것들이 할머니를 평생 소녀로, 그리고 여자로 살게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 마당 한쪽벽에 매달린 큰 거울
마당 한쪽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큰 거울.
할아버지는 기어이 본인이 할 수 있다며, 극구 말리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무리해서 힘을 써본다. 결국, 다른 가족들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두 명이서 낑낑거리며 제법 큰 거울을 건다. 거울에 비친 할아버지 모습이 나오는데, 아빠생각이 났다.
할아버지도 예전엔 집안에 크고 작은 일들을 직접 하셨을 텐데, 점차 물리적인 한계를 느끼지 않으셨을까. 흘러가는 시간과 빠져가는 근육. 눈에 보임에도 인정하기 싫은 것도 있다.
우리 아빠는 한 직장에서 40년 넘게 근무하셨다. 어릴 땐, 아빠가 슈퍼맨이라 생각했다. 아빠가 손만 대면 뭐든 뚝딱이었으니 말이다. 몇 년 전, 퇴직하셨지만 우리 아빠를 찾는 회사가 많았다. 아직도 일을 하시고 체력도 나보다 더 좋으시다. 그럼에도, 같이 장을 보러 가면 내가 조금 더 무거운 짐을 든다. 우린 서서히 서로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 할머니의 노란색 한복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할머니는 위아래 노란색 한복을 입고 들어오신다. 저고리 위에 입은 저고리도 노란색이다!
노쇄한 남편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었을까.
좋아하는 색으로 온몸을 덮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함이었을까.
어둡고 힘든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밝은 색으로 중무장한 자기 방어였을까.
나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 "할아버지 생각은 누가하나? 나밖에 할 사람 없는데."
12명의 아이를 낳고, 여섯을 잃었다.
감히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사건과 감정을 나누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눈 쌓인 할아버지 산소를 등지고 덤덤하게 인사하지만,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뒤돌아 보기를 반복하다 이내 주저앉아버린다.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처럼 목놓아 펑펑 울어버린다.
나는 내가 밖에서 줘터지고 오는 건 그렇게 슬프지 않지만, 내 가족이 부당한 일이나 힘든 일을 겪으면 내 안의 다른 자아가 튀어나온다. 유별날 정도로 가족애가 강한 사람이다.
결혼 전엔, 부모님이 나의 1번이었다. 지금은 남편이 나의 새로운 가족이고 1번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남편과는 10년을 붙어있었는데도, 여전히 애틋하고 그립다.
언젠간 나의 1번과도 함께하지 못할 날이 오겠지.
부부에 대해, 가족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재밌었던 점은 낙엽을 던지며 장난칠 때, 물장구를 칠 때, 눈싸움을 할 때 생각보다 격하고 진심이었던 것!
세상에서 둘 도 없는 친구처럼 보였다.
다정하고 자상한 남자, 소녀 같지만 단단한 여자.
원래 그랬던 사람들이 만나 부부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난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