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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희 Aug 19. 2023

그리고픈 얼굴들

울산 여자들

 커피 마시기 좋은 날, 껍데기에 소주 땡기는 날, 배 찢어지게 폭식하고 싶은 날, 그리고 나의 맨 모습을 보이고 싶은 날 이들이 생각난다.

 내 고향 울산,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

 이들은 내 짓궂은 장난과 쓰레기 같은 드립에도 이제는 무덤덤하다.      


 나를 제외하고 5명인데, 신기할 정도로 한 순간이라도 밉거나 싫었던 적이 없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지금도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에 연보라색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애틋하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작년 개구리가 결혼했다. 개구리 결혼식날 그냥 눈만 마주쳐도 울었다. 신부대기실에서부터 신랑신부 퇴장할 때까지 운 것 같다. 식이 끝나고 신랑과 함께 인사하러 왔는데 "정희 고마워"라는 한 마디에 목구멍이 막혀 더 이상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개구리 시집가는 날, 세상 예쁜 개구리


 그렇다고 자주 연락을 하거나 애정표현을 하지는 않는다. 술에 취하면 남사스러워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슬쩍 꺼낼 때도 있지만, 주로 만나면 웃고 떠들고 깔깔 거린다. 나는 평소에 조용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이들과 함께 있으면 골목대장이 된다.      



 20대 때는 연애 얘기나 주로 가벼운 얘기들을 했는데, 요즘은 서로의 안위를 묻기 바쁘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가끔 씁쓸하기도 하다. 자연스러운 변화겠지만, 그걸 받아들이기엔 아직 이 친구들이 너무 소녀 같아 보인다.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은 없지만,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이들을 아주 깊고 짙게 사랑하고 있다.       

          



남사친의 기준

 이 친구는 남사친의 기준점이 된다.

 나보다 키가 작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왔다.


 중2 때 1년 내내 짝지였고, 사춘기를 함께 보낸 동지이기도 했다. 나는 학교생활 열심히 하는 평범한 학생이었고, 이 친구는 무리 지어 놀러 다니기 좋아하는(조금은 까졌지만 성격은 좋은) 학생이었다. 그래서 둘이 친하게 지내는 걸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가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감수성 풍부한 사람이라는 걸 대부분 잘 모를 것이다. 두 딸의 아빠가 된 지금은 먹고살기 바빠 취미 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다고 한다.      


 보통 2~3년에 한 번씩 보고, 연락도 1년에 두어 번 할까 말까? 만나도 잠깐 밥 먹고 커피 한잔 하는 정도이다. 커피 한잔 하는 시간이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버린 우리가 중학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둘 중 한 명이 아주 힘들거나 우울할 때, 혹은 천박한 얘기를 하고 싶은데 들어줄 사람이 없을 때 가끔 통화를 한다. 항상 전화를 끊을 때마다 ‘닭발 먹으러 가자, 낮술 하자’라며 사소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약속들을 잔뜩 늘어놓는다.  

 그렇게 통화를 마침과 동시에 현실로 복귀한다.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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