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몇 년 전 도예가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전향했다. 아주 부드럽고 단호한 결정이었다. 나는 그의 열렬한 1호 팬이자,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포터였다. 도예학과를 졸업하고 이천 도자기 작업실에서 일도 해봤지만, 도저히 도예는 아니었나 보다. 내가 보기에도 그림 그리는 것에 더 재능이 있어 보였다. 나와는 다르게 흥미를 느끼는 관심거리가 많았고, 자신의 생각을 즉각적으로 표현해 내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반에서 그림 잘 그리는 친구 한 두 명은 꼭 있다. 그 친구가 바로 남편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꾸준히 그려왔다. 비록, (비밀인데) 성적에 맞춰 도예과를 가게 됐지만 타고난 재능은 아무리 외면해도 삐질삐질 새어 나왔다.
손 생김새나 스케치하는 선 모양새만 봐도 잘 그리는 사람인지 아닌지 대충 알 수 있다. 나는 딱히 재능은 없지만 일단 열심히 하고 보는 스타일이고, 남편은 아주 재능 인간이다. 그는 야무진 손 생김새부터 삐딱하게 생각하는 방식까지 예술가의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예전부터 내가 동경해 오던 작가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
몇 가지 특징을 나열해 보자면,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듯 하지만 적당히 시큰둥하다. 타고난 재능을 갖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게다가 눈치도 빨라 센스 있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내가 부러워하는 모습들이다.
작가명 '씩씩'
작가로 성공한다면 나보다는 남편일 거라 생각했다. 애석하게도 우리 부모님 포함 많은 이들이 동의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잘되어야 나머지 한 명을 먹여 살리든, 끄집어 올려주든 할 것 아닌가. 부부나 커플이 같은 분야에 종사하다 보면 둘 다 잘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걸 해낸 이들도 있겠지만, 난 아니었나 보다.
지원 사업으로 받은 재료비로 남편이 필요한 재료를 구입했다. 그 대가로 하기 싫은 전시나 작업을 하기도 했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지인들이 이 글을 본다면 속상해 할 수 도 있겠지만, 남편이 어느 정도 자리 잡기 전까지 나를 많이 내려놓았던 것 같다. 그런 내 노력을 잘 알고 있던 그는 빠르게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고, 이제는 그의 작가명과 작업을 알아보는 이들도 제법 생기게 됐다.
얼마 전, 무사히 개인전을 마무리했다.
처음 접해보는 일들과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혼란스럽고 힘들었을 텐데 끝까지 잘 마무리해 줘서 정말 감사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달렸다고 생각한다.
비록, 내가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지지는 못했지만, 남편의 재능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지지해 줬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열심히 해준 남편도 멋있고, 믿고 기다린 나도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