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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희 Sep 04. 2023

오늘 나의 기분이 원망스럽다

  생각과 마음이 따로 노는 날이 있다. 

 이런 날, 목구멍에서 웽웽거리는 마음의 소리를 묵인한 채 생각의 소리를 따른다. 


 생각 없음을 생각하면서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인다. 생산적인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들, 예컨대 속옷을 정리한다거나 어중간하게 삭은 양말을 버리는 등의 자질구레한 일들 말이다. 


 오늘의 자질구레한 일은 밑반찬을 만드는 것이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몇 알의 약과 두유 한잔을 챙겨 먹고, 온 집안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어제와 다르게 제법 선선해진 날씨에도 마음이 심드렁했다. 나쁘지 않은 요리 실력 덕분에 밑반찬 서너 개와 점심에 먹을 청국장까지 금방 끝냈다. 내 마음이 불그락해서 그런지 모든 음식에 들어간 고춧가루 때문에 반찬통이 불긋불긋했다. 


 빨래를 끝내고 청소를 해도, 커피를 마시고 화분에 물을 줘도 내 마음은 그대로이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지 알고 있지만, 알고 싶지 않다. 

 내 마음과 얘기하고 싶지 않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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