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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희 Sep 09. 2023

몸에 힘이 빠지질 않는다

  우리 공방은 길에서 두 계단 올라가야 되는 1층이다.

 통유리로 된 입구엔 개나리색 노란 블라인드가 걸려있고, 어닝이 설치되어 있어 한 여름에도 알맞은 그늘이 진다. 그 옆 창고 셔터에는 해바라기가 빼곡히 그려져 있다. 한 마디로 날씨 좋은 날 앉아있기 딱 좋은 계단이다.

 계단에 앉아 쉬었다 가는 분들이 종종 계신다. 잠시 더위를 한 김 시켰다 금방 가시는 분도 있고, 문 바로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분도 있다. 평소 싫은 소리를 잘 못하기도 하고, 대부분 어르신 분들이라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먼저 인사를 드리거나. 비 오는 날 우산을 빌려드리기도 한다.


씩씩 작가와 밴지


 오늘은 남편 없이 나 혼자 출근해야 했고, 공방에 도착하니 모녀로 보이는 두 분이 계단에 앉아 얘기를 하고 계셨다. 내가 왔는데도 문 앞에서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쭈뼛거리며) 저, 문 좀...”      

 겨우 비집고 들어가 공방 정리를 다 하고 커피를 내려 마실 때까지 앉아계셨다. 할 얘기가 많은가 보다... 하고 작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할머님까지 앉아 그 대화에 합세하셨고, 담배를 피우셨다. 순간 너무너무 화가 나서 아주 되바라지게 한 마디 했다!     

  “저... 언제까지 계실 거 같으세요?”

  “우리 5분, 아니 10분 이따 갈 거예요!”     

 따님은 되려 나에게 짜증을 냈고, 나는 찍 소리 못하고 그저 블라인드를 내리는 것으로 내 불만을 표출했다. 사실, 나에게 뭐라 할까 봐 살짝 쫄았던 것도 있다. 다행히 금방 일어나셨고, 안도에 한숨을 쉬며 엄마한테 쪼잘쪼잘 일러바쳤다.


 근데, 커피 한잔을 다 마시기도 전에 후회가 되더라.

 평소 나 같으면 시원한 물이나 음료수를 드렸을 것이다. 갑자기 할머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 뜨끔했다(나한테 짜증 내던 따님은 아직도 밉다). 그냥 내가 조금만 더 여유롭게 생각했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었는지.

 나는 그동안 남편이 없을 때만 나에게 이상한 일들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술 먹은 아저씨가 쳐들어온다거나,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불쑥 찾아온다거나? 생각해 보면, 나 혼자 있으면 평소보다 더 불안하고 예민해져서 똑같은 일도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도 정말 그러고 싶지 않다.


 요즘은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지만, 근본적인 불안은 여전하다. 뽀송하게 씻고 침대에 누워도 전신에 힘이 빠지질 않아, 힘을 주어 몸에 힘을 빼려 한다. 이런 어거지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고 싶지 않은데, 그러기가 아직은 조금 어렵다. 이것도 연습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리라 믿고 있다.

 다음에 그 할머님을 뵈면 꼭 웃으며 인사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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