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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쏨 Jul 16. 2022

취미부자가 사는 집

1. 나의 서식지

출처_픽사베이



나의 서식지



서른여덟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생일은 가족끼리 다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축하해주는 날‘이란 가풍 아래 자란 나는 어릴 때부터 요란한 풍선장식이 넘실대는 파티 같은 생일을 꿈꿨다. 아이들의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내가 꿈꿨던 그날을 대리 만족하지만, 정작 내 생일엔 자꾸만 인색해진다. 사실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생일이란 것에 대한 거창한 의미가 상실된다. 생일날이란 그저 38년 동안 자식이란 걱정 보따리를 짊어지고 계신 부모님이 떠오르는 날 일 뿐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오늘 생일이야. “ “어머, 너 생일이니!? 엄마 오늘 임영웅 콘서트 가는 날이잖아! 우리 딸 생일도 까먹었네! 오늘 즐겁게 보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엄마는 이제 어느 정도 자식 걱정을 덜어내신 모양이다. 그렇다, 결혼과 동시에 나는 생일을 함께 축하할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축하를 받는 일보다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보내는 일이 먼저 시작되는 평일에 눈치도 없이 생일을 맞이했다. 코로나 시대로 ‘자가진단’과 ‘마스크 줄 끼우기’가 추가된 아침은 느리듯 빠르게 지나간다. 아침이면 열 배로 느릿느릿해지는 아이들의 준비를 돕기 위해 입어야 하는 순서대로 옷을 펼쳐두고 처리해야 할 일의 순서를 앵무새처럼 종알거리며 주변을 서성인다. 느린 아이들과 재촉하는 엄마. 두 개의 다른 속도가 존재하는 아침은 늘 소란스러워서 마음 가득한 축하를 주고받을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다. 모두가 둘러앉아 멀끔한 차림새로 팬케이크를 먹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아침식사는 미드에서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저 평범한 아침이다.


하루가 3/4 정도 지나간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드디어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를 갖게 되었다. 한여름에 먹는 물회를 좋아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돈가스와 피자 메뉴가 있는 식당을 선택했다. 내가 끓인 미역국을 먹는 것보단 훨씬 좋은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잘 먹으니 집으로 돌아가 다시 밥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순조롭게 식사가 이어지던 중에 둘째가 ‘악!’ 소리를 냈다. 이빨이 흔들린다. 세차게. 하필 내 생일에!  금요일 저녁인 데다가 조금 더 식사를 하다간 치과가 문을 닫을 시간이라 아이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근처에 병원이 있다는 사실과 주말 전에 흔들려준 이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예약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30분을 기다렸다. 발치는 5초 만에 끝났지만, 그 사이 식당에 남았던 남편과 첫째는 생일자 없는 생일 식사를 마쳤다.


아이를 낳고 나니 주변의 모든 이들이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선물한다. 그리고 꼭 덧붙인다. ‘애들이랑 맛있게 먹어!’라고. 내 생일인데! 집에 돌아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으려는 순간 ‘엄마 배 아파…’ 일 년에 몇 번 없는 아이의 장염이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내 생일에 터졌다. 약을 먹이고 뜨끈한 보리차를 우리고 죽을 끓인다. 그리곤 냉동실에 차곡차곡 손대지 않은 내 생일을 꽁꽁 얼린다.



출처_ 픽사베이


나를 앞서는 상황들이 도처에 깔려있는 이곳이 바로,
나의 서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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