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보호자의 산소마스크를 먼저 착용한 후에 아동의 산소마스크 착용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수 천 미터 상공 위 의자에 앉아 허리에 느슨하게 매어진 벨트를 조이며 친절한 미소를 장착한 승무원의 이 무시무시한 안내멘트를 듣는다. 과연 실제상황이라면 저 순서가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가득 머금은 채로. 그리고 이 의심의 끝엔 ‘나’를 먼저 보호하는 것이 낯설어진 삶의 태도에 대한 씁쓸하고 억울한 마음이 일렁인다.
한 대안학교에서 기획한 기후위기 전시회에 다녀왔을 때였다. 녹고 있는 빙하의 작은 얼음조각 위에 커다란 북극곰이 위태위태 서 있는, ‘곰의 미래가 우리의 미래’란 표어의 포스터를 보고 나는 엉뚱하게도 나의 미래가 그려졌다. 야생동물이 멸종되는 수많은 이유 중 환경이 변화하는 것에 대한 경고가 개인의 왕국에서 육아 야생으로 터를 옮긴 나에 대한 경고로 느껴졌던 걸까. 위태롭게 한 발로 서있던 곰의 미래가 나의 미래가 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스스로에게 보내는 구조신호에 귀를 기울여 본다.
[‘나’ 멸종위기 신호]
□ 나를 위한 투자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 ‘나’를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불편하다.
□ ‘나’를 중심으로 한 관계보다 ‘아이’를 중심으로 한 관계가 더 많다.
□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 나를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 거의 없다.
멸종위기 종에 대한 위험 신호가 감지되면 세계 각국의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생활 터전인 야생동물보호구역을 설정한다. 이렇게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에서는 ‘포획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적수를 줄이는 것’ 등의 개체 보존을 위한 조치가 취해지고 이를 어길 시에는 엄청난 벌금이 청구된다.
그림출처_미리 캔버스 작업물
초자연적인 야생으로 따지자면 육아만 한 곳이 있을까. 점차 희미해져 가는 ‘나의 존재’에 대한 멸종위기 신호가 감지된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나 보호구역’을 설정했다. 아이들과 공생관계를 유지해야 할 육아 야생에서 ‘하루에 엄마 10번만 부르기’ ‘엄마의 구역에 들어오지 않기’ 등 지켜지지 못할 규칙을 세우진 못하더라도 나의 취향으로 가득 채운 ‘나 보호구역’을.
서행하세요
열 발자국 앞. ‘나 보호구역’이 보인다면 속도를 줄이고 주변의 소음에서 한발 떨어져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빠르게 지나쳐 놓쳐버린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린다. 아이들이 싫어해서 넣지 않았던 볶음밥 속 표고버섯, 가족 중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 꺼내지 않은 냉장고 속 갓김치, 동요가 아닌 인디음악 듣기, 목이 터져라 읽어야 하는 무한반복 동화책이 아닌 베스트셀러에 올라 한 달째 추천도서에 떠있는 소설책 읽기, 아무것도 심지어 생각조차 안 하고 멍 때리기, 카페인 충전 때문이 아닌 커피 맛을 음미하며 커피 마시기. 시도조차 못해본 드라마 몰아보기, 나만의 시간을 알차게 즐길 수 있는 취미 갖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