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백문백답’
이름을 시작으로 ‘이럴 때 나라면?’과 같은 상황 질문까지 개인의 자잘한 취향을 묻는 빼곡한 질문지는 한때 유행처럼 돌았다. 약 20여 개의 질문을 돌파하고 나면 그제야 ‘나는 나를 모른다.’라는 결론에 이를 만큼 백가지 질문에 답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뒤로 갈수록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낯선 질문들이 포진되어있었는데, ‘취미’는 이름, 생년월일, 혈액형 다음에 위치하는 ‘바로 답이 나오는 질문’ 중 하나였고 취미 다음 특기부터가 본격적인 고뇌의 영역이었다.
취미는 특기가 되지 못한 애매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비어있는 특기 바로 옆에 붙어있던 빼곡한 취미들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늘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으나 딱히 작사나 작곡을 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음악 감상’, 종이가 있으면 끄적거리거나 따라 그리기를 좋아했으나 그렇다고 미대를 목표로 하거나 그림으로 뭔가를 이루진 못했으므로 ‘그림 그리기’, 하물며 그냥 좋아했던 ‘볼펜 모으기’ 등이 나의 취미를 채웠다. 전문성에서 조금 벗어난 취미의 영역은 시간 때우기 정도로 여겨질 만큼 이토록 가벼운 것이었다.
‘쉴 때 뭐하세요?’
엄마들의 정보공유 현장인 온라인 맘 카페에는 이런 제목의 글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이 글에는 빨래 개키기, 청소하기 등의 서로의 공통된 일과를 확인하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추천하는 댓글이 여러 개 달린다. 엄마들의 ‘쉴 때’ 란 아이가 잠시 잠든 사이 혹은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간 사이 시간이다. 즉 엄마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시간은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이 날지, 또 얼마나 지속될지 아무런 기약이 없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언제든 일시정지를 누를 수 있는 핸드폰의 푸른 불빛에 의지하는 것은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보다 현명한 선택지로 느껴진다. 하지만 현명한 선택 뒤에는 늘 헛헛함이 남는다. 이 시간이 유일하게 ‘나’를 위한 시간이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를 위한 시간이 안개처럼 사라지지 않기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잘하는 것이 중요하던 시절 나를 불편하게 했던 즐거움이 떠올랐다. 잠깐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잠깐 종이에 끄적거리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 주던 취미의 영역이!
지금에 와서 ‘나에 대한 백문백답’을 채워야 한다면 이름, 생년월일, 혈액형 다음 ‘취미’ 란부터 고뇌의 영역이 시작될 것 같다. 어릴 때보다 나의 취향을 찾아가기 힘든 여정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찾고 싶다 나의 자투리를 채워줄 가벼운 즐거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