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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쏨 Aug 20. 2022

취미를 즐기기 위해 견뎌야 하는 것

취미를 즐기기 위해 견뎌야 하는 것. 


기껏 쓸모 있는 취미라며 추천해놓고 비용을 먼저 제시하며 철벽을 친 것 같아 겸연쩍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재료구입의 철옹성을 넘고 나면 결제가 취미를 위해 했던 가장 쉬운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개인 재료가 준비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선생님의 재료를 빌려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이 말은 항상 최단시간 최고의 효과를 보장하던 선생님의 가르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즉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다는 의미다. 백만 원어치 재료와 함께. 


미리 캔버스 작업물 



  

  대학시절 가장 부러웠던 친구는 다른 지역에서 서울로 대학을 와서 어쩔 수 없이 자취를 해야만 하는 친구들이었다. 간혹 같은 서울에 살아도 집과 학교와의 거리가 멀거나 교통편이 불편한 친구들이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기도 했는데, 서울의 한 복판에 살았던 나는 이런 핑계마저 피해 갔다. 매일 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유를 갈구하는 나와 달리 누군가의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는 그들의 밤은 한 결 여유로웠다. 모든 상황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멋지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래 이게 바로 어른들의 삶이지!  

 

  그로부터 6년 후 결혼을 하게 되면서 내게도 홀로서기의 기회가 찾아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완벽한 홀로서기는 아니지만 동등한 위치에 선 사람과의 한 집살이는 나의 공간, 나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일이 많아져 확실히 꿈꿔왔던 어른의 삶에 가까웠다. 독립만세를 외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라는 단어가 ‘스스로 자’와 ‘밥 지을 취’라는 한자어의 조합임을 알아챘다. 애초에 스스로 불을 때고 밥을 지으며 생활하는 것이 자취인 것을 알았다면 6년 전에 친구들을 그렇게 부러워하지 않았을지도. 그러고 보니 마치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려는 듯 주말만 되면 자취방을 빠져나와 본가로 향하던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혼 후 아내의 역할로 규정된 밥상 차리기를 외면할 수 없었으므로 하루에 세 번이나 시간과 정성을 들였지만 매번 실패했다. 엄마에게 달려가 고등어조림 요리법을 배운 후 똑같은 재료를 가져와 똑같은 과정을 밟았지만 내가 만든 고등어조림은 비릿해서 목을 넘기기에 앞서 코를 통과하지 못했다. 실패를 만회하겠다고 더 많은 재료들이 첨가됐으나 결국 먹지 못하고 음식물쓰레기봉투만 가득 채워졌다. 이것이 생사의 영역이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사 먹는 밥에도 한계가 있어 기어이 밥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곤 했다. 그렇게 5년쯤 지났을까. 우리 집에서 가족모임이 있던 어느 날 문득 식탁 위를 가득 채운 한상차림을 보고 어느새 밥 짓기에 능수능란해진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음식을 만들며 요리에 대한 부담과 걱정보다 내 음식을 맛있게 먹어 줄 가족들 생각에 즐겁기까지 했다. 시간이 흘러 저절로 노하우가 쌓였던 걸까. 베테랑 엄마들이 모여 있는 맘 카페에도 끊임없이 저녁 메뉴 고민에 대한 글이 올라오는 것을 돌이켜보면 쌓여온 시간이 실패의 좌절을 즐거운 설렘으로 변화시킨 유일한 답이 될 수 없었다. 




  선생님과 함께 하는 화장품 만들기 수업에서는 한 시간 동안 스킨, 로션, 립밤 3개의 결과물이 나왔다. 과정이 모두 다른 결과물이 뚝딱뚝딱 거침없이 만들어져서 ‘이거 좀 쉬운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집으로 돌아와 새로운 재료와 도구를 바라보는 것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이미 내게 취미가 생겼다는 기분을 만끽하기에 충분히 든든했다. 자신만만했던 홀로서기는 떨어지는 스포이트 끝 오일 한 방울에 맥을 못 추고 무너졌다. 분명 배운 것과 똑같은 과정을 거쳤는데 오묘하게 사용감이 달랐다. 끈적거려야 할 젤 스킨이 물처럼 흘렀고 오일과 물이 섞이지 않아 로션에 기름이 둥둥 떴다. 엄마의 감칠맛 나는 고등어조림과 내가 만든 비릿한 고등어조림이 떠올랐다. 실패였다. 공자 가라사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에 따르면 본래 즐겨야 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것은 이미 경지에 이른 사람을 말하는 것 일까. 

 

  실패를 메우는 것이 결국 또 새로운 재료구입이라는 사실에 나는 점점 작아졌다. 거듭된 실패에 좌절했지만 밤새 몸을 긁어 자신의 몸에 생채기를 내는 작은 아이를 위해 나는 아이들이 잠든 매일 밤 천연화장품을 만들었다. 마치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밥 짓기처럼 즐겁지 않았다. 


취미가 뭐 이래!? 하나도 즐겁지가 않잖아. 


  취미 거부 현상이 돋아났다. 해야만 하는 상황을 구실로 내세우며 바늘처럼 돋친 취미 거부반응을 잠재우길 6년. 이제야 나는 프로필 취미란의 공백에 '천연화장품 만들기'를 써넣을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공자가 말한 즐기는 사람이란 모든 과정에 통달하여 즐기게 된 사람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사람’은 아닐까. 즐기는 취미를 갖기 위해 디뎌야 하는 징검다리에는 즐거움보다 좌절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의 징검다리를 밟는다면 분명 즐거움을 밟게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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