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하고 우아한 공기를 쓰는 법

밥을 짓듯, 말을 짓습니다.

by Mina



이곳 사람들은 말이 많다.

아... 죄송하지만 돌려 말할 길이 없다.

나 역시 나불대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 말 많은 민족에 비하면 나는 묵언 수행자이다.


스페인의 유명한 음식 타파스는 'tapar', '덮다'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맥주나 와인을 한 잔 놓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되자, 음료에 벌레나 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주인이 잔 위를 작은 접시로 덮어주었다고 한다.

그런 후에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끼니때를 지나서까지 계속되니 주인이 빵과 햄 조각이나 치즈, 올리브 등을 그 접시에 올려 준 것에서 유래된 음식이다.

즉, 타파스는 말하느라 끼니를 잊곤 하는 이곳 사람들의 말사랑을 대변한다.


그리하여, 이곳에 살면서 나는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동양문화권에서 자란 나로서는 말 많은 사람들에 대한 가치의 재 정립이 필요했다.

어찌 보면 다정하고 인간적이고, 어찌 보면 남용과 비효율이다.


에머슨은 '언젠가 사색의 시간이 오면 그것은 잘 익은 과일처럼 저절로 삶에서 떨어져 나가 정신의 사고가 된다'(주 1)고 했다.

말이 입에 주렁주렁 붙어 있다는 것은.....

아직 잘 익어 떨어져 나갈 사고가 없다는 것일까?

잘 익어보지 못한 생각이 입을 타고 흐르는 것일까, 입을 타고 흐르느라 생각이 익을 시간이 없는 것일까.




혼자서 장사 준비를 할 때면 음악을 들으면서 일하지만, 손님들이 들어서면 음악 볼륨을 낮춘다.

손님들의 대화에 음악이 방해되지 않도록 함이다.

하지만, 손남들은 내 음악을 본인들의 말소리로 방해함에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자리에 앉기도 전부터 이야기를 하며 들어오는 손님들도 있다.

자리에 앉아서도 메뉴판을 들여다볼 생각도 않고 봇물 터진 말을 멈추지 못하기도 한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조용조용 대화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두가 들었음 하는 바람인지, 스스로의 이야기에 취한 것인지 쩌렁쩌렁 연설하는 듯한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면 어떤 중요한 이야기를 저리 힘주어, 길게 하는가? 들어보기도 한다.

물론 내가 카탈란 어를 잘 못 알아듣는다 해도, 그들이 대화에 끊임없이 누군가가 등장하는 것 즈음은 알 수 있다. 길고 긴 그들의 대화에 그들은 없고, 남들이 넘실댄다.


"그는 정묘하고 우아한 공기를 현명하고 음조 고운 말로 다져서, 그것에 날개를 붙여 사람을 설복하고 명령하는 천사로 만든다(주 2)"


말을 할 때 필요한 공기를 가져다 쓸 때마다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지금 말은 과소비의 운명에 놓여 있다.




밥이 갓 지어졌다.

주걱으로 뒤적여 밥알이 딱 붙어 떡지지 않도록, 성글게 띄어 놓고도 찰기로 붙어있게 해야 한다.

손님들 자리에서는 마음껏 가져다 쓴 공기로 갓 지어진 말들이 가게를 가득 채운다.

작정한 듯한 공감이 공감만 지어낸다.

긍정을 위한 긍정이, 부정을 위한 부정이 마구 지어져서 공중에 흩어진다.


잘 손질하여 넣어 둔 싱싱한 연어살토막을 꺼내서 날이 선 칼로 결을 따라 일정한 두께로 썰어낸다.

고슬고슬 지은 밥에 단촛물로 적당히 간을 한 밥을 손으로 뭉쳐 양을 가늠한다.

잘 뭉친 한입정도의 밥 위에 연어토막을 올려 적당한 악력으로 옆면을 붙이고 재빠르게 뒤집어서 집게와 중지로 밥의 흰 뱃살 부분을 눌러 밥과 연어가 손님들 입 안에 들어갈 때까지 잘 붙어있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연어의 지방을 토치로 살짝 태워 손님 상으로 나간다.


연어초밥은 아주 귀하게 손님들 입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만큼은 정적이 흐르고 손님들의 혀는 맛을 음미하는 역할에 충실한다.


공들여 만든 연어초밥의 귀한 맛을 음미하는 손님들처럼,

나도 귀하게 다져진 말을 음미하는 시간이 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에서 진심을 가려듣고,

엉뚱한 질문에도 본질을 읽어내고,

실타래처럼 엉킨 설명에도 사실을 뽑아내어,

깊은 사고를 표현할 단어를 신중하게 골라,

전하고자 하는 정신과 말이 우리의 목구멍에 삼켜질 때까지 잘 붙어있도록

음조 고운 소리로 다진 말이다.




말하기 위한 공기를 살 수 있는 슈퍼에 가서 우아한 공기를 산다.

(살 수 있는 공기에는 담백한 맛, 순한 맛, 매콤한 맛 등 의 옵션이 있다.)

1+1 따위의 행사는 없다.

공기를 사 와서 오늘 꼭 해야 할 말과, 꼭 말해야 할 상대를 추려본다.

그 보다 먼저 스스로의 마음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공기로 말을 짓기 전에 진심을 가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기만에 빠져 앞말과 뒷말의 모순을 만드는 순간,

오늘의 쇼핑은 공중에 뿌려진 헛 돈이 된다.


잘 지은 밥과 싱싱한 연어에 정성의 손길을 얹어 음식을 손님 상에 내듯이,

손님들은 우아한 공기를 가져와 가려낸 진심과 사색을 현명한 음조로 다진 말을 상대에게 건네는 모습을 상상한다.


가게는 이내 침묵이 흐를 것이다.

그 침묵의 공기가 무겁지만은 않다.

부드러운 눈빛으로, 엷은 미소로, 솔직한 손짓으로도 더 많은 말을 할 것이다.

사려 깊게 다진 말이 상대방에게 전해질 때,

그 진심의 파동이 옆 테이블의 누군가에게도 전해져, 그는 조용히 몸을 떨지도 모른다.

말없이 음식을 먹은 그 손님은 돌아가는 길 슈퍼에서 '따뜻한 공기'를 사서 그날의 저녁메뉴를 궁리할 것이다. 가족들에게 지어 주고 싶은 따뜻한 말의 진심을 들여다보기 위해 점점 본인의 내면으로 침잠하면서....


---------------------------------------------


(주 1, 주 2) 자기신뢰철학, Ralph Waldo Emerson, 동사문화사, 정광섭 옮김


월요일 연재
이전 09화분노를 견딜 수 있는 누가 부정을 견딜 수 없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