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견딜 수 있는 누가 부정을 견딜 수 없단 말인가

팝업행사를 하며 다양한 맛을 보았습니다.

by Mina

부당함.

부당함은 언제나 나를 분노케 했다.


무지.

또 다른 분노의 촉발제는 교만의 탈을 쓴 무지였다.


나의 분노는 '정당함의 수호사신', '교만함의 징벌자'라는 옷을 입고 심심찮게 마실을 나다녔다.

내 기준의 정당함과 합당함과 타당함으로 치장한 분노는 일단 집 밖에 나오면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싸돌아다니느라, 정당함의 화장이 다 지워진

민낯을 하고도 낯부끄러운지 모르고 귀가할 생각을 안 했다.


오랫동안 잊었던 '분노'라는 감정이 울컥 올라온 다음날,

세네카의 인생철학 이야기에서 나와 해당사항이 없다고 넘어 뛴 '분노에 대하여'편을 펼쳤다.


그대는 말한다. "나에게는 무리다. 견딜 수가 없다. 부정을 참는 것은 너무나 괴롭다." 그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분노를 견딜 수 있는 누가 부정을 견딜 수 없단 말인가? (주 1)




팝업행사를 그 셰프에게 먼저 제안한 것은 나였다.

그의 유명세와 신기한 음식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인생 최초 DM을 날렸는데.....

준비과정부터 물음표가 튀어 올랐다.

머리를 맞대고 한국음식을 잘 소개할 수 있는

메뉴를 짤 것이라는 내 예상은 단박에 빗나갔다.

나의 메뉴간섭은 애초에 봉쇄되었을 뿐 아니라

행사 전날 시식에 대한 요청도 단칼에 거절됐다.

나 같은 조무래기가 자신의 음식에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니라는 뜻으로 들렸다.


이 정도는 조용한 전주곡이었다.

베토벤 운명의 본악장은 행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셀리악(주 2) 알레르기 손님에게 전채요리와 후식 모두 밀가루 음식이 나갔다.

본인이 지시한 일인데, 다른 사람에게 짜증 섞인 화풀이를 하고,

영문도 모르고 밀가루를 먹고 있는 손님을 못 본 척했다.

이 부당함을 목격한 내 분노는 널을 뛰었다.

용케 분노에게 먼저 빗장을 풀지 않고 손님에게 먼저 쫓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했다.

셰프의 서슴없는 불쾌감 섞인 지적의 말과 손짓 발짓에 나의 분노지수는 서서히 올라갔다.


교향곡 운명의 클라이맥스는 변기와 함께 터졌다.

첫 번째 손님들 모두에게 계산서 청구를 하고,

새 판을 깔아 두 번째 타임의 손님들을 와르르 받아야 하는 바로 그때,

손이 열개여도 모자라는 그 순간, 갑자기 홀 쪽으로 물이 흘러 한강이 되었다.

일제히 온 손님들이 일제히 나갈 시간이 되자, 일제히 화장실을 사용하고

핸드타월까지 일제히 변기에 집어넣었는지

꽉 막힌 변기의 물이 차 오르다 바닥과 변기의 이음새 틈을 타고 밖으로 질질 흘러나온 것이다.

고무펌핑을 찾아서 변기를 뚫는 나의 사투는 분노와의 사투와 함께.

운명교향곡의 클라이맥스만큼이나 비장하고 빨라졌다.


행사가 시작된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나는 한순간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내가 아는 음식을 내 식대로, 내 양껏 손님들께 대접하는 날로 돌아가고 싶다'였다.

내 가게에서 내가 모르는 음식이 그가 정한 양대로 그의 방식대로 서빙되었고,

손님의 알레르기 요청사항이 전달되었을 때도

내 잘못으로 돌아와 비난과 함께 요청이 묵살되었다.

오랜만에 서서히 목 뒷덜미에 날이 서고, 나의 분노는 빗장을 풀고 몸풀기를 시작했다...


행사가 끝나고, 고생했다는 인사를 건네기 위해서도 마음을 여러 번 다잡아 먹어야 했다.

간신히 수고 많았다는 덕담과 웃음으로 배웅을 하고 겨우 안도했는데,

안도는 일렀다. 아직 교향곡의 마지막, 4악장이 남아있었다.




이익금을 계산하고 합의된 지분을 송금하고자 내역을 보내자,

질문이 재깍 돌아왔는데, 기가 찼다.

심호흡을 하고 답변을 한다.

누가 봐도 언뜻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궤변의 질문이 다시 쏟아진다.

다시 답변을 한다.

감정만 있고 논리는 없는 질문이 4악장답게 알레그로 (Allegro, 주 3)

무례하고 속도감 있게 쏟아진다.

누르고 눌렀던 분노는 이미 메이크업을 마치고, 헤어 끝내고

집 나가기만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는데,

상대가 교만함의 탈을 쓰고 '무지'를 맘껏 드러내자,

분노는 물 만난 고기처럼 튀어나와 펄떡거렸다.


옆에 앉아있던 딸이 눈치챌 만큼 분노의 타자가 시작되었다.

조목조목 비논리를 쳐 받고 따져주었다.


무지를 일깨워 주기 위한 비난 어린 말도 서슴지 않았다.

내 논리와 계산의 빈틈없음을 과거의 직업을 소환해 으스대었다.

'백번을 물어봐라. 백번을 깨 주리라.' 결의에 찼다.

퐁당퐁당 그간의 너의 부당함과 너의 실수를 밝히고

나의 너그러움과 나의 배려는 친절히 셈하여 더했다.


틈틈이 철학의 지혜를 배우고, 현자의 덕을 따르기로 한 자임을

스스로 상기시켰지만, 고삐풀린 분노 앞에 고작 보탠 일은, 허울뿐인 예의였다.

그것은 서슬 퍼런 칼을 포장한 습자지에 지나지 않았았으므로 본분대로 상대방을 찔렀으리라.




오랜만에 마실나간 분노가 실컷 싸돌아다니다 되돌아오자, 나는 몹시 피곤해졌다.


'책은 읽어 뭐하냐, 하는 짓은 똑같은데!' 자책이 밀려왔다.

몸도 피곤한데 새벽까지 변기를 뚫다가 얻은 허리통증으로 자리에 누워야 했다.

누워서 후회와 자책을 데리고 오면, 매번 변명이 손잡고 쫓아나와

나는 쏙 빼고 남만 신나게 재판하던 중,


부정을 견딜 수 없어 분노를 택했다는 변명에 세게 싸다구를 맞았다.


"분노를 견딜 수 있는 누가 부정을 견딜 수 없단 말인가?" (주 1)


더없이 사려 깊은 사람도 잘못을 하는 이상, 누구에게나 잘못에 대한 그 나름의 변명이 있지 않겠는가? 무지는 모든 사례에서 같은 효력을 지닌 변명이 된다. 그대는 말한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허물이 없다는 것인가?" 그대가 벌하지 않아도 그 허물이 사라지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저지른 부정에 대한 가장 큰 벌은 저지른 것 그 자체이고, 또 후회의 가책을 느끼는 것만큼 괴로운 벌은 없기 때문이다. (주 1)


누가 누구를 무지하다고 판단하고, 벌을 주려했을까?

내가 참지 못한 것은 분노였지, 부당함(부정)이 아니었다.


무지는 잘못에 대한 막강한 변명이다.

그 변명이 허물을 덮는다는 것은 아니나,

우리 모두 무지하고, 그 변명은 이세상 천하 모두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당함을 참을 수 없어 데려 온 나의 분노에서 어떤 정당성도 보지 못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스스로의 못남을 자책하고 있는데,

세네카가 축 늘어진 내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고 말한다.


"나를 해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부정이 아니라 분노이다.

맹수가 개 짖는 소리를 유유히 듣는 것처럼 모든 타격을 느끼지 않는 것이 참된 위대함의 증거이다.(주 1)"


누구든 위대함을 시작하는 첫걸음이 있었겠지.

맹수도 새끼 때는 동네 똥개만큼 짖었을지도 모른다.

조용히 위로를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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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세네카 인생철학이야기, 루키우스 세네카, 동서문화사

(주 2) 밀에 포함된 글루텐에 대한 과민성 질환

(주 3) 이탈리아어로 '빠르게'라는 뜻으로 '운명'으로 알려진 베토벤 5번 교향곡의 마지막 4악장은 3악장과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며 '알레그로'로 빠르게 전개되며 클라이맥스에 치닫는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