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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a Feb 04. 2022

#3 냉면

바르셀로나에서 보내는 편지


글쓰기 동무 은아 씨가 던진 이번 달의 제목은''냉면''이었다.

보라, 이 제목을 듣고 내가 얼마나 뜨악했었는지를.

첫째, 이역만리 먼 나라, 그것도 도심에서 살짝 벗어난 시골마을에 사는 나에게 냉면이란다.  

이 음식을 언제 먹었는지 기억조차 없다.

둘째, 태양과 정열의 나라 스페인이라지만, 때는 바야흐로 한겨울. 아침저녁 으스스한 기운에 이번 주 오마카세 요리로, 추운 기운을 물리치고자, 한국에서도 끓여보지 않은 손이 많이 가는 육개장을 끓이고 있는 마당에, 말만 들어도 으스스한 냉면이란다. 생각하기도 싫다.

셋째, 멀건 국물에 국수 덩이를 넣어주는 이 음식을 진정한 음식으로 생각해 보지 않은 나에게 냉면으로 글을 쓰란다. 정말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할 말이 없구나.

바쁘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뜨악한 심정으로 글쓰기를 미루고 미루며 짬짬이 머릿속에 냉면에 대한 소재를 모아 보자, 몇 가지 냉면에 대한 소회가 떠올랐다.


나의 첫사랑인 전 남편이 좋아하던 음식 중 하나가 냉면이었다. 

나와 데이트를 할 때  유명하다는 냉면집에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난다. 

두툼하게 유약을 바른 갈색 엽차 컵 두 개와 살짝 찌그러진 노란 주전자가 먼저 나왔다. 

보리차인 줄 알고 냉콤 따라 마셨는데, 예상치 않은 간간하고 기름 동동 뜬 맛과 뜨거움에 화들짝 놀랐다. 

그 사람이 웃으며 이건 보리차가 아니고 육수라고 알려주었다. 뜨거우니까 잘 식도록 컵에  반만 차도록 따라주며 호호 불어주었다. 그날은 냉면에 대한 기억보다는 보리차가 아니고 육수를 내어주는 냉면집 시스템에 놀란 기억과, 두터운 갈색 컵에 육수를 따라 호호 불어주던 그의 동그란 입술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와 결혼을 하고 십칠 년을 같이 살면서 우리 가족이 자주 갔던 외식 코스의 하나는 오장동 함흥냉면이었다. 우리는 항상 회냉면을 시켰는데, 홍어인지, 가오리 인지를 꼬들꼬들 말려 빨간 양념에 무친 회를 쫄깃한 냉면 면발에 얹어 나오는 이 냉면집에서 나는 언제나 매콤한 회냉면을 먹으며 이제는 노련하게 노란 주전자에 담긴 육수를 홀짝홀짝 마시는 것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냉면을 사랑하며, 감사하며, 경배하며 먹었던 기억이 있으니, 그것은 프랑스 파리에서였다. 엄마를 모셔와서 유럽에서 한 달 넘게 집 바꾸기 여행을 했는데, 무슨 배짱이었는지, 나와 엄마 그 누구도 한국음식을 챙기지 않고 한 달이 넘는 여정에 나섰다.

처음에 열흘 정도 묵었던 집은 엑상프로방스 (aix-en-provence)에 있던 아름다운 전원주택이었다.

우리는 그 집에 처음 도착해서 햇살이 거실 끝까지 들이치는 아름답고 너른 집, 고즈넉한 마을 풍경, 그리고,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테라스에서의 아침,  드넓은 풀장, 넓은 정원의 과실수 등등에 반했지만..... 아침 크로와상, 점심 바게트, 저녁 다시 빵을 먹는 생활을 며칠 되풀이한 후, 아름다운 테라스에서 크루아상을 먹느니, 반지하방에서 된장찌개를 먹고 싶어... 하는 심정이 되어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그 마을 어디에서도 아시아 음식 비슷한 것을 구할 수 없었고, 레스토랑에서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먹은 달팽이 요리는 아주 버터 구덩이에 삶았는지, 느글거리는 속에 기름을 확 부어주었다. 

그 후로, 그곳에서의 기억은 신기하게도 거의 없고, 오로지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는데, 그것은 '파리에 가면, 파리에 가면,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야.'였다.


드디어 기차를 타고 파리에 도착했을 때, 엄마와 나와 서진이는 집에 있는 모든 쇼핑백과 배낭을 들고 제일 먼저 파리에서 제일 큰 아시아 식료품점을 찾아갔다. 노트르담 성당도, 에펠타워도, 루브르 박물관도 아니고 우리가 간곡히 가고자 하는 그곳은 아시아 식료품점. 우리의 발길을 그 어떤 날 보다 설레고도 긴장되었다. 

다행히 그곳은 다양한 한국 식료품이 가득했다. 우리의 카트는 넘치고 흘렀다. 된장, 고추장, 깻잎, 김치,  차돌박이 구이, 두부, 라면, 풋고추, 상추, 기름진 쌀, 김, 스팸.....모두 이고 지고 갈 수 있을까? 살짝 고민스러웠는데, 서진이가 냉큼 집어 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꽁꽁 얼린 동치미 냉면 세트였다. 

''서진아, 우리 먹을 것 잔뜩 샀고, 이건 국물이라 무겁기도 한데, 다음에 와서 사자" 

서진이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엄마가 그걸 보시고는 ''야! 그건 내가 질질 끌고라고 갈 테니, 서진이 먹고 싶다니 사자!" 하셔서, 그 냉면까지 쟁여서 마트를 나오자, 그제야, "어라? 이 마트 코앞에 오페라 하우스가 있었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더니, 정말 엄마, 나는 오페라 하우스 아까 올 때 봤는데, 이게 그건지 몰랐어. 맘이 너무 급해서"... 깔깔깔....

그날 저녁은 된장찌개에 차돌박이 상추쌈과 김치 깻잎 장아찌로 성대하게 먹으며, 우리 정말 파리에 오길 잘했어! 하면서 깔깔 웃으며 잤던 기억이 난다. 


그 해 유럽은 이상기온으로 우리가 여행했던 8월에는 한낮 기온이 40도 가까이 육박하곤 했는데, 마침 우리는 40도를 찍은 그날, 자전거나라 투어를 했다. 

아침 7시 반에 오르세 미술관 앞의 카페에서 만나, 19세기 부르주아지의 삶을 그대로 따라가 보는 투어였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정치와 예술에 대해 환담을 하고,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형식적 삶을 거부하고 진정한 자유를 꿈꾸던 예술가를 만나고 해질 즈음  물랭루주 앞에서 애인을 만나고, 센강을 거닐고 에펠탑 앞에서 석양을 보는.... 한마디로 빡센 일정.

프랑스 예술사 박사과정을 하고 있던 그 가이드가 풀어내는 이야기와 역사적, 미술사적 이야기도 흥미진진했지만,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고 이야기해주려 했던 그의 열정 또한 어마 무시하여, 아침 7시 반에 시작한 투어는 잠시도 쉬지 않고, 저녁 8시에 끝났다. 

팔십이 다 되어 가는 어머니와 어린 딸을 데리고 다시 집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뭐라도 먹고 쉬지 않고서는 힘들었기에, 집에 가는 길에 있는 한국음식점을 열심히 찾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데이터가 자꾸 끊겼다. 구글맵 없이는 도무지 '나는 누구? 여기는 지구의 어디?' 하는 스타일의 길치였던 나는 12시간 투어 강행군 끝에 지친 어린 딸과 80 노모를 무탈하게 집으로 모시고 가는 것이 급선무란 생각이 들어서 우리는 일단 집으로 가기로 했다.

파리 조약 때문인 것이니, 파리 시내가 전력난인 것이니, 왜, 왜, 파리의 모든 공공기관, 버스, 지하철, 심지어 레스토랑, 박물관조차 에어컨을 안트는 것일까, 아니 없는 것일까.... 그해 파리는 그 어디에도 잠시라도 시원하게 땀을 식힐 곳이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린 배와 바깥 온도 40도 내 체온 37.5도를 보탠 77.5도 즈음의 열기를 느끼며 집에 돌아왔다. 

그때, 우리에게 한 줄기의 빛과 희망과, 젖과 꿀이 있었으니, 그것은 우리가 파리에 도착한 첫날 사서 쟁여둔 얼음 동동 동치미 냉면!!!

샤워하기 전에 꺼내 둔 꽁꽁 얼은 동치미 냉면 국물은 40도가 넘는 날씨에 샤워가 끝나고 나오니 딱 먹기 좋은 살얼음이 되어있었다. 바로 이거지!!!!!

그 시원하고, 사각거리는 냉면 국물을 벌컥 들이켜고 국수 한 젓가락을 후루룩 흡입하고 나서 나는 거의 냉면 사발에 절을 하고 싶었다. 

파리에서 일주일 넘게 머물며 본 모든 미술관, 유적지, 성당, 그런 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고, 우리 셋이 파리 여행을 회상할 때마다 외치는 말, 동치미 냉면!!!

이것이 나에게 냉면이 주는 소회이다.


오늘 가게에서 두 번째 육개장을 끓였다. 매콤하고, 파 마늘이 많이 들어간 이런 국물은 한국사람이나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반으로 시작한 지난주의 오마카세 요리 육개장은 사흘 만에 동이 났다. 

"이번 주 오마카세 요리는요,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겨울에 먹으면 언제나 몸과 마음을 따끈하게 덮여주는 국물요리예요. 밥과 함께 드리니, 밥을 말아 드셔 보세요!" 하고 설명을 하면, 열에 아홉 명은 "저, 그거 먹을래요." 했다.

또 육개장 국물을 마시는 열에 아홉은 매운 국물에 사래가 들어 콕콕 기침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난 얼른 둥굴레 차를 끓여 한국차인데 기침을 진정시켜줄 테니 마셔보라고 주었다.

모두 한국의 맛에 두 번 감동했다. 어느 누구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았다.

어설프게 초밥을 쥐고 만드느니,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을 팍팍 넣은 한국음식을 좀 더 자신 있게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자신감이 밀려왔다. 

은아가 냉면으로 글감을 던져 준 이후, 머릿속에 맴돌던, 나와 별로 안 친한 냉면이 자꾸 치근치근 치대 왔다. 자기를 곧 오마카세로 올려달라나, 머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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