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보내는 편지
"기상청은 오늘(15일 화요일) 서울 전 지역이 흐린 후 낮부터 차차 맑아지겠으며, 아침(09시)까지 곳에 따라 산발적으로 눈이 날리겠고, 빙판길에 유의해야 하며, 당분간 기온이 낮아 춥겠다고 예보했다.
서울지역 오늘 오전 예상 최저기온은 -8 ~ -5도이며, 오후 예상 최고기온은 -2 ~ 0도이다.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 단계는 보통을 나타내고 있다.
대기 중 습도는 60~70%로, 낮은 습도를 유지하며, 다소 건조할 것으로 보인다."
한 달에 두 번 쓰는 우리의 에세이, 월초에는 제가 주제를 정하고 월중에는 언니가 정하기로 했죠. 이번에는 언니 차례였지요. 주제를 '날씨'로 정한다는 말에 습관처럼 날씨 앱을 열어 보니 이번 주 내내 서울은 혹독한 추위를 자랑하더군요. 얼마 전 입춘이 무색하게 영하 10도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예보였어요. 스크롤 몇 번 올려 바르셀로나 날씨를 보니 웬걸 한밤중임에도 영상 8도, 이 날의 최고 기온은 16도라 하더군요. 청명함, 대기질 보통, 가시거리 11km. 숫자로도 쉽게 상상할 수 있었어요. 눈보라와 얼음 없는 세상을요.
무슨 과거 시험을 보는 것도 논술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기분은 꼭 그런 것만 같죠. 돌돌 말린 교지를 펼쳐 받은 주제를 몇 날 며칠 동안 마음속에 품고 다니죠.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마치고 출근, 그러니까 육아 출근을 준비하면서도 생각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오전 8시 무렵이 되자 작은 방에선 '엄마, 엄마'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들어가 잠에서 깬 아기를 꼭 안고 토닥이며 창밖을 내다보니 흐릿흐릿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어요. 그러더니 라디오를 켜고 빵과 우유로 아침을 줄 무렵엔 눈이 내리기 시작했지요. '저기 봐, 눈이 내리네. 눈.' 하고 말하니 아기는 저처럼 검지 손가락을 세워 들더니 자기 눈을 가리켰어요. 이것도 눈이다 이거죠. 이제 더 이상 아기라고 부를 수 없겠다 싶었어요. 적어도 꼬마 정도는 되겠다 생각했지요.
꼬마는 이번 겨울, (남이 만들어 놓은) 눈사람을 만져보았고 커다란 눈사람을 형아 눈사람, 작은 눈사람을 아기 눈사람이라고 구분해 생각했어요. 꼬마가 생각하는 최고 가치는 모두 '형아'와 관련된 것이에요. '조금 더 커서 형아 되면 할 수 있어.' 아직 허락하지 못하는 것들 앞에서 제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배운 결과지요. 예를 들자면, 주스는 형아가 마시는 거고요. 노란색 버스는 형아들이 타고 가는 버스지요. 가위는 더 더 형아가 되어야 만져볼 수 있고요. 빨간색은 매운맛이라 형아가 되어야 먹을 수 있어요. 그러나 꼬마는 제가 정해 놓은 단계들을 단숨에 뛰어넘기도 해요. 굳이 먹어보겠다고 앙탈을 부려 그래, 겪어보고 포기하렴. 하고 빨간 배추김치 한 조각을 주니 좋다고 씹어먹더군요. 맵다고 하지도 물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어요. 우리가 감탄하는 사이 다 삼키곤 더 달라고 손을 뻗어 가리켰어요. 벌겋게 묻은 고춧가루라도 좀 떼어주자 싶어 물에 씻어왔더니 대번에 처음에 먹은 것과 다른 것을 알아차렸어요. 자기도 엄마 아빠가 먹는 것처럼 빨간 걸로 달래요. 이제 김치 먹는 형아라는 거죠. 20개월 짜리도 김치를 먹다니, 너무나 한국 아기, 아니 한국 꼬마답다 싶었어요.
이런 것은 타고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깨너머로 배운 결과일까요? 저는 아직 알쏭달쏭해요. 굵게 썰어놓은 생 무를 우적우적 씹고, 노란 배춧잎을 왕성하게 물어뜯는 꼬마를 보며 저 입맛은 누굴 닮은 것일까? 생각하게 되어요. 저는 오이는 좋아해도 당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샐러드용이 아닌 채소들은 익혀먹는 게 더 좋고요. 그러나 꼬마는 대부분의 채소를 날 것으로 잘 먹어요. 어떤 날엔 데치려고 씻어놓은 콩나물도 가져다가 씹어먹고 있어요. 그나마 그건 머리만 먹고 꼬리는 버리고 도망가더군요. '콩나물 머리만 먹었네?' 하고 말하면 뒤돌아 제 머리를 가리킵니다. 이것도 머리라는 거죠. 나 원 참.
이럴 때 말하는 '나 원 참'의 뉘앙스 아마 잘 아실 거예요. 어이가 없어 픽하고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순간들. 거기엔 그 황당함을 상쇄하는 애정이 깔려있죠. 이 쪼그만 게 벌써? 라는 감탄과 함께요. 이 쪼그만 꼬마가 언제 커서 크고 작은 것을 구분하고, 맵고 싱거운 맛을 구별하며,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싫다는 취향이 생겨났을까요. 예를 들어 어떤 날엔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싶고, 또 다른 날엔 파란색 운동화를 신고 싶다는 결심이 어디에서 솟아났을까요. 그리고 마치 마법처럼 검은색 몸통에 파란 밑창을 가진 운동화는 꼭 눈이 오는 날에 신어야 한다는 것을요. 그래서 우리는 그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섭니다. 세찬 바람 속 눈은 휘휘 날리고 그래서 서로 손을 꼭 잡아야 합니다. 언제나 꼬마의 손은 저보다 조금 더 따뜻하지요. 다행히 마스크를 단단히 끼고 털모자도 푹 눌러썼습니다.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운동화의 파란 밑창에선 파란 불빛이 번쩍입니다. 한밤 중 깊은 숲 속에서라도 절대 잃어버릴 수 없죠. 그렇게 중무장한 우리는 집 앞 작은 슈퍼로 뛰어듭니다. 겉도 속도 노란 알배추 두 통이 보입니다. 그걸 집어 들어 계산한 다음 입구에 서 정중한 인사를 한 후 다시 밖으로 나섭니다. 꼬마의 인사는 예의나 범절,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그런 격식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90도 혹은 그보다 더 큰 각도로 상체를 구부려 예를 갖추는데 그래서 앞으로 기우뚱 넘어지려 할 때도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고자 점점 엉덩이를 뒤로 빼는 바람에 이제는 인사라기보다 쇼트트랙 주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정중한 인사를 하는 덕에 '어이쿠, 인사도 잘하네.' 같은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게 꼬마의 마음에 우쭐함을 더해주는 것 같고요.
그냥 들어오기에 아쉬운 것은 저뿐만 아니겠죠. 꼬마는 놀이터로 종종걸음을 칩니다. 응달엔 어쩌면 지난날 누군가 가열차게 만들어 놓은 눈오리들이 모여있을지 몰라요. 아, 눈오리가 뭔지 아시나요? 아마 작년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게 엄청 유행한 장난감인데요, 플라스틱으로 된 집게의 끝엔 오리 모양의 거푸집이 달려있지요. 눈을 그러모아 집게로 꾹 누른 뒤 조심스레 열어보면 눈으로 만든 오리가 만들어져요. 새하얗고 통통한 오리, 귀엽고 예쁘지요.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닌 모양이에요. 눈오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귀여움에 반해 자꾸만 눈을 모아 집게로 누르고 다시 눈을 모아 집게로 누르고, 그걸 반복해 오리들을 만들어내요. 만들어 낸다기보다 찍어낸다는 표현이 어울릴까요? 눈 내린 다음 날이면 거리 곳곳에서 쉽게 오리떼들을 만나요. 아니, 오리떼라기보다 오리 병마용에 가까운 장관들이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그 옛날의 구호, 혹시 바르셀로나의 도시락 가게에서도 유효한가요? 그러니까 젓가락질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 뜨겁고 매운 것들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다는 것이지요? 우리집 꼬마처럼 빨간 배추김치에도 용감하게 도전한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저는 언니를 위해 눈오리 집게를 준비해 두겠어요. 언젠가 겨울에도 포근한 그 도시에 이례적인 눈이 내린 다음 날, 열심히 눈오리들을 만들어 봐요. 가게 앞에 줄줄이 오리들을 모아두면 아마 그냥 지나치긴 어려울 거예요. 이게 뭔가요? 물으며 문을 열고 들어오겠죠. 그럼 이제 시작인거예요. 뜨겁고 맵고 빨간 세계, 얼큰하고 진한 여운, 괜히 군침 도는 것은 저 뿐만이 아니겠죠. 다들 같은 마음일 거예요. 그 겨울을 기다리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다시 만날 날까지 건강하길 빌어요. 아디오스, 부에나스 노체스.
'바르셀로나와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는 바르셀로나의 박민아 님과 함께 2022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도시에서 8시간의 시차를 공유하며 한 달에 두 번 같은 주제로 에세이를 씁니다. 이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 알지 못하나 우리는 정말 즐거운 기대를 안고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꾸준히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써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