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곳 없는 햇살 in Barcelona
은아, 잘지내지?
우린 한상 이렇게 물었지. "잘지내?"
여기서도 항상 사람들은 묻는다. " Como estas?"
나는 어쩔 때는 이렇게 들 묻는 이유를 모른다고 생각해. 왜냐면, 이렇게 물었을 때,
''저는 좀 못지내요. 저는 지금 엄청 디프레스 되어있구요, 저는 아침에 깨어나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대답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 실재 그 사람의 상태가 그럴지라도, 그냥 우리는 ''어. 잘지내."
또는 " 그렇지 머. 너는?" 하고 얼른 화제를 돌리곤 하지.
묻는 사람 역시 머 심각하게 그 사람의 상태를 들어주고 상담해주려고 묻는것도 아니잖아. 말그대로 인사치례이지. 그런데, 뭐하러, 말 길어지게 이런 말들은 묻고 난리지? 이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정담이는 20개월이 되어서 지금 한참 이런 저런 단어를 뱉어내고, 자기 생각과 주장이 생기고, 그걸 바라보는 엄마아빠는 모든게 신기하고, 기쁘고, 대견하지. 생무와 생콩나물을 우적우적 먹는 것도, 엉뚱한 연상도, 정담이가 뿜어내는 숨결은 얼마나 달콤하고, 정담이가 흘리는 맑은 침도 얼마나 신성할지....그걸 모두 지켜보고, 지켜주는 엄마로 살아가는구나. 그러면서 열심히 글도 쓰고, 북토크도 기획하고, 또 밤이면 달에게 이 하루의 모든 이야기와 기쁨과 슬픔과 고민과 번뇌도 조잘거리겠지. 그렇게 은아는 살고 있구나... 하고 상상해본다.
나는 요즘 여기서 겉옷을 벋고 다니는 (심지어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자꾸 날짜를 되짚어 본다.
지금이 3월인가? 아직 1월인데.... 아니 2월이었군!!!
나는 밝은 햇살을 창 밖으로 보고도, 그냥 버릇처럼 나의 단벌 겨울외투를 입고 자크를 목 위까지 치켜올리고 나가곤 해. 우리 (전)시어머니께서 사주셨던 오리솜털 롱코트이지. 이 곳에서 이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한국처럼 춥지 않아서인지, 이 곳에서 오리털, 거위털 옷은 찾아보기 힘들어. 그것도 무릎까지 내려오는 롱코트라니.
우리 시어머니는 나를 딸보다 더 예뻐하셨어. 좋은 겨울코트를 사주신다고 벼르고 길을 나섰지. 그 날이 기억나. 어머니와 백화점 세 곳은 돌아본 것 같아. 조금더 따뜻한 것으로, 조금 더 좋은 것으로,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것으로 사주신다고, 우리는 정말 수십 번 온갖 거위털, 오리털, 토끼털 등등을 입고 벗고를 했지.
내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지금 입고 있는 코트야. 팔 끝까지 오리솜털이 촘촘히 들어가있었어. 입는 순간 온몸이 포근한 아늑함을 느끼고, 지퍼를 목 끝까지 치켜올리면, 목주변의 토끼털이 목을 완벽하게 막아주어서, 목도리를 휘감을 필요 없는 이 안락함.
어머니 바램대로, 나는 이옷을 십년가까이 입었네. 한 겨울이면 어김없이 이 코트만 입고 다녔지. 그걸 이곳까지 가지고 와서 입을일이 있으려나? 했는데, 한겨울 몬세니 산맥에서 내려오는 골짜기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 타고 다니는데 이 옷만큼 좋은게 없었어. 그렇게 이 코트를 한 겨울 내내 입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어. 리노베이션 공사를 하는 새 가게로, 장사를 하고 있는 옛날 가게로, 물건은 사야하는 슈퍼마켓으로, 토요일 장으로, 타일을 사러, 부자재를 사러, 겨울 내내 지긋지긋한 리노베이션이 말썽에 말썽을 부리고 그 때마다, 현장으로 뛰쳐 나가야할때, 이 코트를 입고 지퍼를 쫙 올리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다녔지. 그러면서 생각했어. 아.... 이 코트를 벗을 날이 오면, 그 때는 가게가 다 완성되어있겠지. 따뜻한 봄이 왔겠지. 햇살이 가득한 예쁜 가게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하겠지....
오늘 한낮 기온 21도, 금요일 한낮기온 23도. 새가게는 예쁘게 완성되었다.
그런데, 나는 오늘도 그 코트를 입고 나갈 것같다.
아직 마음이 한 겨울이야. 꽁꽁 얼어붙은 얼음. 아니 차디찬 물이 가든 고인 살얼음.
이렇게 말하니, ''언니 무슨일 있어요?" 하고 묻기도 조심스럽지.
응. 물어도 말안할꺼야. 그러니 이제 우리 ''잘지내요?'' 하고 묻는 인사치례는 생략하고 살아야할까봐.
가게에는 사람들이 계속계속 들어온다. 혼자서 조용히 정리하고 준비하고 싶은 심정일 때도, 사람들이 창 밖에서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고 간다. 감사한 일이지. 정말 감사한 일이지.
그런데, 힘이드네. 그 밝은 인사에 같이 밝게 인하해주는 일이, 그 감사한 호기심에 친절하게 응대해 주는 일이, 행복이 가득한 사람들이 함께 와서 맛있게 먹고 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 그 행복이 가득한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해주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아무 일이 없어요. 나는 당신을 더 행복하게 만들 요리를 만들고 있어요. 하는 웃음을 띄며 그 사람들의 기대에 찬 바램 앞에서 줄기차게 일해야하는 것이...힘이드네. 아주 많이 힘이 드네....
내가 워낙 말이 되건 안되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농을 건네는 일을 좋아해서, 부엌을 중앙에 놓았잖아. 사람들은 내가 음식 뿐 아니라, 음식을 하며 창조해 놓는 엉망의 부엌을 부산물로 볼 수 있는 구조.
모든 사람이 내 엉망의 부엌을 볼 수 있고, 나는 그 앞에서 요리를 한다는 이 개념을 안 모든 사람이 말렸지. 그런 구조로 음식점을 하긴 힘든 일이라고. 하지만, 구탱이에서 혼자 요리를 하고, 다 된 요리를 그 음식을 만든 사람과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 가져다 주고, "이건 어떻게 한거죠?" 하고 손님이 물으면, "잠시만요, 주방에 확인하고요" 하는 소통은 하고 싶지 않았어. 그냥. 내가 독약을 넣는 것도 아니고, 조미료를 붓는 것도 아니고, 요리를 하면 주방이 어질러 지는 것은 당연한데, 뭘 궂이 구탱이에 주방을 만들어 손님과 단절될 필요가 있나 싶었지.
다 좋은데, 모든 걸 보여주고, 소통하고...그 계획 모두가 다 좋았는데,
내 마음이 힘들어서, 사람들 앞에 서있는게 힘이드네.
"commo estas?" 하고 처음보는 데도 묻는 사람들에게, ''저는 지금 차가운 살얼음에 서있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어요" 하고 말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늘, ''좋아요. 잘지내요, 무얼 해드릴까요?아! 아기가 참 예뻐요! 오늘이 결혼기념일이시군요! 친구들 모임인가봐요! "이렇게 기쁘게 모인 그들의 기쁨을 따라가기가 힘이 들어서, 얼마전엔 나한테 성질이 벌컥났어.
왜 주방은 이모양으로 만들어놔서, 일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고, 잠자는 시간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이 모든 일에 짖눌려있는데, 즐거운 척까지 해야하는 사명까지 얹어놨는지!!!!
오늘도 동쪽 부엌창에 밝은 햇살이 든다.
서진이를 깨워 아침을 먹여야지.
바르셀로나 햇살은 내 마음따위는 개의치 않고 지 기분 날때면 어김없이 내리쬐는데,
그 밝음이 소스라치게 대단하여, 숨을 곳을 찾게되네.
내가 숨고 싶은 그 곳까지 저 대단한 밝음이 내리쬐는게 싫다.
주말이 온다. 모든 사람이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는 주말....
동굴 속에 숨고 싶은 나는 다시 그 모든 사람들 앞에서 웃으며 음식을 해야해. 인사를 해야해.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이렇게 살자고 알고 보면 내가 만든 일들...
그리고 힘들어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봄이왔네. 겨울외투를 벗어야하는데, 아직 벗을 수가 없다.
겨울외투를 벗을 때 즈음, 또 편지하자.
은아. 잘지내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