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보내는 편지
미처 잔을 꺼낼 새도 없다. 찬장 문을 열면 여러 잔들이 그득그득한데도 말이다. 찬장 안에는 기네스, 칭따오, 기린, 브루클린브루어리 등등의 로고가 선명히 박힌 잔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여름철 마트의 맥주 프로모션 때마다 집어왔던 것들이고, 여러 번 솎아냈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이다. 작은 스툴에 올라 조심스레 잔을 고르고 살짝 헹군 다음 물기를 닦아내는 일, 방금 막 딴 맥주를 꼴꼴꼴 따르며 거품의 농도와 양을 조절하는 시간, 어울리는 안주를 차려놓고 그 맛을 음미할 시간. 내겐 그럴 시간이 없다. 서둘러 맥주캔의 고리를 젖혀 딴 다음, 자리에 선 채로 콸콸 들이마신다. 가스불이 기세 좋게 타오르고 도마 위엔 양파 꼬다리나 대파 뿌리 같은 게 놓여있다. 애호박의 포장 비닐, 간을 보느라 꺼낸 몇 개의 숟가락, 시금치 밑동을 여몄던 빨간 철사끈. 그들 사이에 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압력솥의 추가 돌며 김을 뿜어낸다. 동시에 뭔가가 가라앉는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간다는 감각이다.
1960년대 미국 교외의 중산층 여성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글보다 이미지가 먼저 다가온다. 말끔하게 단장한 차림새로 집안 구석을 살피고 다듬는 여자. 부드럽게 말린 머리칼과 속눈썹, 탐스런 진주 목걸이 아래론 잔꽃무늬 블라우스와 스커트, 그리고 하이힐. 여자의 손목은 천천히 원을 그리며 회전한다. 잔이 기울 때마다 얼음이 달그락거린다. 연갈색의 액체는 커피 같지만 커피가 아니다. 술, 그것도 아주 독한 술이다.
그들이 왜 홀짝홀짝 술을 마시고 있었는지 알 것도 같다. 그 술이 어떻게 쓰르르 목을 훑어내려 갔는지도. 푸른 잔디밭과 하얀 울타리 안 가득 찬 공허와 무료함. 몸을 던질 곳은 킹 사이즈의 침대뿐이다. 아니면 월등하게 성능 좋은 가스오븐뿐. 그런 허무와 외로움을 상상하다 문득 현실로 돌아온다. 풍요로운 햇살 부서지는 교외의 저택에서 만 킬로미터는 떨어진 곳, 여기는 을지로다.
그 옛날의 동창들이 모이기로 했다. 애엄마 넷은 1살부터 4살까지의 매달리는 애들은 떼어놓고 오기로 했다. 그러니 낮부터 달려야 해. 쉼 없이 달려야 해. 브레이크 타임 이런 거 곤란하다. 만장일치로 정해진 곳은 을지로였다. 그, 뭐더라. 힙지로? 감성 아닌 갬성? 간판도 없이 어둑어둑한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곳? 그럴 리가. 누구보다 큰 폰트의 간판이 경쟁하듯 늘어서고 비닐 휘장 아래로 플라스틱 의자들이 도열한 거리. 원조는 여기야, 어서 들어오라고. 저마다 뽐내던 가게들 앞에서 결정은 단촐했다. '맥주는 역시 뮌헨이지.' 그걸 또 하필 뮌헨에 살아본 적 있는 이가 말한 터라 신뢰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낮, 을지로 3가 뮌헨호프의 테이블로 모였다. 자자, 뭘 시킬까. 하며 메뉴판을 보는데 생맥주 500cc는 한 잔에 4천원. 그런데 노가리는 한 마리에 1,500원이다. 둘이 밥 먹고 만나 가볍게 맥주 한 잔 한다 치면 맥주 두 잔에 노가리 한 마리 해서 만 원 안으로 털어 넣을 수 있다는 거다. 놀라운걸? 그럼 일단 맥주 한 잔씩에 노가리를 시켜보자고. 가벼운 에피타이저 느낌으로다가. 금세 받은 맥주는 흔한 호프집 맥주다웠다. 적당히 밍밍하고 적당히 싸한 맛. 살짝 불에 그을려 구운 노가리는 손으로 잘게 찢었다. 맥주 한 모금에 노가리 한 입, 그렇게 시작하려는데 이게 약간 질긴 느낌이다. 다른 게 뭐가 있을까? 하고 다시 메뉴판을 보니 먹태가 있다. 먹태는 노가리보다 좀 더 보드랍지 않을까? 가격을 봤더니 15,000원이다. 뭐라고? 이건 10노가리잖아? 그럼 어쩔 수 없다. 입에서 불려. 내 입에선 명령어가 튀어나온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은 반갑기 그지없고, 그 반가움을 표현하고자 자꾸만 잔을 부딪친다. 여린 입천장 다 까지는 노가리 말고 공짜로 나오는 팝콘 말고, 밥 좀 될 만한 것도 시키자 하여 골뱅이 소면을 시키고 마늘치킨도 시킨다. 야, 스팸도 시키자 시켜. 방탕해진 사이 무수한 맥주잔들이 오고 간다. 적당히 매콤하고 제법 따스한 것들이 뱃속에 들어가니 나의 명령어는 다소 과감해진다. '적셔.'
옅은 황금빛의 술, 값싸고 경쾌한 술로 목을 적시는 사이 우리는 다시금 어깨 부딪치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그러다가도 실수로 핸드폰 액정이라도 건드리면 우리를 반만큼 닮은 꼬마의 얼굴이 선명히 떠오른다. 육아를 위해 정교히 세팅해 놓은 쳇바퀴와 그 쳇바퀴가 얼마만큼 흔들릴 때 밀려드는 짜증과 분노가 테이블 위에 오른다. 그렇다. 우리는 매 순간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분유나 모유 먹는 시간의 간격(줄여서 '분유텀' 혹은 '수유텀'), 잠자는 시간의 간격('낮잠텀'), 이유식과 유아식의 순서와 종류(시판 이유식을 사 먹인다 하여도), 그리고 시기에 맞춰 읽힐 책들과 놀아줄 장난감들(당근 마켓을 애용한다 하더라도 종류를 알아야 사니까), 미디어 노출 여부와 기초 생활습관 길러주기('자, 이제 치카하자.')까지. 그리고 지금 얘가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지(말 한마디 못하는 신생아라도)도 알아차려야 한다. 영유아 발달 검진과 시시 때때의 예방접종, 어린이집 대기 순번 올리기와 보육 너머 교육까진 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늘상 저글링을 하는 기분이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저글링을 하고 있다. 때론 둥근 공 위에 올라 저글링을 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고 굴려야 한다는 일념 하에 애를 쓴다. 실제 굴려지는 것은 나임에도.
그래서 우리의 저녁은 비슷하게 흘러간다. '노을이 지면 마음이 설레.' '육퇴 후가 진정한 시작이지.' '집 냉장고가 편의점 냉장고 저리 가라다.' 하며 우리는 비슷한 자세로 앉아 비슷한 술을 꼴꼴꼴 따른다. 기진맥진한 하루를 그렇게 적셔야 또 다음 날을 살아낸다고 말한다. 연거푸 잔을 들이키며 나는 말했다. '우리 집 꼬마는 물을 물이라고 안 해. 캬! 라고 말해. 목마르면 캬! 달래.' 친구들이 와르르 웃는다. '어디 그것뿐이게? 얘가 처음으로 한 청유형의 문장이 '부어 봐.' 라고. 신이 나서 계속 '부어 봐.' 하고 말하고 다녀.' '완전히 엄마 닮았네.' 이구동성의 답이 들린다. 들린다. 들려. 저 멀리 아스라하게 들린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꿈틀거리며 고개를 반대로 돌려 자세를 고친 것은 한참 후다. 거품이 말라붙은 빈 잔들에 둘러싸여 엎드린 채 쿨쿨 잤다. 친구가 찍어준 사진을 보아하니, 그 와중에 마스크는 곱게 쓰고 있다. 방역수칙 철저한 주정뱅이 나야 나. 몸을 일으켜 뻐근한 목을 돌리며 시계를 보니 여섯 시, 밖은 이미 어두워지려 한다. 여섯 시간 동안 자리 한 번 옮기지 않고 달린 셈이다. 달리다 지켜 잠들기도 하였지만. 이제 슬슬 집에 갈까? 하고 비척비척 일어나 계산대로 향한다. '15만 8천원입니다.' 네? 100노가리 넘게 술을 마셨다고요? 그러니까 10먹태도 넘는다는 거죠? 이렇게 환산이 자유로운 것을 보니 아깝게도 마신 술이 다 깨었나 보다. 놀란 마음에 주문서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여기 오백 한 잔 더요! 경쾌하게 외칠 때마다 늘어가던 획들이 모여 바를 정 자 3개 하고 다시 4개의 획을 그렸다. 그러니까 넷이서 열아홉 잔을 마셨다는 거다. 잘했네, 잘했어. 잘했네, 잘했네, 잘했어. 그러나 왠지 아쉽다. 언제가 될지는 기약 없지만 다음엔 꼭 스무 잔을 채우자고. 우리는 어둠이 내린 거리로 흩어졌다. 평소보다 조금 크게 깔깔거렸고, 너 마스크에 골뱅이 양념 튀었다 얘. 하며 함부로 손가락질도 했다. 북적이는 호프집에서의 단잠이 몸에 잘 받은 모양인지 나는 순식간에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시금 큰 공 위에 올라 저글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르셀로나와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는 바르셀로나의 박민아 님과 함께 2022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도시에서 8시간의 시차를 공유하며 한 달에 두 번 같은 주제로 에세이를 씁니다. 이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 알지 못하나 우리는 정말 즐거운 기대를 안고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꾸준히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써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