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속의 삶
외국에 산다는 이유로 꽤 많은 손님을 맞는다.
가족들, 친지들, 친구들, 옛 회사 동료들, 옛 이웃, 때론 그의 식구들까지........
90년대 학번치고 안 읽은 사람이 거의 없을 책,
홍세화 씨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30년 전이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빠리에 오셨나요? 빠리에 알고 있는 지인에게 연락을 하실 생각이라면, 하지 마세요.
당신에게는 첫 여행일지 몰라도, 그에게 당신은 이미 99번째 사람일 테니까요."
유럽여행을 하면서, 스페인에 사는 나를 떠올려주는 친지들, 친구들, 옛 동료들.
그들의 연락을 받으면 솔직히 나는 의도적으로 고마운 마음을 먹는다.
더 진솔하게는 귀찮을 때도 있지만, 나를 보러 와준다는 점에 대해
의도적인 고마운 마음으로 무장을 하고 그들을 맞으면,
그들이 돌아갈 때 즈음은 '힘들었지만, 참 좋았어' 하는 추억이 남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한겨울에 유럽여행을 하면서 우리 집에 아이 셋과 머물러도 되겠냐고 한 친구가 물었을 때, 나는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멀리서 나를 보러 여기까지 와준다는 친구를 반갑게 맞기로 마음먹고, 집이 추워서 불편하겠지만, 그 점만 괜찮다면 우리 집에 머무르라고 했다.
친구와 아이들을 맞기 위해 청소를 하고, 이부자리를 준비하고, 집에 있는 모든 전열기구를 끌어다가 아이들 방에 놓아주고, 장작도 미리 벽난로 옆에 수북하게 쟁여 놓았다.
층고가 높고 창문이 수없이 많은 점도 열효율에 절대적 불리한 조건이기도 했지만,
문화재로 지정된 집은 공사시작 전에 허가를 위한 서류 작업으로 일단 사람의 진을 쪽 빨아낸다.
그 절차를 최대한 복잡하고 어렵게 해서 집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는 의도로 까지 보인다.
까막눈인 주제에 성질은 급한 나에게 그 절차는 고문과도 같다.
처음에는 백방으로 중앙난방 설치를 알아봤지만, 서서히 그 열의는 오만가지 요구사항에 질식했고, 나는 벽난로에 의지해 겨울을 악으로 깡으로 버티기로 했다.
하긴, 우리 집이 불편한 것이 난방만은 아니다.
우리 집 정원 한 구석에는 빨래터가 있다. 이것도 문화재라 내게는 보존의 의무가 있다.
발을 벗고 들어가서 물을 가득 채우고 신나게 물장구를 칠 수 있는 커다란 물곽이 두 개 붙어있고,
그 가장자리는 맨들 거리는 돌이 비스듬하게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그 돌에는 여지없이 빨래가 치대고 비벼졌을 것이다.
그 옆에는 빨랫줄이 줄줄이 빨래를 마중하고 있다.
건조기 따위는 없다.
우리 집 빨래에서는 향긋한 유연제 향 대신, 뜨거운 태양과 계절의 바람 내음이 난다.
그래서 나는 세탁기를 이 상징적인 빨래터 바로 옆에 두기로 했다.
그 결정과 함께 꼭대기층에 사는 나로서는 빨래를 들고 수많은 계단을 오르락 내르락 해야 하는 운명을 맞이했지만 나는 이 불편이 은근히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나의 위안 또는 자기기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집에 있는 모든 난방기구는 친구가 머무는 층에 넣어주고, 한참을 나른 나무를 아낌없이 때어주었는데도, 친구의 불편한 기색이 느껴지고, 아이들이 추워서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해 괜히 미안해지던 어느 날 아침, 친구가 빨래를 하고 싶다고 했다. 빨래를 챙겨 계단을 내려와 정원밖으로 나와 빨래터로 가서 세탁기를 돌려주려는데, 옆에서 친구가 여태껏 쏟은 내 공을 한마디로 때려눕혔다.
"민아야, 너 참... 힘들게 산다...."
남의 말을 그리 깊게 새기지도 담지도 못하는 나이지만,
틀린 말도 아닌 이 말에는 내 사는 꼬라지에 대한 측은함이 배어있어서일까?
꽤나 가시처럼 깊이 박혔다.
불편하면 신고당할 것 같은 현대식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에게 우리 집은 불편하다.
나는 불편함을 선택했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바람도 맞고, 우박도 맞고 비도 맞고
계절을 날조하지 않고 맞기로 했다.
추운 날엔 집안에 들어와서도 한참을 점퍼를 벗지 못할 때가 있다.
때론 집안에서 입김도 난다.
더운 날엔 훌훌 벗고 수영장으로 냅다 뛰어 들어간다.
바람이 불면 창을 열어 거실 가득 바람을 채운다.
별이 뜨면 고개가 꺾어져라 별을 헤아린다.
달이 차고 이질어지는 것을 보고,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관찰한다.
장작을 주문하면 내 두 손 두 발이 수백 번 움직여야 창고에 쌓이고,
불을 때면 재가 날리고, 연기에 켁켁 목이 막힌다.
그 바람에 한겨울 내게는 단내가 시그니처 향수이다.
나는 겨울을 뜨뜻미지근하게 살지 않기로 했다.
오들오들 떨면서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다.
저녁엔 장작을 활활 때고, 묵직했던 나무가 모든 수분을 떨구고 바삭한 형체로만 남으면,
집게로 톡톡 쳐서, 다이아몬드 같은 뜨거운 보석을 털어,
그 뜨거움 안에 고구마를 넣어 굽는다.
나는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지 않기로 했다.
가슴골로 등골로 수백 번 주르륵주르륵 땀을 흘려보내고 냉수를 끼얹는 짜릿함을 택했다.
그런 내 선택이 겨울에도 뜨뜻하게, 여름에도 시원하게,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탄 듯 살기로 한 사람들에게는 빈축을 살 일인가?
각 계절이 지나가는 대로 그 계절 속에 살라.
그 계절의 공기를 들이켜고, 그 계절의 음료를 마시며, 그 계절의 과일을 맛보라.
그리고 그 계절의 영향력 속에 자신을 완전히 맡겨라. (계절속의 삶, 헨리 데이빗 소로우)
나는 오늘도 이 겨울의 찬 공기를 배불리 마시며 자전거를 탔다.
감귤과 오렌지를 손이 노래지도록 까먹었다.
재를 날리며 땔감을 때고 그 앞에 앉아 책을 읽고 하늘을 본다.
잠시 해를 내보냈던 파란 하늘 아래로 내가 까먹은 오렌지빛 색이 산 밑으로 내려오더니,
이내, 방금 재가 된 숯색이 하늘을 덮고 긴 밤을 맞는다.
이 밤에 순종하여 자신을 완전히 맡기러 자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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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읽고 친절한 하트를 눌러주시는 저의 몇 안되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시크한척하지만, 사실은 글을 쓰고 하트가 몇개인지 헤아려보곤 합니다.
그리고는 또 이중적이게도 바쁜척을 하며 댓글에 답을 못달고 휘리릭 사라져버리지만,
여러분들의 발자취는 제게 감사하고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저는 코칭을 실습하고 있습니다.
코칭은 가르치거나 조언하지 않습니다.
내안의 힘으로 나의 삶의 방향을 찾고, 나를 찾아가는 길목의 동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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