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는 성 니콜라스라는 성인의 이름에서 기원합니다.
딸이 내가 분신처럼 끼고 자는 물주머니에 물을 덮여준다.
"엄마 주려고 하는 거야?"
"응"
"우와... 최고다. 크리스마스 이벤트야?"
"아니, 엄마가 오랜만에 힘들어 보이네..."
맞다. 웬만해서는 힘이 안드는데,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힘이 든다.
무지하게 싸돌아다니고, 엄청 재게 몸을 놀렸다.
새벽 4시 반부터 시작된 마지막 일정이 끝날 무렵, 물건배달이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주차가 마땅치 않은 골목을 막고 기다리는 배송차인지라
마음이 급해서 잠옷바지를 입은 채로 뛰어나가다 계단참 중간에서 알아차렸다.
다시 올라와서 잠옷바지만 갈아입고 코트를 걸치고 달렸다.
크리스마스이브 차 막힘은 자전거길 마저 막는다.
사잇길을 요리조리 피해 가게에 도착해서 물건을 받아 정리를 하며
내일모레 있을 팝업행사 물건들을 다시 점검한다.
이곳에서 25일 26일에 문을 연 곳은 없다.
첫해는 '에이 그래도 한 군데는 열겠지...' 했는데, 진짜 아무 데도 없었다.
연휴를 끼고 큰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서 필요한 재료가 혹시라도 빠져있다면 오늘이 마지막 기회이다.
물건정리를 하면서도 행사를 해줄 셰프님과 계속 재료와 그릇과 자리배치를 협의한다.
가게를 나오니 오랜만에 햇살이 눈부시다.
아뿔싸! 자전거 시트 위에 새님이 변을 보아 놓으셨다.
가뜩이나 할 일이 많고 시간이 없는데, 가게로 들어가서 물티슈와 세제를 갖고 나와
제대로 닦으려면 십 분은 지체된다.
에라 모르겠다! 집에 가서 바지를 빠는 것이 빠르다.
종이 쪼가리로 대충 닦고 냅다 올라타서 페달을 돌린다.
길거리에는 선물을 사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제과점 앞에는 빠네톤(크리스마스 때 먹는 맛없고 맹맹한 케이크)을 사려는 긴 줄이 늘어져있다.
평소에 도움을 주시는 분들께 드리기 위해서 마을에 새로 난 케이크가게에 주문해 둔 케이크를 찾았다.
케이크와 준비한 선물을 이고 지고 배달을 시작한다.
마을을 몇 바퀴 돌아 케이크 배달이 끝났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일본셰프님께는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 놓고 어제저녁부터 후회가 열다섯 번씩 밀려오고 있는 중이다.
김치를 만들어드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진이도 나도 김치를 좋아하지만, 집에서 김치를 만들 시간은 여간해서 나질 않는다.
나를 위해 김치를 만든 적은 없는데, 감동스럽게도 일본셰프님께 드릴 선물로 김치를 선택한 것이다.
부부가 모두 커피 한봉다리도 아무 곳에서나 사지 않는 견고한 취향을 갖고 계서셔,
선물 선택의 폭이 없었다. 그리고, 중년남자의 선물은 노답이다.
케이크배달을 끝내고 집에 오자마자 어제 절군 배추를 헹구고 동시에 옆에서는 양념을 만든다.
마늘, 생강을 다지면서 후회가 밀려오고 쪽파를 다듬으며 한숨이 터져 나온다.
찹쌀풀을 쑤어 고춧가루를 불리고 새우젓을 다진다.
'아..... 내가 미치지 않고서는 아무리 고마운 마음이라지만... 이 와중에 김치가 웬 말이냐....'
머리를 쥐어뜯고 싶다.
어찌어찌 김치가 완성되어 통에 곱게 담아본다.
셰프님 집을 마지막으로 김치와 아까 사둔 케이크를 배달하고 집에 오고 싶은 그 순간,
빠진 재료가 생각났다!!! 150인분 정도의 밥을 해야 하는데, 쌀을 빼먹었던 것이다.
쌀을 사서 이고 지고 가게로 날랐다.
돌아오는 길에는 크리스마스 날 먹을 배와 라코타치즈를 넣은 라비올리를 사러 갔다.
역시나 줄이 길다. 하염없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올라 민아!!! Feliz Navidad!!!!"
오늘따라 길에서 스무명은 넘게 인사를 받은 것 같다.
신체접촉이 많은 이곳 사람들의 크리스마스 인사는 특히나 찐하다.
냉큼 나를 끌어안고 볼을 비비며 양 볼에 비쥬를 날린다.
그들은 내가 아침에 잠옷바지로 뛰쳐나온 적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 말인즉슨, 나는 양치를 하지 못했다. 물론 샤워는 다른 별의 럭셔리 이벤트다.
거기에 나는 조금 전에 마늘과 생강을 다지고, 새우젓과 멸치액젓을 버무렸고,
아차!!! 새똥도 옆에 있던 종이곽 쪼가리로 쓱 닦아버린 이력이 있는 사람인데...........
그저, 마구 끌어안고 볼을 비벼댄다.
아.... 정말 나는 오늘 꺼져버리고 싶은 행색인데, 오늘따라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발견한다.
잊고 있었다. 나는 이 마을의 셀레브러티, 유일한 한국인, 레스토랑 민아의 바로 그 민아!!!!
코트를 쓰개치마처럼 뒤집어 써서라도 사람들의 시선을 막고 싶을 만큼 후진데,
게다가 집에서만 쓰는 영심이 같은 안경을 쓰고 나왔는데도 오늘따라 동네에 아는 사람은 다 만난 것 같다.
아차, 그 와중에 아빠와 통화도 했다. 구십이 넘으신 아버지는 생일은 잊으셔도 크리스마스에는 언제나 카드를 써 주시고, 선물을 주시곤 하셨다. 그래서 아빠께 크리스마스 인사를 잊는 것은 또 욕을 버는 일이었기에,
아까 물건 정리를 하면서 잽싸게 스피커폰으로 연락을 드렸던 것이다.
공저로 출판된 책이 궁금하셔서 교보에 세 번이나 가보셨다는 말씀을 듣고,
집으로 책을 보내드렸던 참이었다.
반색을 하실 줄 알았는데 아빠목소리에 기운이 없다.
아빠의 서평은 이러했다.
"무슨 책이 그 모양이냐? 아주 기대를 했는데, 무슨 글을 그렇게 외국말처럼 썼냐? 너만 그런 줄 알고 다른 글을 봤는데, 다 똑같이 한국말로 외국말을 써놨어!!!! 하나도 못 알아먹게........ 에이!!!!"
아빠, 죄송.... 다음 책은 아빠가 보기 좋게 외국말 한 개도 안 쓸게요.
세 번이나 교보까지 갈 기력 갖고 계셔서 감사해요.
아직도 글을 읽으시려는 열정 갖고 계셔서 고마워요.
기운 없는 목소리로라도 보고 싶다고 빨리오라고 말씀해 주셔서 행복해요.
사랑해요. 아빠, 메리크리스마스......
그리고, 모두모두....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