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급식 세대와 도시락 세대
어제저녁부터 초등학교 4학년 둘째 딸의 호들갑이 시작되었다.
'내일 흔들흔들 도시락데이야. 그래서, 뚜껑 있는 도시락통을 가져가야 돼'
'흔들흔들 도시락데이가 뭔데?'
'급식으로 나온 밥과 반찬을 도시락통에 넣고 흔들어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거야.'
'와 맛있겠다. 계란프라이도 나와? 계란프라이가 핵심인데.'
'당연히 나오겠지.'
사실, 집에 도시락통은 없다. 물론 아이들 소풍용 도시락통 작은 것은 있는데, 코로나 이후로 학교 소풍이 없었고, 올해 소풍은 점심을 제공해 주어서, 도시락통을 따로 사지는 않았다. 냉장고용 반찬통 중에, 적당한 크기의 통을 아내가 찾아서 주었다. 꽤 커 보이는 통이었다.
'통이 너무 크지 않아?'
'아니야. 밥이랑 반찬 모두 넣고 흔들려면, 큰 게 좋아.'
오늘 아침, 아이는 신나서 통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아마도 오늘 오전 수업 동안, 아이의 머릿속에는 '흔들흔들 도시락데이'를 맞아, 통을 흔들흔들 흔들 기대에 설레며 수업을 들을 것이다.
난, 도시락세대이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도시락을 두 개씩 가지고 다녔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통에 반찬을 넣고 흔들어 먹은 것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당시에는 수업이 2교시쯤 끝나면, 쉬는 시간 동안 도시락의 3분의 1, 또는 절반 정도를 먹어치웠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0교시라고 해서, 아침 7시부터 수업을 시작했고, 아침을 제대로 못 먹고 학교에 온 아이들은 2교시가 끝나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도시락을 까먹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통의 빈 공간에 남은 반찬을 쏟아붓고, 뚜껑을 닫고 흔들어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었다. 계란프라이나, 계란장조림이 반찬인 날은 도시락비빔밥은 꿀맛인 특별한 날이었다.
학창 시절, 학교에는 이런저런 돈을 내어야 했다. 우선 등록금 또는 수업료라는 것이 있었고, 0교시 수업은 보충수업이라고 해서, 별도의 비용을 내었다. 무슨 성금도 매년 몇 번씩은 걷었던 것 같다. 불우이웃 돕기 성금, 평화의 댐 성금 등등. 정해진 날짜에 돈을 못 내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런 친구들은 조회나 종례시간에 이름이 불리었다. 내일까지 가져오라는 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당시 집안형편이 어려웠던 나도, 이름이 불린 적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 무척 창피한 순간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창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평소에도 '학교에 낼 돈'을 따로 모으셨었고, 학교에 낼 돈은 마감일 일주일 전에는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었다. 빈부격차. 어려서부터 눈으로 확인하며, 몸으로 체감하며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그런지, 빈부격차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이고,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난 학교에서 급식을 받은 적은 없지만, 내가 어른이 된 후, 학교에 급식제도라는 것이 생겼다. 처음에는 유상이었다가, 무상이 되었다. 난 당연히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쪽이었다. '돈이 있는 사람이 왜 무상급식을 받아야 하느냐? 예산낭비다'라는 논리도 있었지만, 난 돈이 없는 사람만 무상급식을 받는다면, 당연히 무상급식을 신청하는 과정이 생길 것이고, 그 과정은 어린 마음에 상처 또는 빈부격차에 대한 체념을 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투표'라는 과정까지 거쳐서, 무상급식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내 아이들은 학교에서 도시락을 먹어본 적이 없는 급식세대가 되었다.
얼마 전, 뉴스기사를 보다가, '고교무상교육 예산이 내년에 없다'는 기사를 봤다. 기사의 내용은 '고교무상지원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그 비용을 분담하는 건데, 중앙정부가 예산지원하는 것을 결정할 당시, 올해 12월에 일몰(없어지는)하는 법안이었다. 그래서 연장법안이 올해 통과되지 않으면, 내년의 중앙정부에서 지원할 고교무상교육예산은 없으며, 각 지방정부와 교육청이 예산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현 교육부에서도 학생수 감소등을 고려하였을 때, 중앙정부의 지원이 없어도, 고교무상교육은 가능할 것이다라는 입장이다.' 뭐 이런 식의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적어도 교육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 살더라도, 공평하게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방소멸을 걱정하고, 지방에 아이들이 없다는 것을 걱정한다면, 우선 지방에서도 공교육만큼은 서울과 수도권과 동일한 환경과 조건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초중고생을 아이로 둔 부모는 대도시로, 수도권으로, 서울로 이사를 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방정부의 예산만으로 서울이나 수도권의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이 가능할까? 이미 서울대 신입생 중에, 서울의, 그중에서도 강남 3구의 출신들이 많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인데. 지방의 학생이 줄었다면, 오히려 예산은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지방의 공교육 질을 높이는 것이, 부모들이 좋은 교육여건을 찾아 서울로 이사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라고 혼자 소심하게 생각해 보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격차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최소한 교육의 기회만큼은 서울과 지방, 부자의 자녀와 가난한 자의 자녀에게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이야기한다면 '공평'이 아니라, '공정'을 추구한다면, 지방이나 가난한 자의 자녀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해지려면, 불리한 여건의 이에게 추가 benefit을 주어야, 게임은 공정해지니까.
고민을 할 뿐, 무언가 고칠 힘이 없는 나는 그래도 소심하게 생각해 본다.
'다음번 선거에서는 후보의 공약 중, 공교육에 관한 공약을 꼼꼼히 읽어보고, 투표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