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현실은 해님은 없고, 바람만 존재하는 것일까?
전쟁 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뜬금없이 첫째 둘째 딸아이가 뉴스를 보고 있는 내 옆에서 한 말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유튜브를 별로 보지 않는다.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는 아직 스마트폰이 없고, 중학생인 첫째는 올해 중학교를 입학하면서, 스마트폰을 마련해주기는 했지만, 데이터가 가장 적은 요금제에 가입해 주어서, 유튜브를 많이 보지는 못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TV로 뉴스를 보고 있으면, 조용히 옆에 앉아서 같이 보다가, '다른 거 보면 안 돼'라고 물어보고는 TV에서 보고 싶은 프로를 하고 있는 채널을 찾는다.
난 TV를 켜면, 뉴스채널을 먼저 보는 편이다. 그것도 한 채널만 보지 않고, 여러 채널을 보려고 한다. 난 뉴스라는 것이 사실을 전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뉴스 역시 기자 혹은 편집국장 등이 사실을 보여주고 싶은 대로 편집해서 보여주며, 특히 패널을 등장시키는 경우에는 노골적으로 본인의 시각을 강요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완전히 다른 성향의 뉴스채널을 몇 개 보아야, 그나마 사실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뉴스 채널의 성향에 관계없이 항상 나오는 화면은 '전쟁'에 관한 화면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투,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전투, 그리고 한국과 북한과의 긴장상태에 대한 소식들. 방송국이나 뉴스의 성향에 따라, 각 화면에 덧붙이는 멘트들을 다르나, 우리 아이들은 그 멘트에는 별 관심이 없고, 끔찍한 화면만 본다. 그래서, 불현듯이 말을 한 것 같다. '전쟁 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나 역시 전쟁은 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전쟁이 나면, 승자가 되건, 패자가 되건, 그 나라의 국민은 많은 피해를 입는다. 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며, 생활 기반이 통째로 붕괴된다. 각종 국제법, 국제조약에서는 전쟁 중에도, 아이들, 여성들, 민간인들은 공격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지금의 전쟁 관련 뉴스를 보면, 항상 어린이와 여성, 민간인들의 사상소식을 전달해 준다. 즉,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그러한 국제법, 국제조약 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문구들인 것 같다.
난 어떤 이유에서도 대량학살은 정의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대량학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건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학살의 이유를 종교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에게는 물어보고싶다. 당신이 믿는 종교 경전 어디에 대량학살을 해도 된다는 구절이 있느냐고.
아이들이 어린이집, 유치원에 다닐 때, 같이 읽은 동화 중에 해님과 바람의 내기에 관한 책이 있었다.
길을 가고 있는 나그네를 대상으로 해님과 바람이 누가 겉옷을 벗길 수 있는지 내기를 한다. 먼저 바람이 바람으로 옷을 벗겨보려고, 세차게 바람을 불어댄다. 그러자, 그 나그네의 옷이 바람에 벗겨지기는커녕, 나그네가 꽁꽁 더 옷을 여미고 걸아간다. 이제 해님 차례. 해님은 따뜻한 햇볕을 나그네에게 비춰준다. 옷을 여미고 걷던 나그네는 따뜻한 햇볕에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하고, 이내 겉옷을 벗어 손에 든다. 해님의 승리다.
50여 년을 살아오면서, 현실에서 해님과 같은 사람도, 해님과 같은 상황이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난 지금도 해님과 같은 방법이 세상을 바꾸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해님과 같은 방법을 선택하려면, 우선 시간이 충분해야 하고, 무엇보다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 여유란 경제적, 마음적, 정신적 모든 여유를 의미한다. 지금의 상황은 한국이나, 외국이나 이러한 여유를 찾기는 힘든 상황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난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해님과 바람의 내기에 관한 동화를 들려주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보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해님이 있다고 아빠는 믿어. 단지 그 해님이 가끔은 구름에 가리기도 하고, 심지어 달님에 가리기도 하지. 하지만, 언젠가는 해님은 구름과 달님을 뿌리치고 나와서 세상을 따뜻하게 비추거든. 아빠도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빠는 믿어. 우리나라에서 전쟁은 나지 않을 거라고. 왜냐하면, 지금도 우리나라에는 자기 안의 해님을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주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거든.'
우리 아이들은 커가면서, 나보다는 더 많은 해님같은 사람과 상황을 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