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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솔 Oct 10. 2024

11. 폭이 아주 넓고, 아주 긴 계단

_ 인생이란...

친했던 선배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선배 본인의 장례였다. 1971년생. 정말 젊은 나이에 병마로 세상과 이별을 하게 된 선배였다.


이제는 이런 장례식장은 고인에 대한 조문의 의미와 함께,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나 소식을 듣는 자리가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이제 자주 좀 보자.' '열심히 살아왔는데. 인생 참 허무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뭐, 이런 이야기들이다.


50대인 어른들에게도, 10대의 아이들에게도 삶은 수수께끼이고, 고민이다. 50대 어른이 보기에는 10대의 고민은 '지나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닌 것들'이듯이, 50대의 고민은 80대 어르신이 보기에는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에게 그 순간은 가장 힘든 순간이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인 것이 삶이다.


인생은, 삶은 나선형 길을 올라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어느 순간 뒤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다시 앞으로 가게 되는, 그리고 꾸준히 올라가거나 내려가고 있는 나선형 길. 인생의, 삶의 나선형 길은 반드시 위로 올라간다고 생각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내려가는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요즘 깨달은 것은 인생은 비탈길이 아니라, 계단이라는 것이다. 이 계단은 한 칸 한 칸이 아주 폭이 넓고, 길이도 아주 긴 계단이다. 더군다나 안개가 자욱해서, 지금 서있는 계단의 단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내가 방향을 잡고 걸어가기도 하고, 뛰어가기도 하고, 쉬기도 하며 앞으로 가고 있다. 어느 순간,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계단이 아니라 평지가 아닐까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들 때쯤, 신기하게도 반드시 계단의 단이 끝난다. 문제는 다음 계단이 한 단 위로 올라가는 계단일 수도 있지만, 한단 아래로 떨어지는 계단일 수도 있다. 아래로 떨어지는 계단을 맞닥뜨리면, 당황하게 된다. 그리고 지나온 길을 생각해 본다. 어딘가에서 갈림길이 있지 않았었나? 내가 갈림길인 줄 인식하고, 어떤 방향을 선택했다면, 후회가 몰려온다. 아 그때 다른 방향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그런데,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난 갈림길을 지나왔는 지도 모른다. 이 계단은 길이만이 아니라 폭도 아주 넓고, 안개가 아주 자욱하기에, 계단 어딘가에 갈림길이 있었어도, 내가 그 갈림길 사이에서 마주치지 않는다면 알 수가 없다.


계단의 높이도 각양각색이다. 어느 단은 계단이 너무 높아서, 팔다리 쭉 펴서 겨우 오르내릴 수 있는 반면에 어느 단은 정말 살짝만 발을 들면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이다. 걸어온 길이가 길다고 단이 높은 것도, 길이가 짧다고 단이 낮은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지맘대로인 계단이다.


그럼 이 계단을 현명하게 가는 방법이 있을까? 일단 폭과 길이가 아주 넓고 길고, 안개가 자욱하니, 앞의 모습을 미리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나마 현명하게 가는 방법은 길동무를 찾는 것이다. 문제는 찾은 길동무 역시 계속 같이 갈 수는 없고, 어느 순간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더 문제는 기껏 찾은 길동무가 처음에는 마음이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같이 있는 것이 더 힘들어지는 경우이다. 헤어지고 싶은데, 내가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못 해서 그냥 계속 같이 가게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고민하는 친구관계 중에는 이런 관계가 꽤 많은 것 같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어느 순간 친구가 없이 혼자 걷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이 시기에는 누가 다정하게 다가와 '같이 갈까요?'라고 이야기하면,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한다.


지금은 나와 아내와 두 딸아이는 같이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몇 번의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을 같이 경험하기도 했고. 가고 싶은 방향이 서로 다른 적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같이 걸어왔다. 그러나 알고 있다. 언젠가는 각자 다른 방향을 선택해서 가게 될 날이 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방향이 사실은 어느 한 지점에 다 같이 모이는 방향의 길일 수도, 영영 만나지 않는 방향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각자 선택한 방향의 길을 가다가도, 그 길이 아닌 것 같을 때, 돌아올 수 있는 이정표가 되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나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이, 계속 걸으면서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돌아올 수 있는 이정표도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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