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재미있게 같이 일할 사람
회사를 퇴사하고, 대여섯 달쯤 지났을 때, 전 직장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모인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세 명.
이 중 한 명만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다른 한 명(편의상 Y라고 부르겠다.)은,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3년 전쯤 퇴사를 하였고, 온라인 스토어에서 본인의 사업을 하고 있었다. 난 재취업과 창업 중 어떤 것이 인생 2막 준비를 위해 좋을지 고민하며, 일단은 채용을 진행 중인 회사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현재 각자의 처지는 달랐으나, 역시나 술자리의 안주는 당연히 회사에 같이 근무했을 때의 추억팔이와 여러 뒷이야기들이었다.
퇴사를 하면, 의외로 허름한 고깃집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걸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리고 의외로 편하게 이야기할 사람들과 모일 기회도 많지 않다. (가족과 보낼 시간이 늘어나지만, 가족들에게도 편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고민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부담 없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래, 성공한 인생이란, 내 처지에 상관없이 편하게 만날 벗이 있고, 그 벗이랑 편하게 소주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인생이야. 난 괜찮게 살아왔어'라고.
다음날.
전날 소주를 같이 한잔한 Y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엑셀과 PPT가 첨부파일로 붙어있는, 고심의 흔적이 짙게 묻어나는 메일이었다. 메일의 내용은, '저랑 같이 일해보실래요? 제안하기 조심스럽지만, 같이 일하면서, 재미도 있고, 같이 무언가를 배워갈 수도 있는 사람이 누굴까를 생각해 봤는데, 형님만 떠오르네요. 그동안 혼자 사업을 해왔는데, 이제는 마음 맞는 사람과 같이 제대로 된 브랜드마케팅을 하며, 사업을 해보고 싶어요. 시장조사한 자료, 벤치마킹 자료, 그리고 같이 사업했을 때, 비전 등을 정리한 자료 첨부했습니다.'
였다.
Y는 원래 회사를 다닐 때부터, 자료조사도 철저했고, 업무 진행도 철저했었다. 많은 자료를 모아서, 고민하고 결정하는 스타일이었고,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일을 혼자 감당하곤 했었다. 역시나, 메일에 첨부한 엑셀시트와 파워포인트 자료 안에는, 다양한 자료 조사와 그 자료를 통해 제안하는 제안하는 비전 등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난 오래 고민하지 않고, 다로 답신을 보냈다.
'제안 해줘서 고마워. 같이 해보자!'
내가 오래 고민하지 않고, 바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사업에 대한 분석 자료가 아니라, '같이 일하면서 재미도 있고, 같이 무언가를 배워갈 수 있는 사람'으로 '내가 떠올랐다'는 말이었다.
회사를 다니면, '어떤 리더가 되고 싶은가?',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여러 교육을 받게 된다. 그런데, 내가 되고 싶었던 리더는 회사의 교육내용에는 없었다. 난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와 같이 일한 기간을 '내 인생의 전성기', (인생의 전성기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또는 '내 직장생활에서 가장 재미있었고, 활기찼던 시기'로 기억해 주기를 바랐다. 나중에 이런 리더를 '멀티플라이어'라고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멀티플라이어'는 구성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리더라고도 말할 수 있으니까, 내 바람보다는 좀 더 회사의 바람이 더 많이 들어간 개념이기는 하다.)
회사를 퇴사하고, 과연 나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 특히 내 팀원들은 나와 같이 일한 시간을 어떻게 생각할까? 가 가장 궁금했다. 이것이 내 직장생활의 가치를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물론, 나를 비난하고, 나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직장인에게 최고의 술안주는 직장 상사니까.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작은 숫자의 사람이라도, 나와 일했던 시기를 '나의 직장생활에서 전성기였어'라고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보낸 20여 년의 직장생활에 대한 가장 큰 보상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미세스트레스'라는 책의 이런 문구가 내 바람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문구인 것 같았다.
'나중에 네가 죽은 뒤에 사람들이 어떤 추도사를 하기를 바라는지 생각해보렴. 네가 회사가 돈을 버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해주길 바라니. 아니면 네가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주었다고 말해주길 바라니?'
그런데, Y가 바로 그 말을 해주었다. 물론 Y는 자신이 한 말이 이렇게 큰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는 것은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 같이 해보자. 마음도 맞고, 재미도 있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나보다 먼저 퇴사해서 본인 사업을 하였으니,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을 거야. 나도 내 인생 2막으로 창업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니까. Y의 노하우가 있으면, 창업을 하면서 겪어야 하는 시행착오나, 몸으로 아프게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을, 덜 아프게 겪으며, 좀 더 쉽게 극복할 수도 있을 거야.
이제, 내 신분은 취준생에서, 소상공인 창업자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