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 보름
더운 여름,
더위를 사갈 사람이 있을까?
어린 시절 정월대보름 아침
해도 뜨기 전에 엄마가 깨운다.
“숙아 일나라, 빨리 더위 팔아라
올여름 더위 안 타고 잘 넘어가게”
눈을 비비며 언니를 부른다.
“언니야”
“와”
“내 더위 다 사가라”
불러서 대답하는 시람에게 더위를 판다.
제일 먼저 언니한테 더위를 팔고
동네를 다니며 아재, 아지매들한테
더위를 판다.
"내 더위 다 사가세요
빈조리엔 집집마다 보름밥을 담아준다.
손에 든 복조리에는 복을 나눈 보름밥이 가득 있다.
해가 뜨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와 보름밥을 먹는다.
“오곡밥도 묵고
고기하고 두부도 무라
그래야 버짐도 안 피고
살도 찌고 그라지
아주까리 잎에
쌈도 싸 무라이”
부름을 깨서 악귀도 쫓아내고
엄마는
나물에 쓱쓱 밥을 비벼 한 숟가락씩 주신다.
맛있는 반찬 있을 때
더 먹이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다.
달이 뜨면 언니 손잡고 동산으로 향했다.
크고 둥근 보름달에게
소원을 빌어본다.
결혼 후 나도 아이들 어릴 때
엄마처럼 아이들을 먹였다.
귀밝이 술도
입에 대 보라고 했다.
귀가 밝아져
엄마 말 잘 들으라고
“나도 먹을래”
서로 먹겠다고
아웅다웅
귀가 밝아지면 엄마 잔소리도 더 잘 들릴 텐데, 아이들은 그저 술 한 모금 찍어 먹는 재미에 서로 먼저라고 입을 벌렸다.
세월이 흐르고
작년 정월대보름
막내 손녀에게서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할머니, 내 더위 다 사가세요”
“그래 알았다. 할머니가 더위 다 살게”
“할머니, 제가 싸게 드릴게요.
천 원만 주세요”
“돈 주고는 안 살래”
“아, 할머니
특별히 그냥 드릴게요”
그날도
손녀와 할머니는 티격태격
재미있는 하루를 만든다.
그런데
내 더위를 사는 사람은
늘 한 사람이다.
박 가이버.
눈 뜨자마자 조용히 속삭인다.
“여보, 내 더위 다 사세요.”
“응, 당신이 시원한 여름을 보내려면 내가 다 사야지”
그 말 한마디에
여름이 조금 덜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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