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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란 May 09. 2024

동물의 왕국 인도

개라고 무시하지 말자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보이는 동물은 강아지나 고양이 정도인데 인도는 정글도 아닌 도시 한복판에 온갖 동물들이 활보한다. 강아지, 고양이는 물론이고 소, 원숭이, 다람쥐, 도마뱀, 희한한 소리로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들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처음 인도 땅을 밟았을 때는 차와 릭샤들 사이에서 거대한 황소가 느릿느릿 도로 한복판을 걸어가는 장면이 매우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살고 있는 성지 브린다반의 동물들은 수행자들이 전생에 수행에 실패해 동물로 환생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여기 원숭이들은 정말 똑똑하다. 이곳에서는 밖에 나갈 때 반드시 안경을 벗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숭이들이 안경을 뺏아 먹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던져주면 안경을 돌려받을 수 있는데,  ‘프루티’라고 하는 과일 주스가 제일 인기가 많다. 바나나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원숭이도 있다. 원숭이들이 과일 주스를 잽싸게 낚아채 빨대를 꽂아 먹는 걸 보면 참 영악해 보이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런 방법을 몰라도 안경을 뺏겨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 주변에 현지인들이 알아서 몰려와 도와준다. 대신 100-200루피, 한국 돈 1600~3500원 정도의 사례를 해야 한다. 이걸 노리고 원숭이와 고용 관계(?)를 맺으며 돈을 버는 현지인도 있다.


나 또한 안경을 쓰는 사람으로서 원숭이에게 세 번 정도 뺏긴 경험이 있는데, 주로 실내에서 밖으로 나가면서 지인과 대화를 하느라 안경 벗는 것을 깜빡할 때였다. 아직도 내 안경을 낚아챈 원숭이의 눈동자가 선명히 기억날 정도로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인도 철학을 접하고 전생과 윤회를 믿게 되면서, 전생에 인간이었을지도 모르는 이 동물들 안에 남아있는 인간성을 본다. 이 원숭이는 전생에 무엇을 했길래 원숭이로 태어났을까? 이 길송아지는? 이 멍멍이는?


인도 고대 경전 ⟪바가바드 기타⟫와 ⟪스리마드 바가바탐⟫에 의하면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물질(흙, 물, 불, 공기, 에테르)로 이루어졌다 하여 물질계라고 한다. 그런데 물질의 특징은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이기에,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가 끝나면 우리의 진짜 자아인 영혼은 다음 육체로 이동해야 한다. 이를 각각 죽음과 출생이라고 한다.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몸이 아니라 영혼이며, 몸은 일시적일 뿐이고 늘 바뀌지만 영혼은 몸이 바뀌어도 영원히 존재한다. 


영혼에게는 전생에 했던 행위에 따라 다음 생의 몸이 주어진다. 다음 생의 몸을 결정하는 행위를 카르마(업보)라고 한다. 먹고, 자고, 짝짓기 하고, 방어하는 동물적인 본성에만 충실하며 죄짓는 삶을 살았던 자는 낮은 단계의 몸을 받는다. 베다(고대 인도 경전의 지식)에서는 이렇게 받을 수 있는 몸이 8,400,000종이라 한다. 낮은 단계의 몸은 생사를 거듭하며 높은 단계의 몸으로 나아간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단계는 인간의 몸으로, 오직 인간만이 깨달음을 통해 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것이 베다의 진화론으로 과학계의 정설인 다윈의 진화론과 사뭇 다르다. 


내가 한 때 동물이었듯이, 이 동물들도 나처럼 전생을 거듭하여 윤회를 돌고 있는 동지이자 형제들이다. 인도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채식은 당연한 귀결이다.


베다 철학의 환생과 진화 개념을 설명하는 그림. 저작권: BBT (Bhaktivedanta Book Trust)


카르마와 환생에 관한 흥미로운 우화가 있다. 


한 개가 궁전 앞에서 피를 흘리며 앉아있었다. 이를 보고받은 라마 Rama왕은 개를 안으로 들여보내라 한 뒤, 그에게 사정을 물었다. 개는 말했다. “한 브라마나(사제)가 다짜고짜 저를 마구 때렸습니다.” 

라마는 자신의 통치 하에 그 누구도 고통을 겪지 않도록 백성들을 세심하게 보호했던 왕으로 유명했다. 동물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즉시 그 브라마나를 소환해 왜 개를 때렸는지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신을 위해 제사를 마치고 목이 매우 말라 강으로 걸어가는데 이 하찮은 개가 제 길을 막고 있어 때렸습니다.” 


브라마나에게는 자비와 비폭력이 필수 자질인데, 이를 지키지 않았으니 벌을 받아 마땅했다. 왕은 개에게 브라마나가 어떤 처벌을 받기를 원하는지 물었다. 개는 놀랍게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브라마나가 다음 생에 왕으로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사연은 이러했다. 사실 이 개는 전생에 왕이었는데 자신의 위치를 자만한 나머지 불경을 저질러 개로 태어났다. 자만하는 자에게 높은 지위를 주면 자만이 더 늘어나 필연적으로 남을 경시하고 죄업을 쌓게 되어 개와 같은 삶을 얻게 된다. 개는 이 브라마나에게 자신이 겪은 것과 같은 처벌을 원했다. 


이 이야기에서 여러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물론 자만하지 말 것. 자만하는 자의 위치는 낭떠러지의 끝자락으로 언제든 추락할 수 있다. 둘째는 자격이 없는데 높은 지위에 앉아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 말 것. 이들이 그 지위를 누리고 있더라도 어떤 카르마를 쌓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셋째. 말 못 하는 동물이라고 무시하지 말 것. 전생에 왕이었을 수도 있고 심지어 나 또한 동물로 태어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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