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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꿀 Sep 12. 2020

서로를 안다는 것

역시나 인간관계. 

나는 여태 어떤 것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이어도, 그 이면을 발견해내거나, 같은 부분이라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는 것을 좋아해 왔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사람에 대해서 안다는 것에는 그 새롭게 보게 됨이 연속인 순간이었다. 한길 물속은 알아도 천 길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고. 한 사람이 보여주는 생각, 말, 행동에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같은 것을 뱉어도 그 속에 있는 의도나 마음은 그때마다 달랐다고 느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어쩌면 조금 예민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예민함 때문에 사람을 좋아하는데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표현을 쓰니까 굉장히 색다른데... 아마 이 표현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그냥 사람들과의 관계가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다. 더 쉽게 얘기하자면 나는 그냥 '인간관계'가 어렵게 느껴졌다. 난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의 여러 가지 형태들을 너무 많은 시각으로 너무나 다양한 결들에 예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에 그렇게 사람들과 어렵게 부대끼며 생활해 오지 않았을까.


게다가 오늘 있었던 아주 사소한 대화들은... 엄마가 외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잠시 외국에 살다 오셨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런 이야기는 나도 처음 듣던 터라 좀 어리둥절했었다. 조금 놀랐던 부분은 어머니도 그저 전해 듣기만 했던 사실이기 때문에 자기도 잘 모른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셨던 것이다. 그냥 그런 상황이 굉장히 의아하게 다가왔다. 어머니가 모르는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라...


나의 경우 엄마, 아빠와 충분히 가깝고 공유할만한 것들은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상황이나, 그런 식으로 말했을 때 느껴지는 관계랄까... 그냥 어떤 무언가가 상당히 낯설게 다가왔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는 자식이라... 그런데 그 이야기가 내 주변에서, 최측근인 어머니에게서 나올 땐 정말 놀라웠다. 분명 외할아버지와 어머니 사이가 멀거나 불편하거나 그냥 그렇거나 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 음... 그러니까 내가 느꼈던 생소함의 포인트는 아마,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따져 묻지 않고 지켜줘야 하는, 그냥 넘어가는 게 솔직히 더 편한 지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분명 나와 나의 부모 사이에서도 그냥 묻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도 있지만. 어머니의 관계를 통해 옆에서 관찰자로 보게 된 풍경은 조금 더 객관적으로 다가와서 좀 더 참신하게 다가온 것일 수도 있겠다.


오늘은 그 순간부터 서로 간에 알게 된다는 것에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로 어떤 것은 알고 모르는 것. 알지만 모르는 척하는 것. 알고 싶지 않은 것. 알아서 좋을 것 없는 것. (아무리 알아주길 바라고 표현을 해도) 죽어도 모르는 것. 조금 아는 것. 많이 아는 것. 완전히 아는 것.


위에 말한 '앎'이 어쩌면 이해, 또는 공감... 어쩌면 더 멀리 나아가 '소통'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 힘들고 우울할 땐 이런 나의 예민함을 가지고 '나는 왜 이럴까, 나만 이런 걸까' 고민했던 것 같은데. 어떤 때는 울면서 이런 걸 내 인생의 '평생의 화두'라고 표현하기도 했었다. 무척 쪽팔리지만 정말로 그랬다. 이제는 이게 좀 재밌는 듯하다. 이렇게 소통을 낯설어하고 새롭게 느끼는 나 같은 사람이 소통이 아주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직업을 맡고 있다니. 이런 재능이 내 직업을 가지고 사는데 독일지 축복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항상 재밌는 일이지만, 그만큼 상처 받게 되는 순간도 많은 듯하다. 이 과정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또 각자의 몫인 듯하고. 분명 사랑을 받게 되는 만큼 나아갈지, 상처 받는 만큼 움츠러들지의 순간들이 나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두 다, 흘러가는 하나의 과정일 수도. 여러 복잡한 생각을 하더라도, 그냥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에게, 각자에게 모두 좋은 기운이 깃들길. 무운을 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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