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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Aug 17. 2023

출근 시간대, 집 가는 지하철에서 보이는 것들

자발적 백수의 퇴사로그 #3

오전 8시, 출근 시간대 지하철을 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한정된 공간 안에 수용 가능한 범위 이상의 인원들을 태우느라 조금 움직이기도 힘든,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을. 내려야 하는 역에서 내릴라치면 문 쪽에 있는 사람들을 겨우 비집고 들어가 온몸으로 전방을 향해 나아가려고 안간힘을 써야 한다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자차를 구매하거나 특별한 대안의 교통수단도 없기에 출퇴근길 지하철 이용은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다.


백수가 되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이 출퇴근길 지옥철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삶의 쾌적함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나마 나는 재택근무가 자유로운 환경의 회사를 다녔었기에 주 5일 오프라인 출근의 고통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매주 월요일과 미팅이 있을 때는 오프라인 출근을 했다. 업무 효율성 면에서 개인적으론 비대면 소통보다는 대면 소통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주 2~3회는 꼭 사무실 출근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출근할 일이 없으니 그마저도 내 생활 루틴에서 사라졌다. 아직까진 지옥철의 고통이 없는 현재를 좀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이다. 출퇴근의 힘겨움을 견디지 않아도 되고 그 시간을 다른 데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요즘은 오전 7-8시 즈음 일찍 일어나는 날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한다. (근데 왜때문에 가끔은 오전 10시가 다 되어서야 눈이 떠지는 날도 있는지 모르겠다..)



오전 8시, 같은 출근 시간대. 어젠 조금 이례적인 경험을 했다.

남들이 모두 직장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을 테지만, 나는 집으로 향하는 방향의 지하철을 탔다. 오전 8시면 보통은 집에서 나와야 하는 시간이 아닌가? 대학시절 축제기간 이후로 오전 8시에 집에 가는 지하철을 탄 건 매우 오랜만이었다.


그 이유는 아래의 지난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오전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친구네 집에서 나와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출근길의 직장인들을 몇몇 보았다. 이른 시간이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셔츠와 슬랙스를 입은 사람, 화사한 원피스를 입고 백을 멘 사람 등 저마다 집에서의 분주한 준비를 마치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의 차림새였다. 오늘도 각자의 일터에서는 저마다의 고충과 사연들이 얼른 저부터 해결해 달라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상으로 보였다.


상가 근처 슈퍼와 가게는 일찍이 문을 열고 바쁘게 장사할 준비를 시작했으며 정겨운 인사를 주고받았다. 매일 일어나는,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니 새롭고 더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언제나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자신 앞에 놓인 삶에 성실히 임하는 모습들은 나에게 활기와 자극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또 느꼈다.


그에 반해 나는 회사로 향하는 것이 아닌, 지난 밤에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왠지 모르게 겸연쩍게 느껴졌다. 겉으로 보기엔 나도 출근하는 사람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으나 스스로만 느껴지는 그런 민망한 기분 있잖은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신당역에서 집 방향의 성수행 2호선 지하철을 탔다. 신당역에서는 평소 출근 지하철보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진 않았다. 그렇게 성수역, 건대입구역, 잠실역.. 여러 역을 지나면서 사람이 점점 더 많아졌다. 역시 출근길 지하철은 비슷하구나. 다른 건 내가 평소 출근길 방향과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다는 것.


선릉역, 역삼역, 강남역을 지나면서 순차적으로 사람들이 대거 내렸다. 이 역들 주변에 회사들이 모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이 역 중 하나에서 내려 회사로 향했던 시간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때는 사람들이 너무 많을 땐 몸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노래를 듣거나 팟캐스트를 들었다. 조금 움직일 수 있겠다 싶으면 슬랙을 확인하곤 했다.


나뿐만 아니라 한국의 직장인들은 출퇴근 시간에도 항상 뭔가를 듣거나, 읽거나, 쓰거나 하는 것 같다. 그만큼 바쁘게 산다는 방증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해야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를 나쁘게만은 볼 수 없지만 왠지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놀랍게도 교대역에서 지하철이 멈추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고,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 나는 몇 개 역을 더 가야 했기에 자리에 앉았다. 출근시간 2호선 지하철에서 앉아서 가는 경험을 하다니. 별 것 아닌 일에 혼자서 내적 흥분을 했다가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도 다시 저들의 무리에 끼어 회사로 향하는 방향의 지하철에 몸을 싣고 그들과 같은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게 될까.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자신의 '업'과 '일'을 중심으로 어떠한 선택을 하는 것이지, 출퇴근길의 힘겨움은 '일'에 대한 보상을 받는 대가로 감수해야 할 부수적인 요인이다. 무엇보다 그 힘겨움을 겪는 건 나만이 아니라 서울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일상 속 풍경이지 않은가.


오케이.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언제, 어떤 회사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맡기게 될까 라는 생각이 두 번째로 들었다. 이는 물론 내가 정하는 방향성과 선택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기에 순간, 문득 궁금해졌다. 최소한 내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그에 맞는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반대로, 저들의 무리에 끼지 않는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소규모 사무실을 가진 1인 기업가? 재택근무가 디폴트인 프리랜서?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창업을 할 수도 있겠다. 전자보다 후자를 상상했을 때 조금 더 의욕이 차오르는 것 같고 더 설레는 것은 왜일까. 어떤 구체적인 플랜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현실 자각이 덜 되어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앞으로의 삶에서 한 번은 후자의 선택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앞으로 하게 될 경험들을 기반으로 정말로 세상에 만들어 내고 싶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생기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면 주저하지 않고 바로 실행할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한 방향으로 꾸준한 관심과 경험, 지식들이 쌓이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나의 장점과 재능을 활용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꽤 뿌듯하고 보람있는 삶이 될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한 걸음씩 걸어가 보자..!


오늘도 내일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모든 직장인들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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